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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스] 정의로운 폭력의 말로

최성규(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등록일 2020년11월18일 15시08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일본의 보수 세력은 아베 총리가 집권한 뒤 직접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매해 인종차별 관련 집회만 300여 개가 개최되었다. 재일한국인, 아이누(홋카이도 원주민), 일본계 브라질인 등 일본 내 소수 민족과 한국인, 중국인을 주요 대상으로 한 혐오 발언들이 거리낌 없이 거리를 활보했다. 특히 극우 논객 사쿠라이를 중심으로 결성된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이하 재특회)은 코리아타운을 타켓으로 가두시위를 벌이며 재일한국인들을 향해 거침없는 폭언과 공격적인 행동을 일삼았다. ‘코리아타운을 뭉개버리고 가스실을 만들자’, ‘거리에서 한국 여자를 보면 돌을 던져도 강간해도 무방하다’ 같은 구호가 쏟아지는 시위였다.

 

물론 본토에서도 이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카운터스’라는 조직을 결성했다. 하지만 재특회의 혐오 집회는 경찰로부터 보호받았고 충돌이 있을 때마다 체포된 사람은 카운터스들이었다. 재특회는 갈수록 세력이 강해지고 있었다. 카운터스 운동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건 온몸이 문신으로 뒤덮인 건장한 사내들, ‘오토코구미’의 등장 이후다. 이웃을 지키기 위해선 폭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오토코구미가 가세한 카운터스는 경찰 저지선을 뚫고 코리아타운을 점거하려던 재특회의 계획을 무산시킨다.

 


 

폭력에 맞서 폭력을 선택한 민주주의?

<카운터스>(2017)는 2013년 일본에서 일어난 카운터스 운동의 일부를 담는다. 저널리스트, 변호사, 만화가, 래퍼 등 여러 그룹의 사람들이 활동하는 카운터스는 온라인을 통해 차별과 혐오를 막기 위한 다양한 역할과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조직이다. 자경단의 성격을 띤 오토코구미 역시 그 안에서 트위터로 모집되었다.

 

오토코구미 모집 공고는 도발적이었다. “소중한 사람이 상처를 받게 놔둘 순 없다, 폭력은 필요하지만 잘못된 방법이므로 오직 해산하는 그날을 위해 활동한다,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이방인이 되어 오늘만 사는, 가장 최전선에서 맨몸으로 싸울 수 있는 녀석들이 필요하다.”

 

영화는 오토코구미의 탄생 과정과 이를 이끄는 야쿠자 출신의 다카하시에 주목한다. 건달로 살던 다카하시가 반인종주의, 소수자 운동의 리더가 된 사연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전반부, 이들이 벌이는 활극을 애니메이션과 그래픽으로 한껏 채색한 장면들은 눈을 사로잡는다. 폭력이 정의감을 가졌을 때의 쾌감을 잘 알고 있는 영화는 장르적 흥분을 마음껏 제공한다.

 

물론 폭력이 정당한 수단이 될 수 없다. 이 사실을 영화도 모를 리 없는 것 같다. 폭력에 맞서 폭력을 선택한 민주주의? <카운터스>는 한편으로 이 딜레마에 대한 다큐다. 영화는 이들에게 ‘폭력을 사랑하십니까? 혹은 매력을 느끼십니까?’라고 반복적으로 묻는다. 다카하시 같은 인물은 필요하지만 모두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인터뷰, 카운터스 내에서 이들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장면 등은 영화가 스스로 미화된 폭력을 경계하는 장치로 보인다.

 

그러나 <카운터스>는 잠시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한 뒤, 끝내 영웅 다카하시를 위해 바쳐진다. 다양한 시선과 운동방식이 존재했던 카운터스가 영화 속에서 거친 남성들의 운동으로 정의되면서, 여성 활동가는 지워지고 내부에서 치열하게 논의되었을 다양한 논쟁도 사라져 버렸다. 대중성을 앞세운 영화의 판단이 다만 아쉽다는 평가가 들려올 즈음, 영화 밖에서 더 큰 논란에 휩싸였다.

 

쾌감이 지나간 뒤 공허만 남는 영화

 

<카운터스>는 개봉 직후 다카하시의 성폭력 가해 사실이 폭로되면서 조기 종영되었다. 배급사가 피해자와 소통하며 관련행사와 상영을 중단하는 것으로 결정한 것이다. 배급사의 판단은 2차 가해를 막고 논란이 부정적으로 확산되지 않은 모범적인 것이다. 하지만 관객은 더 이상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없게 되었다(당시엔 VOD는 물론 공동체 상영도 불투명한 상황이었지만 현재는 온라인으로 구매해 볼 수 있다).

 

오토코구미의 활동은 딜레마 속에 있지만 분명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사건이다. 그들의 등장으로 혐오 집회의 참여자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재특회는 코리아타운에서 집회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나아가 오토코구미를 포함한 카운터스와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혐오표현금지법이 국회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고 제정되는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깊은 내상을 입은 사람들의 눈물을 볼 때마다, 분노와 든든함을 넘나들게 하는 폭력의 방향을 목격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방식에 설득 당할 수밖에 없었다. 보는 내내 멈칫하게 되지만 수많은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영화를 볼 수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상영 중단 사태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활극의 주인공으로 옹립된 다카하시는 영화의 끝에서 갑작스런 병사로 생을 마감한다. 다카하시는 카운터스 활동으로 세간에 알려진 뒤 일터에서 해고되고, 임시직을 전전한다. 집세와 식비를 제외한 월급의 전부를 카운터스 활동을 위해 쓰던 삶이 그의 말로였다. 영면한 다카하시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자막이 새겨졌다.

 

영화는 성폭력 사건으로 봉인됐고 피해자는 다카하시에게 사과를 받을 수도 없게 되었다. 자주 가던 식당의 한국인 할머니가 공격받는 모습에 분노해 집회 한가운데로 뛰어든 그날의 영웅 다카하시의 몰락은 분명 스스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 몰락에 영화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걸까. 어쩌면 영화가 부추긴 것은 아닐까. 영화의 야심이 문제적 인물과 사건과 작품을 모두 납작하게 만들어버린 건 아닌가. 쾌감이 지나간 뒤 공허만 남았다.

 


 

폭력의 굴레 가장자리를 서성이는 영화

 

이 딜레마에 대해 <카운터스>와 대척점에 서 있는 영화는 김미례 감독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2019)일 것이다. 이 영화는 일본인 스스로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고 동아시아와의 연대를 목적으로 무력 행동을 벌인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을 다룬다. 1974년부터 약 1년 간 일본의 전범기업들을 자국민의 손으로 응징한 사건과 관련 인물들을 기록했다. 민간인마저 희생된 폭파 사건의 가해자들은 테러리스트로 지목되어 오랜 수감 생활을 하거나 추방을 당하고 가족까지 사회적으로 매장되었다.

 

영화는 가해의 기억과 성찰의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이들과 여전히 침략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일본의 오늘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일본 역사 내에서 이미 금기시된 사건이다. 40년이 지나 한국의 어느 다큐멘터리 감독이 일본조차 묻어버린 사건을 꺼내든 것이다.

 

딜레마의 늪에 빠진 관객에게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그들이 남긴 메시지와 몽환적인 음악 그리고 시간과 장소가 불분명한 이미지들이다. 영화는 안개 속에 덩그러니 놓인 다리와 도시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고집스럽게 침묵하며 가해자들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 작품의 태도는 지나치게 고요한 곳에 있다. 영화는 도무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폭력의 굴레 가장자리를 서성거리며 고통받는 존재들을 조용히 응시한다. 이 낯선 시간을 체험하는 동안 알 수 없는 감동을 느끼게 된다.

 

폭력을 소비하는 영화는 많다. 하지만 실존하는 인물과 사건이 그 대상이 될 때 스펙타클이 된 폭력은 여전히 고통의 굴레를 살아가고 있는 당사자들을 향하는 칼이 된다. 폭력을 삼킨 영화의 욕망이 반대의 길을 갈 때 어떤 결말에 도착하는지 두 영화가 보여준 건 아닐까. 

최성규(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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