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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연속기획③] 기본소득과 여성소득

이지은(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 대표)

등록일 2020년10월16일 13시21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노동과 자본 간의 권력관계 조정으로서의 기본소득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생산수단(생존수단)과 분리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노동자는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이러한 노동의 상품화는 노동자의 착취와 소외를 발생시키며, 자본과 노동 간의 권력불균형을 형성한다. 즉, 노동자는 생존을 위해 노동력을 팔아야 하고 다른 대안이 없다면 원하지 않는 노동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자본과 노동 간의 권력불균형은 현대사회에서 점차 심화되고 있다.1


기본소득은 생존수단 자체를 직접 사람들에게 지급하기 때문에 이러한 계급관계 내의 불균형에 도전한다. 인류학자 퍼거슨의 책 <분배정치의 시대>(원제 : “Give A Man a Fish”)의 원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람들에게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소득)를 직접 주는 것이다. 에릭 올린 라이트(2006)는 관대한 수준의 기본소득이 권력관계에 보다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았다. 구체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고 고용주와의 관계에 있어 협상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노동의 계급적 위치를 강화할 뿐 아니라, 시장지향적이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일(가령 돌봄노동, 예술, 정치, 다양한 지역사회 서비스 등)의 참여를 가능하게 한다. 나아가 개별 노동자가 출구전략이 있을 때, 고용주와 새로운 형태의 집합적 협력관계를 형성하는데 기여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기본소득은 계급관계의 권력평등에 기여할 수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계급 내 권력평등 문제에는 ‘공공재 특징’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우리는 투표권을 팔지 않는다. 우리는 권리를 획득하지 거래하거나 판매하지 않는다. 기본소득 운동은 ‘시민권’의 개념을 확장시키려는 노력으로 여기에 ‘공공재 그리고 공유자산(common wealth)에 대한 권리’를 포함시키려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더 나은 보편’에 대한 논의의 시작이 된다.

 


 

 

여성에게 기본소득이 가지는 해방적 가치

 

그렇다면, ‘권리’로서의 기본소득이 여성에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를 살펴보기 전에, 여러 통계지표를 통해 현재의 열악한 여성의 노동조건을 간략히 검토해보자. 먼저 노동시장 영역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19년 53.5%(남성 73.5%), 여성의 월평균 임금은 2018년 남성의 35.2%, 정규직 근로자 중 여성의 비율이 2019년 38.5%로 나타나, 노동시장 참여가 낮고 성별임금격차 존재할 뿐 아니라, 비정규직 여성 비율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돌봄 영역의 경우, 기혼여성의 가사활동시간이 기혼남성의 4.5배로 여전히 여성에게 돌봄책임이 막중하게 부과되고 있는 한편 육아휴직자 중 남성비율은 여전히 낮다(17.8%, 2018년). 더욱 문제적인 것은 여성에게 주로 부과된 돌봄책임이 여러 형태의 돌봄불이익(care penalty)과 함께 임금노동과 돌봄영역의 불안정성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여성이 아이를 키우는 시간동안 임금노동을 하지 못해 발생하는 현재의 소득 단절 뿐 아니라 직업숙련도 하락에 따른 미래의 잠재적 소득 하락, 이와 맞물려 노동자 지위를 상실함에 따라 사회보험 수급권에 제도적으로 배제된다.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노동의 성별분업은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의 불안정한 지위를 강화하고, 가구 내 젠더불평등(시간빈곤), 사회보장제도에서의 성차별적 요소2와 맞물려 작동한다.

 

네덜란드 한 여성 코미디언은 이를 희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내 할머니에게는 투표권이 없었다. 내 어머니에게는 피임약이 없었다. 하지만 내게는 시간이 없다.” 이러한 젠더불평등한 현상을 고려했을 때, 기본소득이 여성(노동)에 주는 기여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기본소득은 저임금노동에서의 착취 뿐 아니라, 남성(가구주), 고용주, 국가 관료부터의 착취로부터 탈출구를 형성한다. 즉, 자본과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이전과는 다른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둘째,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의 ‘시간자율성’3을 증진시킨다. 특히 소득과 시간의 이중빈곤에 처해 있는 취약계층과 그리고 시간빈곤에 처해있는 여성들에게 임금노동시간, 가사 및 돌봄노동시간에 대해 더 많은 시간자율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셋째, 무엇보다 기본소득은 결혼, 가구특성, 성적지향, 노동관계와 관계없이 ‘개인 단위’로 지급하므로 여성을 피부양자나 돌봄제공자로 구획하지 않고 ‘사회에서 동등한 파트너’로서의 지위를 인정한다. 이는 고용, 정치, 시민사회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여성의 참여와 발언을 확대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본소득의 중요한 세 가지 개념적 특징인,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 중에서도 ‘개인단위 지급’은 여성에게 있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를 코로나 위기에 대응으로 실시한 1차 긴급재난지원금의 경험을 통해 살펴보자. 소득/재산과 상관없이 전국민에게 현금(바우처)을 지급한 역사상 전례없는 사건이다. 가구단위 지급과 정기성을 제외하면 기본소득의 핵심 특징을 공유한다. 그러나 가구단위 지급으로 인해 젠더효과는 감가된다. ‘세대주 신청’과 ‘건강보험 피부양자’ 개념 적용으로 인해 약 7만 건의 이의신청이 접수되었는데, 특히, 가정폭력, 성폭력, 아동학대 피해자가 세대주와 다른 곳에 거주할 경우, 그리고 이혼소송 중이거나 사실상 별거상태인 가구와 같이 가구구성이 법적 가족관계와 다른 경우 ‘세대주의 동의 없이’ 세대원이 신청하기 어려운 구조로 설계되었다. 이렇게 가구단위 지급의 특성은 여성을 암묵적으로 가구주에 속한 세대원, 피부양자, 결과적으로 독립 개체가 아닌 의존자로 위치시키며, ‘지배’를 공고히 하는 기제가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위(status)’는 물질적이며, 시민의 지위 보장은 개인단위로 실시되어야 한다.

 

자본이 노동을 잠식하고 있는 사회에서, 기본소득은 자본과 노동의 권력관계 조정 전략이다. 여기에는 임금노동 뿐 아니라 그동안 비공식, 비시장영역에서 행해져 왔던 모든 노동이 포함된다. 기본소득은 모든 개인(여성과 남성)의 경제적 독립성을 강화한다. 이 때, 경제적 독립은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재화의 소비’로,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시간의 확보’로, 누군가에는 ‘임금노동 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의 참여와 활동’으로 발현되며, 이는 그동안 간접적 시민권을 향유했던 여성을 포함한 여러 집단의 지위를 강화한다.

 

#기본소득 #여성노동 #권력관계조정 

 

각주)

1. 자본과 노동 간의 소득분배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인 노동소득분배율은 지난 수십 년 간 하락하고 있으며, 소득불평등 뿐 아니라 자산불평등의 심화가 무엇보다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기술발전으로 인해 생산성이 증가함에 따라 고용과 임금, 가구소득은 감소하는 거대한 탈동조화(Great Decoupling)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2. 사회보장제도는 ‘노동자’의 소득상실을 보장하려는 사회보험과 ‘빈곤층’의 소득보장을 위한 사회부조, ‘아동이 있는 가구’에 대한 각종 지원(서비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제도적 조건 속에서 수혜자 여성은 노동자, 빈곤층, 피부양자, 아동이 있는 여성(돌봄제공자)로 구획한다.

 

3. '시간자율성’ 개념에는 개인이 자신의 시간사용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는 것과 함께,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필수적인 임금노동시간과 돌봄노동시간에 대한 합의가 내포되어 있다. 즉, 노동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재구성할 것인가(사회적으로 생산적인 노동에 대한 가치에 대한 보상 관련), 어떠한 노동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누가 투여할 것인가와 같이 사회적 시간을 재구성하는 논의로 확장될 수 있다.

 

 

이지은(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 대표)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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