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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연속기획③] 노동,사회권 그리고 기본소득

남재욱(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

등록일 2020년10월16일 13시36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국제노동기구(ILO)는 「필라델피아 선언」(1944)에서 “모든 인간은 인종, 종교 또는 성별과 상관없이 자유와 존엄, 경제적 안전 속에서 그리고 평등한 기회 속에서 자신의 물질적 복지와 정신적 발전 둘 다를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라고 선언했다. 우리가 ‘사회권’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UN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1966)보다 20년 이상 앞선 것이다. 모든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권은 그 시작부터 노동과의 깊은 관련 속에서 자리매김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의 위기는 곧 사회권의 위기다. 그리고 우리는 명백하게도 노동의 위기 시대를 살고 있다. 기간제와 시간제처럼 불안정성을 내포한 노동, 파견과 용역처럼 진짜 사용자가 숨어버린 노동, 특고와 플랫폼 노동처럼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조차 의심받는 노동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노동을 통해 안정적인 소득과 삶의 기반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렇다면 이제 사회권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기본소득을 통한 사회권 보장?

 

기본소득은 ‘권리’를 무엇보다 강조하는 새로운 분배방식이다. 기본소득은 노동의 위기를 배경으로 더 이상 노동에 얽매이지 말자고 말한다. 노동과 소득의 교환이라는 기존 질서에서 벗어난 탈노동을 통해 비로소 인간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사회의 공유부에 대한 권리가 있으며, 따라서 그 몫을 N분의 1로 나누어줘야 한다는 주장은 직관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완전고용을 통해 노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노동할 수 없을 때는 사회보장을 통해 사회권을 보장하는 방식은 구닥다리일 뿐 아니라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그 말대로라면 이제 우리에게 놓인 선택지는, 탈노동 분배뿐이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기본소득이 정말 사회권을 보장할 수 있을까? 기본소득은 시민권을 바탕으로 조건 없이 지급한다. 그렇기 때문에 적정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전국민에게 월 3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 소요되는 예산은 약 186조로, 한국의 2020년 사회복지 재정규모 전체와 맞먹는다. 그렇지만 이 엄청난 예산으로 보장할 수 있는 급여는 ‘존엄한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정도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어떤 기본소득론자들은 기본소득만 하자는 것이 아니므로 급여수준은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기존의 다른 사회보장제도의 위에 기본소득을 추가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 입장의 선의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은 간단치 않다. 이 정도 규모의 새로운 재분배 정책을 도입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기존의 유사목적 정책에, 혹은 적어도 향후에 도입 또는 확대하려는 정책에 재정적·정치적 압력을 가한다. 만약 그 압력으로 인해 어떤 정책이 축소된다면, 그것은 정치적으로 힘이 약한 저임금 노동자, 빈곤층, 취약계층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일 가능성이 크다. 기본소득은 그 막대한 재정규모로 인해 오히려 누군가의 사회권을 위협할 수도 있다.

 

사회권 보장이 돈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20세기 복지국가가 어느 정도 발전하고 빈곤과의 전쟁이 성과를 이룬 시점에, 선진복지국가들이 직면한 새로운 숙제는 사회적 배제였다. 사회적 배제는 빈곤과 관련이 깊지만, 현금지원을 통한 소득보장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사회적 배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정치적 활동에, 사회적 관계에, 그리고 노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얼마간의 현금소득으로 이것이 이루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노동할 권리’, 좀 더 확대해서 ‘참여할 권리’는 그 자체로 중요한 사회권이다. 노동은 단순히 소득으로의 교환수단이 아니다.

 

공동체의 차원에서 대부분의 시민들이 노동이나 혹은 다른 형태의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에 참여한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연대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분배정책을 통해 존엄한 삶을 위한 자원을 보장받고 있으며, 동시에 모두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믿음은 사회적 연대의 기초인 상호성 원칙의 구현이다. 사회권을 조건부로 부여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노동을 비롯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라는 현금지원보다 더 근본적인 사회권을 보장하자는 이야기다.

 

물론 이렇게 보면 지금처럼 엄격하게 유급노동과 연계된 분배 시스템은 어느 정도 확장이 필요하다. 유급노동 뿐 아니라 돌봄노동, 자원봉사, 교육·훈련에 대한 참여 등은 모두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활동이다. 따라서 개인이 생애주기 내에서 유급노동과 다른 유의미한 활동들을 오갈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에게 N분의 1로 일정하게 현금을 지급함으로써 달성되지 않는다. 그 재정을 좀 더 잘 사용한다면, 고용, 실업, 돌봄, 교육, 자원봉사 등 개인이 생애 내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과 활동 사이의 이행을 지원하는 공적사회서비스와 소득보장제도를 연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모든 시민의 참여와 활동을 지원하는 것은 기본소득보다 더 효율적이고 정의롭다.

 

기본소득보다는 존엄한 노동의 보장을 말하자

전통적 복지국가가 전후 30년 동안 성공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생산체제와 복지체제의 선순환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노동의 위기 앞에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생산과 복지의 선순환, 효율성과 형평성의 조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구성원의 사회권을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방식이 동시에 사회적 생산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기본소득론자들은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모든 시민들이 안정 속에서 더 높은 창의성과 생산성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아직까지 하나의 가정일 뿐이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지급 가능한 기본소득의 수준은 과연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노동과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에 대한 참여기회를 넓히는 것은 좀 더 직접적으로 사회권과 사회적 생산을 조화시키는 방법이다. 누구나 원한다면 존엄한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 국가가 일정 수준 이상의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 존엄한 일자리를 가지기에 역량이 부족하거나 다른 여건이 안 된다면 역량지원이나 다른 여건을 해소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일자리를 가질 의사가 있음에도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취업지원과 소득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반드시 유급노동이 아니라도 다른 형태의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을 하는 이들을 위한 사회적 인출권 보장도 필요하다. 일반적인 일자리를 통해 사회에 참여하기 어려운 신체적·정신적 조건을 가진 이들을 위한 보호고용 및 재활서비스도 중요하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는 말도 있지만, 복잡한 문제는 복잡하게 풀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노동의 위기가 그렇다. 노동에서 벗어나 소득을 나누어주면 된다는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양상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대안들을 엮어나가는 성실하고 집요한 대안이 필요하다.

남재욱(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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