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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연속기획 ②] (찬성측) 기본소득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경계하자

정원호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록일 2020년09월11일 10시53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최근 뜨겁게 진행되고 있는 기본소득 논쟁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계층인 노동자들에게도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만큼 노동계도 더 이상 구경꾼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즉, 기본소득의 도입이 노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노동자의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의 논쟁 지형은 이러한 발전적 주제들을 포괄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그 원인 중 하나는 논쟁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기본소득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기본소득 반대자들은 기본소득의 개념에 대해 오해할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왜곡하기까지 하고 있는데, 전월호(2020.7-8월호)에 게재된 양재진 교수의 글도 그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기본소득의 개념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고, 오해와 왜곡을 바로잡는 데 중점을 두고자 한다. 그것은 노동과 관련된 주제들에 제대로 접근하기 위해서라도 선행되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의 올바른 개념

 

전 세계 기본소득 지지자들의 네트워크인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개인 단위로 무조건적으로, 자산심사나 노동 요구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현금”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정기성, 현금성의 다섯 가지를 특징으로 한다. 비판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기본소득은 생계유지에 충분할 만큼 많아야 한다는 것인데(충분성), 이것은 기본소득의 정의와는 무관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왜 주어야 하는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IKN)는 기본소득을 “공유부에 대한 모든 사회구성원의 권리에 기초한 몫”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사회에는 개인의 몫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몫인 공유부가 있는데, 인간이 창조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주어진 토지, 천연자원 등의 ‘자연적 공유부’, 인간 모두가 공동으로 창출한 빅데이터 등의 ‘인공적 공유부’, 역사적으로 인류의 공동 노력이 축적되어 전승되는 지식 등의 ‘역사적 공유부’ 등을 말한다. 이러한 공유부의 수익 가운데 개인이 투여한 노력(토지 개간이나 광산개발, 빅테이터 활용을 위한 플랫폼 구축 등)의 대가를 제외한 일부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몫이기 때문에, 모두가 그에 대한 배당의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 바로 기본소득의 핵심적 근거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근거로부터 기본소득 재원의 정당성이 부여된다. 즉, 자연적 공유부의 수익으로서 토지보유세와 환경세(환경 파괴에 대한 벌금), 인공적 공유부의 수익으로서 빅데이터세가 기본소득의 정당한 재원이 되는 것이다. 나아가 모든 소득은 지식을 기반으로 발생하고, 지식의 일부는 전승된 역사적 공유부이기 때문에 소득세 또한 기본소득의 재원이 될 수 있다. 물론 재원의 규모는 공유부 수익 중 얼마만큼이 공동의 몫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될 것이며, 그에 따라 기본소득의 금액 또한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단일한 실체가 아니다. 즉, 기본소득은 지급대상(연령대별 구분), 금액의 수준(충분할 경우 완전기본소득, 불충분할 경우 부분기본소득), 기존 사회보장과의 통합/대체 여부, 재원의 성격(토지세 또는 소득세) 등에 따라 여러 가지 모델로 구성될 수 있다. 크게 보면, 기존 사회보장을 폐지(완전 대체)하고 부분기본소득으로 일원화하여 복지 축소를 지향하는 우파 모델, 기존 사회보장을 유지한 채 부분기본소득을 결합하는 혼합 모델, 완전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기존의 사회보장은 유지하거나 일부만 통합하는 좌파 모델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어떤 모델을 도입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사회세력들 간에 이해대립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기본소득을 논의할 때, 단순히 기본소득의 도입 여부를 넘어 어떤 기본소득을 도입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오해와 왜곡의 교정

 

이상의 기본소득 개념에 비추어 볼 때, 양재진 교수의 논지는 몇 가지 오해와 왜곡을 담고 있다. 그의 요지는 예산은 무한정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소득으로 나누어주면 푼돈이 되어 사회보장 사각지대의 해소에 실효성이 없으며, 실업부조의 도입 등 사회보장 강화가 더 나은 대안이라는 것인데,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예산은 무한정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소득은 푼돈이 된다”는 주장은 예산중립성, 즉 동일한 예산으로 사회보장과 기본소득 중에 택일하여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다시 말해 기본소득이 다른 사회보장을 완전히 대체할 경우에 성립할 수 있는 주장이다. 위에서 살펴본 전형적 우파 모델의 기본소득일 경우에 해당하는데, 문제는 한국에서 이렇게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기본소득 지지자는 단연코 없다는 것이다. 현실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교수는 기본소득을 극단적 우파 모델만 있는 것으로 부당하게 상정하고(오해!),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모두 그 모델을 주장하는 것으로 왜곡하여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전형적인 허수아비 치기이다.

 

둘째, 이러한 관점은 기본소득에 대한 또 다른 오해에 근거하고 있다. 양 교수가 기본소득이 기존의 사회보장에 비해 실효성이 없다고 하는 것은 기본소득을 단순히 또 하나의 새로운 사회보장정책으로 간주하여 양자를 비교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사회보장의 효과를 수반하기는 하지만, 그 자체는 사회정책이 아니라 공유부에 대한 모든 구성원의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분배정의를 추구하는 정책이다. 이렇게 본다면, 양 교수는 서로 차원이 다른 정책을 같은 차원에 놓고서 비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이는 기본소득의 근본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셋째, 양 교수는 기본소득을 비판하려는 일념으로 기존의 사회보장 강화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면서, 마치 사회보장 강화는 쉬운 일인 것처럼 암시하고 있다. 물론 아직 OECD 평균에 비해서 현격히 뒤처진 한국의 사회보장은 획기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최근 특수고용 노동자 고용보험 적용에 관한 논란에서 보듯이, 사회보장 강화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플랫폼 노동의 증가 등으로 고용관계가 더욱 불명확해지고 불안해지는 상황에서 과거 정규직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보장제도의 강화만으로는 사각지대 해소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사회보장이 매우 발달한 서유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만큼 단순히 사회보장의 강화가 아니라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기본소득 논쟁의 전진을 위하여

 

이상에서 기본소득 논쟁의 생산적 전개를 위하여 그 출발점인 개념에 대한 오해와 왜곡부터 바로잡고자 하였다. 이제 기본소득에 대한 올바른 개념에 근거하여 노동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몇 가지 주요 쟁점만 제기하고, 후속 논의를 기대하고자 한다.

 

<기본소득 논쟁의 주요 쟁점>
-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노동을 계속할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 기본소득은 임금, 특히 저임금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 기본소득은 여성 노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 기본소득의 재원을 어떤 방식으로 조달하는 것이 노동자에게 유리할 것인가?
- 기본소득은 노동조합의 교섭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정원호(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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