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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복잡한 이름 <니나 내나>(2019)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손시내

등록일 2021년01월20일 12시57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이동은 감독의 <니나 내나>(2019)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다. “사는 게 다 달라 보여도 비슷비슷하다고, 니나 내나”라는 극 중 대사처럼, 이 가족의 이야기는 ‘가족’이라는 집단에 들어 있는 보편성과 개별성을 함께 건드린다. 가족이어서 지긋지긋하고 가족이어서 말 못 하고 가족이어서 결국 다시 함께 하게 되는 지극히 보편적인 지점들이 이들의 특별한 이야기 속에서 넌지시 떠오른다. 얼핏 보기엔 너무나도 평범해 보여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싶은 가족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특별한 사연 하나쯤 당연하다는 듯 품고 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족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별다를 것 없이 일상을 살아내는 가족 구성원들은 평소엔 굳이 꺼내어 말하지 않지만 속에는 깊은 상처와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데, 살아가다가 마주치는 어떤 풍경들이 꼭 그 상처를 다시금 건드리고 만다. 그리고 아마도 가족이기에, 그렇게 마주한 상처는 아무 일 없던 듯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대신 새로운 파문을 일으킨다. 가족이니까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가족이니까 실은 모르는 것투성이인 그런 관계. 영화가 차분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그런 관계 속에서 과거를 마주하고 현재를 다시 보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니나 내나(사진 출처 : 다음 영화)

 

영화가 보여주는 가족은 이미 다 자라서 각자의 생활을 꾸리고 살아가는 세 남매와 이제는 많이 늙어버린 아버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맏딸 미정(장혜진)의 모습으로 영화는 문을 연다. 미정은 지방의 작은 결혼식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결혼식 자체가 감소한 탓인지 결혼식장은 잠시 문을 닫게 됐고, 동료들은 아무래도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게 전망은 더 좋다는 이야길 하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정의 관심은 다른 데 가 있는데, 아무도 믿지 않지만 그녀는 자신이 신내림을 받아야 하는 운명이라고 여기고 있다. 한편 부산과 진주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두 남동생이 있다. 사진 찍는 일을 하는 경환(태인호)은 곧 아빠가 될 예정이다. 아내 상희(이상희)와는 다정하게 투닥거리며, 이제는 문을 닫게 된 아버지의 사진관을 정리하고 있는 상태다. 홀로 살고 있는 재윤(이가섭)은 자신에게 자꾸 신경 쓰는 누나 미정이 못내 부담스러운 눈치다. 남매들의 아버지 만길(고인범)은 다리를 다쳐 병원 신세를 지게 됐는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니 퍽 괴팍한 성정의 소유자인 것 같다. 이처럼 영화가 가족들의 모습을 천천히 비추는 가운데, 경환에게 엽서가 한 통 도착한다. 보고 싶다는 말이 짤막하게 쓰여 있는, 엄마 경숙(김미경)의 편지다.

 

이들의 현재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두 사람, 엄마와 막내 수완의 이야기가 바로 이 가족의 수면 아래 묻힌 특별한 사연이다. 조금씩 풀려나오는 내용으로 미루어보건대, 남매들의 부모는 아주 예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고 엄마는 일찍부터 집을 나가 다른 남자와 살았다. 그리고 수완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사망보험금마저 가져가 버렸다. 가족들은 수완을 애틋하게 가슴에 묻은 채, 이해하기 어려운 엄마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안고 살아온 것 같다. 그중에서도 맏딸인 미정에게 엄마는 너무나도 미운 존재이지만 한편으론 끝없이 궁금한 존재이기도 해서, 엽서가 온 사실을 알게 되자 미정은 엽서의 발신지인 머나먼 파주까지 그냥 한번 가보자고 한다. 미정, 경환, 재윤 그리고 미정의 딸인 규림(김진영)까지 네 사람이 차에 오르고, 그렇게 영화는 길 떠나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띤다. 별다른 목적도 없이 떠나보는 여정, 마음속에 일렁이는 갈등은 분명히 있지만 딱히 문제의 해결을 목표로 두지 않는 이 길 떠남은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고 현재의 관계가 건드려지는 덜컹이는 여행이 된다.

 

엄마와 막내 수완에 대한 기억이 이 가족을 묶어내기도 하고 흩트리기도 하는 일종의 중심인 것은 맞지만, 인물들의 시간이 오직 그쪽으로만 수렴하는 건 아니다. 어쨌거나 살아내야 했던 세월 속에서 가족들은 저마다 선택을 하고 삶을 감당하며 각자의 일상을 꾸려왔다. 덤덤하게, 때로는 요동치며 흘러왔던 시간은 그 자체로 가족이 과거에 묻어둔 각별하고 무거운 사연만큼이나 중요하다. 어쩌면 이 가족을 포함해 우리 모두는 그처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 함께 공유했던 시간과 가족으로부터 떨어져서 경험한 시간 사이에서 진동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공동의 기억을 공동의 것으로 어떻게 남길 것인지,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상대의 고유한 시간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가족’이기에 특히 더) 중요할 텐데, 우리는 종종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대신 ‘가족이니까’ 라고 말하며 대화와 이해에 들이는 노력을 줄여버리고 만다. 그와 관련해서 언급할만한 한 장면이 있다.

 

엽서에 쓰인 주소로 겨우 찾아갔지만, 결국 이들이 마주한 건 엄마의 장례식이다. 묻고 싶은 것들이 있었지만 답해줄 엄마는 이제 세상에 없다. 허망함과 의아함이 반씩 섞인 듯한 표정으로 장례식장 구석에 모여 앉은 이들 사이에선 이내 다툼이 일고 만다. 말끝마다 가족 타령을 하는 미정에게 재윤은 누나 자신이나 좀 돌보라며 화를 낸다. 그리고 여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 “나 게이다.”라는 말도 해버린다. 다음날, 우리 사이에 왜 여태 얘기하지 않았냐는 미정에게 재윤은 우리 사이니까 말 못 한 거라고 하고, 미정이 다시 가족끼리 그런 게 어디 있느냐고 말하면 재윤은 가족이니까 말 못 한 거라고 못 박는다. 한쪽은 서운해하고 한쪽은 답답해한다. 아마도 가족이란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투명하게 열어 보일 수 있는 대상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힘든 대상이기도 한 것일 테다. 영화는 이 문제가 도드라지는 지점에서, 서로서로 이해하고 양보하자는 식의 결론을 내는 대신 그처럼 해소되지 않는 차이를 눈에 띄게 남겨두는 쪽을 택한다. 속에 있는 말을 다 해버리고 나면 서로에게 불편한 상처가 하나씩 더 남을 테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해버리는 편이 어설픈 화해보다는 낫다고 여기는 것 같다.

 

돌아보면 영화 곳곳에 실수와 실패투성이다. 어쨌거나 엄마는 결국 만나지도 못했고, 이들은 엄마의 유골함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미정은 딸 규림에게 남편에 대해 했던 거짓말을 들키고, 경환은 본인의 아내를 힘들게 했던 “아버지처럼 안 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 이들의 하룻밤 짜리 여정이 그런 것처럼, 영화도 결코 매끄럽고 선명한 모양새를 띠진 않는다. 설명은 종종 생략되고 장면과 장면 사이는 때때로 헐겁다. 그런 울퉁불퉁한 지점들을 다림질하는 것보다 영화가 신경 쓰고 있는 지점은 정작 다른 데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따금 눈에 띄는 노란 리본과 임진각의 풍경, 그러니까 가족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를 이 영화는 조심스럽게 품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와 감정의 모양새는 당연히 매끄러울 리도, 손쉽게 설명될 수 있을 만큼 간단할 리도 없다. 다양한 형태의 상실을 경험하고 기나긴 애도의 과정을 지나는 이들을 바라보며, 영화는 꼭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이야기하고 고민거리를 던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가족이라는 이름, 다양한 구성원의 입장에서 다시금 생각되어야 할 그 이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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