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를 보러 간 아이가 엄마에게 “코끼리를 너무 작은 밧줄에 묶어 둔거 아냐? 코끼리가 밧줄을 끊고 뛰어올까 무서워…”했더 니 엄마가 하는 말, “얘야 저 코끼리는 어렸을 때부터 아주 작은 밧줄에 묶여왔단다. 그래서 큰 어른이 되어도 밧줄을 끊고 벗어 나지 못하는 거야”라며 아이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삼성 노동자가 바로 몸집 큰 코끼리
바로 몸집 큰 코끼리가 우리 삼성 노동자들의 모습인 것 같다. 삼성은 입사 면접 때부터 노조 성향이 있으면 입사가 불가 능했다. 입사 후에는 노동조합 설립을 하려는 눈치가 보이 면 바로 인사상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지내왔다. 그래서 누구도 노동조합을 만들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나 또한 1996년 1월 삼성화재 공채로 입사해 누구보다 이런 길들임을 당하고 살아왔다. 그때마다 느꼈다. ‘이건 아닌데…’ ‘이건 올바르지 못한데…’ 이건 나만이 느낀 부당함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회사에 잘못됐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답답한 25년여의 세월을 삼성에서 보냈다.
▲ 삼성화재노조 설립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오상훈 위원장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직접 불이익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면 내일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조합 가입을 권유 하면 “나는 처자식이 있어서…” “난 승진을 해야 해서, 아직은…” “나는 회사에 혜택을 많이 받아서…” “회사가 불이익 주면 어쩌나…”라며 노동조합 손잡기를 두려워한다. 바로 이런 모습이 어제의 나였다. 하지만, 누군가는 용기를 내야 한다. 누군가는 시작을 해야 만 할 수 있다. 그게 내 첫 생각이었다.
그런데 가장 큰 걸림돌은 회사가 아닌 아내였다. 삼성화재에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아무도 안 하면 나라도 나서겠다고 얘기하면 노동조합 설립 전에 이혼부터 하게 될 거라고 협박을 했었다. 사내커플이었던 아내는 누구보다 삼성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설득하기가 더 어렵기도 했 다. 삼성화재에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도 잘 알고 삼성화 재에 노동조합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내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나의 꿈은 내가 다니는 회사가 누구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회사가 되는 것이고, 노동조합 설립을 통해 그 꿈을 이루겠다는 나의 설득에 아내는 마침내 동의하고 제일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줬다. 지금의 한국노총의 조직본부 사람들과의 연결도 아내의 주선으로 이뤄진 것이다. 아내 지인의 소개로 지난 해 12월 3일 한국노총과 공공연맹 담당자들을 만나 노동조합 설립에 대한 지도와 지원을 받으며 준비를 착착 진행해 12월 8일 노조설립 총회를 하게 되었다. 처음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15명이 되고 30명이 되더니 결국 2달 만에 650명의 조합원이 가입했다. 우리 노동조합은 다른 노동조합이 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 도를 했다. 노동자들이 쉽게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프로세스(문자발송 → URL 통한 가입 → 이후 홈페이지 공인인증 가입)를 통해 성과를 볼 수 있었다.
보험회사 지점장 경험이 노동조합 설립의 힘
노동조합을 만들 때 나의 보험회사 지점장으로서의 20여 년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일단, 보험지점장은 영업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지점 내 영 업하는 설계사/대리점 분들을 잘 조직하고 동기도 부여해 야 한다. 또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분들이 영업 설계사로 들어와야 매출이 늘어난다. 보험회사의 조직 관리와 노동조합의 조직화 사업은 유사한 면이 매우 많은 것 같다. 그래서 혼자 노동조합 설립하겠다 고 나설 때부터 자신감이 있었다.
나에게는 나만의 조직화 철학이 있다.
안된다 하지 말고 어떻게? 된다(긍정적사고)
안되는 원인은 누구한테 있다? 나한테(절대책임 사고)
포기하지 말고 어떻게? 될 때까지(절대긍정 사고)
삼성화재노동조합은 절대긍정 사고를 갖고 잘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앞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문제가 발생하 면 우리는 답을 찾아갈 것이며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삼성은 삼성이다
삼성 그룹 전반의 기업 운영과 경영 과정에서 각종 불법행위 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출범, 삼성계열사 내 노동조합이 하나씩 만들어지면서 우리 삼성화재의 노동조합 설립과정이 순탄했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삼성은 삼성이다. 노동조합 설립과정에서 사측은 우리부서에는 직원 90명 중 노동조합 가입자가 4명밖에 없다는 가짜뉴스를 만들어 퍼트린다. 이 말로 노동조합 가입자를 소수화 시키고 불이익 당하지 말라는 소문도 낸다. 전혀 근거 없는 소문이지만 학습(?)된 삼성노동자들에게 효과는 크다. “언젠가는 노조 가입자들을 오픈하게 될 것이다”며 소문을 내기도 한다. 인사 상 불이익을 받을 거라는 두려움을 갖게 하고 노동조합 가입 시도 자체를 막는다. 블라인드라는 익명게시판에 노조 간부에 대한 인신공격 및 개인정보를 활용한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부서장이 직원을 불러 노조가입 권유하지 말라고 협박까지 한다.
삼성 노동자들에게 지금까지 ‘노동조합’은 금기사항이었다. 노동조합에 대해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얘기하는 사람은 부서장, 경영진에게 찍히고 결국에는 인사상 불이익을 받아 왔다. 삼성에 노동조합을 설립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한다. 그래서 생명의 양식인 계란을 버릴 수 없다는 것 이 지금까지 삼성 노동자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중 계란 하나가 바위를 내리쳤고 650여 명이 함께 계란을 던지 고 있다. 한 명일 때는 계란이었는데 650명이 뭉치면 망치 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도 회사도 알아야 한다.
노동조합을 직원들의 불만을 야기 시키는 존재로 보는 시각도 있다. 노동조합은 불만을 야기 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만이 쌓이기 전에 불만을 해소시켜 더 즐겁게 일하는 문화를 만들고 생산성을 높이는 등 순기능이 더 많다. 삼성화재에 그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업적고과평가의 세부결과를 숨기는 등의 사측의 행동은 의심을 생기게 하고 불만을 더 키운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사측의 모습이야 말 로 상생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개인 부서장 등의 판단 으로 실수하지 않도록 이는 반드시 시스템화 되어야 한다. 앞으로는 회사의 발전과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유지와 개선 을 위해 사측은 숨기지 말고 오픈해서 노동조합과 함께 공 유하면서 답을 찾아 나갔으면 좋겠다.
삼성그룹 내 계열사별 노동조합이 하나씩 만들어지고 있 다. 이 노동조합들이 하나가 되어 사측과 동등한 힘으로 노동자들의 권익을 지켜주는 그 날이 올 수 있도록 미약하 나마 삼성화재노동조합 위원장으로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한국노총의 많은 선배님들이 격려해주시고 도와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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