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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연속기획 ②] (반대측) 노동의 대안이 되기에 여전히 부족한 기본소득

제갈현숙(한신대학교 강사)

등록일 2020년09월11일 13시17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적당한 수준의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해 딱히 반대할 이유는 없다. 더욱이 코비드19 확산으로 감염 위험이 지구적으로 고조되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몇 개국에서 매우 간소한 방식으로 생계지원이 실시되었고,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이러한 변화는 정치권에 반영되면서 2011년 ‘무상급식 서울특별시 주민투표’ 당시 보편주의를 전면 반대했던 보수당은 2020년 8월에 기본소득을 새로운 정당정책으로 제시하였다. 물론 이들의 기본소득은 보편성, 무조건성, 충분성 모두에서 어긋난 정책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바로 이것이 기본소득이 가진 중대한 문제이다. 우파부터 좌파까지 구분 없이 활용가능하고, 기존 사회복지제도를 비판하지만 사실상 새로운 제도가 아니며, 사회복지를 내세워 결국 경제정책의 이득을 남긴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방향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노동의 대안으로 고려되기에 여전히 부족하다.

 

 


ⓒ 리얼미터, 2020년 6월 조사

 

 

20세기 복지국가의 원리와 신자유주의 자본의 노동에 대한 책임 회피

 

복지국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와 지구적 생산 분업을 기반으로 서구사회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사회민주주의가 발전했던 북유럽과 중부유럽, 북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전성기를 맞았고, 오늘날 복지국가의 주요 원리는 이 시기에 발전하였다. 소위 북반부 자본주의로 분류됐던 이 지역들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그리고 완전고용을 바탕으로 실업, 질병, 노령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노동자와 시민을 보호하는 체제로서 복지국가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복지국가에서 노동은 ‘누구에게 무엇을 전제로 사회적 급여(social benefit)를 줄 것인가’를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 노동소득을 벌어들이는 노동자들에게는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보편적인 할당원리가 적용되었고(사회보험), 노동자가 아닌 시민들에게는 당장의 불평등을 제거하기 위해 선별적인 할당원리를 적용하였다(공공부조와 각종 사회복지서비스). 즉 보편주의는 예방을 통해 빈곤으로 추락하는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선별주의는 이미 빈곤한 시민들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되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이후 경제위기의 주범이 복지국가의 과도한 재정지출로 지목되면서 시장을 통제해왔던 자본주의는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신자유주의로 전환되었고, 사회주의권의 몰락이후 신자유주의는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었다.

 

복지국가는 더 이상 노동자에게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삶을 보장해주지 못하게 되었다. 더욱이 전 지구적인 자본의 경쟁은 바닥을 향한 질주로 가속화되면서 노동의 안정성, 비용, 계급내부의 동질성 모두를 하락시키고 파괴하였다. 그 결과, 노동자 내부는 고용형태와 임금 및 임금 외 노동조건 모두에서 심각하게 분할되었다. 우파의 ‘다른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좌파는 20세기 말 내내 무력했고, 그 결과 복지국가는 신자유주의체제에 적응하며 변질되었다.

 

20세기 복지국가의 미덕은 생산영역의 분배모순을 재생산 영역의 재분배를 통해 시정하려고 했던 점이다. 그러므로 노동시장의 분배모순에 취약한 비정규직, 불안정 고용층, 노동취약계층 및 다양한 원인으로 실직된 실업자 등에 대해 재분배를 통해 불평등을 제거해야 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복지국가를 공격하였고, 자본의 노동에 대한 책임을 지워가며 임금비용 및 재생산 비용으로부터 도피하기 시작했다. 경제는 여전히 위기이고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사회적 불안정 요소로 인해 노동에 대한 자본의 책임 면제는 마치 ‘다른 대안은 없다’와 같이 강요되고 있다. 문제의 원인 제공은 자본축적 방식의 고도화를 위한 자본의 노동에 대한 공격이었지만, 우리 시대는 자본에 대해 집요한 책임 추궁을 포기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이러한 계급대결로부터 벗어나 있다.

 

기본소득, 새로운 것은 무엇이며, 자유로운 노동의 조건은 무엇인가?

 

신자유주의로 빚어진 대표적인 사회문제는 바로 소득 양극화와 각종 불평등의 심화이다. 기본소득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으로부터 분리된 무조건적인 소득보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보편성과 현금으로 지급하는 소득보장으로는 불평등은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노동자와 시민 모두에게 정액의 현금소득을 제공하면, 계층 간 소득 격차는 그대로 유지된다. 또한 기본소득으로 생계유지가 가능한 급여가 제공될 경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화폐가치가 하락하게 되고, 결국 증가된 소득만큼의 삶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다. 즉 노동의 불평등을 내세워 모두에게 동일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는 불평등과 차별은 해소될 수 없다.

 

기본소득이 기존 사회정책과 명백하게 다른 정책 대안이 되려면 자본주의 사회복지정책의 철칙이었던 열등처우의 원칙을 깨야만 한다. 이는 국가에서 제공되는 사회적 급여의 수준이 독립노동자의 임금수준보다 낮아야 한다는 원칙으로, 현실에서는 조세를 기반에 둔 공공부조의 소득보장 수준을 최저임금보다 현격하게 낮게 한다. 또한 이 원리는 소위 근로의욕 고취와 복지의존도 약화를 위해 지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기본소득이 기존의 제도와 현격한 차이를 두기 위해서는 적어도 최저임금 이상의 소득수준이 보장되어야 한다. 2020년 한국의 총인구는 5,178만 명(통계청)으로, 최저임금 1,795,310원(월 기준)을 지급할 경우 단순계산으로 약 93조의 재원이 매달 필요하다.

 

2020년 대한민국 정부의 예산안 규모는 513조이고, 이 중 보건복지노동의 예산은 181조 6000억 원이다. 최저임금 수준으로 기본소득이 제공될 경우, 보건복지노동 예산은 두 달 만에, 국가 예산 역시도 여섯 달이 못 돼서 소진된다.

 

즉 기존 체제가 유지되는 조건에서 이처럼 전향적이고 새로운 사회정책의 시도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기본소득의 실현은 단순히 재분배 영역의 조정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체제의 전환이 전제되어야 한다.

 

노동의 재생산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자본은 이제 자신들의 자취마저 지워가고 있다. 이러한 자본과 사적소유가 유지되는 한 권력과 정치구조는 결코 노동에게 친절한 기본소득을 양보할 이유가 없다. 노동이 생계노동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자유로운 개인의 필요에 따른 분배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불가능하다. 그런데 기본소득 논자들은 이 선후 관계를 불투명하게 혼용하면서 현실을 호도한다. 자본의 노동에 대한 책임은 임금뿐만 아니라 재생산비용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계급적 관점이 사회정책 내부에서 다양한 쟁점으로 대립하면서 불평등에 맞서고 있다. 모두의 시민권과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현재 취약하고 배제되어 있는 계층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과 사회적 책임이 결코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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