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구적인 코로나 사태에도 플랫폼노동은 여전히 뜨거운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다. 감염위험이 있는 식당이나 공공장소의 이용이 감소하고 음식배달 앱(App) 사용이 증가하며 플랫폼노동에 대한 관심도 더욱 커졌다. ‘배달의 민족’의 일방적인 수수료체계 변경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즉각적인 비판 및 공공앱 개발 선언은 디지털플랫폼 자본의 독과점이 야기할 폐해와 사회적 대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재택·원격근무가 확대되며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 하에 유연고용의 극단적 방식이라 할 수 있는 플랫폼노동이 전산업으로 확산되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예상도 늘고 있다.
디지털노동플랫폼은 기업인가, 시장인가?
최근 몇 년 사이 불어 닥친 플랫폼노동에 대한 열풍적 관심은 노동시장에서의 해당 노동자 규모의 빠른 증가와 더불어 관련 전문가들의 경쟁적 연구와 조사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지금까지 플랫폼노동과 관련한 우리사회의 논의에서 일정한 편향성이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플랫폼기업과 대다수 전문가들은 디지털플랫폼을 혁신으로 규정하며 플랫폼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와 플랫폼노동자들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사회적 보호방안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엔 다음과 같은 물음이 빠져있다. ▲과연 플랫폼노동은 본질적으로 과거엔 없던 전혀 새로운 성격의 노동인가? ▲플랫폼노동은 기존의 노동법·제도의 적용이 어려우므로 새로운 보호체계가 불가피한가? 이에 대한 해답은 “디지털노동플랫폼을 그 자체로 기업으로 볼 수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노동수요자와 공급자를 매개하는 시장일 뿐인가?”의 질문에서 찾아질 수 있다.
디지털플랫폼들엔 단순히 고객과 작업자를 매칭(matching)시키는 유형이 있는 반면 디지털 알고리즘을 통해 일감의 분배와 작업수행에 개입하는 유형도 존재한다.1
전자의 모델은 전혀 낯설지 않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벼룩시장’의 디지털버전에 다름아닐 수 있다. 물론 디지털플랫폼들은 단순히 구인구직 중개에 그치지 않고 고객과 작업자를 직접 연결해 중간착취를 없애거나 상대방의 평판 및 작업의 구체적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정보비대칭의 문제를 해결하며 에스크로를 도입해 결제과정의 분쟁 소지를 없애는 등의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일자리 미스매칭의 해소에 기여할 수 있는 긍정적 가능성도 있으나 불법파견을 확대할 위험도 있으므로 해당 플랫폼시장의 확대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후자는 우버나 배민, 타다와 같은 최근 수년간 사회적 이슈가 된 플랫폼들이 많다. 플랫폼업체들은 스스로를 IT기업으로 내세우며 플랫폼의 사용자들을 매개하는 시장을 제공할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이루어지는 노동을 들여다보면 플랫폼이 실질적 사용자로서 노동자들의 노동을 통제한다. 통제의 외형적 주체가 직영센터나 대리점의 ‘사람’이냐 AI기반의 ‘디지털 알고리즘’이냐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노동자의 입장에선 표준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동규율을 따라야 하고 소득실현과 계약의 유지를 위해선 개인의 노동시간 선택의 자유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노동플랫폼 시장은 아직까지 후자의 유형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실질적 종속관계에서 노동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와 감독이 디지털알고리즘을 통해 은밀하게 하지만 강력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현행 노동법에 의해서도 충분히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노동권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해야할 플랫폼노동자들이 다수이다. 은폐된 고용관계에서 독립계약자로 분류되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과 사회보험 적용이 우선되어야 한다.
현재의 노동법에서 노동자 개념 확장해 사회적 보호 받아야
디지털플랫폼자본은 새로운 고용형태를 노동법 체계 안으로 포섭하려는 노동운동의 시도로부터 탈주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들에 노동법제도가 형성된 이후 자본은 고용관계로부터 발생하는 법적 책임과 의무로부터 벗어나 이윤을 확대하고자 끝없이 새로운 형태의 노동계약방식을 추구해왔다. 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 소사장제와 지입제, 비정규직과 간접고용이 늘어난 것도 같은 이유이다. 디지털플랫폼기업들 역시 고용관계를 알고리즘 시스템 내부에 더욱 깊이 은폐함으로써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자성을 지우려 할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의 섬세하고 자율적인 노동, 그리고 이러한 노동력의 안정적인 공급이 해당 플랫폼 이윤창출의 원천으로 남아있는 이상 플랫폼업체의 노동통제 자체가 사라질 순 없다. 여기서 플랫폼노동자는 현재 노동법의 노동자 규정의 범위로부터 멀어질 뿐 노동자로서의 본질적 성격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사용종속관계에 있는 플랫폼노동자는 기존의 노동자와 다른 새로운 보호방식이 아닌 현재의 노동법에서의 노동자 개념을 확장해 사회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 우리의 노동운동으로 시야를 돌려보자. 노동운동 또한 스스로의 우선적인 보호대상의 범위를 노동법의 틀 안에서 사고해온 것이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기업별노조체계가 완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한국노총은 특히 특수고용, 프리랜서 등 불안정노동자들의 이해대변과 조직화에 적극적인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조합원들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시각도 여전히 적지 않다. 하지만 보다 열악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을 위하고 포괄하지 않는 노동운동이 사회적 약자의 권리로 쟁취한 파업권을 독점적으로 누리는 명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한국노총은 2020년 플랫폼노동자 조직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자 한다. 플랫폼노동자라는 고유한 업종이 따로 있지 않고 기존의 특고 노동자나 프리랜서 노동자가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얻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플랫폼노동자 조직화는 특고와 프리랜서 노동자의 조직화를 포괄한다. 일차적으로는 배달과 대리운전 업종을 기본으로 한 플랫폼노동조합의 설립을 빠른 시기에 추진하여, 향후 물류배송, 운송, IT프리랜서, 디지털 콘텐츠 창작 등 다양한 분야의 플랫폼노동자를 조직해 나가고자 한다. 미국과 유럽 노동운동의 사례와 같이 온라인포럼을 만들어 크라우드노동자의 조직화에도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와 함께 지난 4월 17일 코로나19 정부지원대책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간담회를 시작으로 플랫폼·특고·프리랜서 노동자의 정책개발과 대정부·사용자교섭전략 수립, 공제회모델 개발 등을 위한 네트워크(가칭 플랜넷)를 구성해 취약계층 노동자의 이해대변 활동도 적극 전개할 것이다.
1 권오성, “플랫폼유니온 출범의 기회와 도전”, 「플랫폼노동운동, 무엇을 할 것인가?」 토론회(2020.4.8.) 발제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