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소위 ‘갑질’문화가 항상 논란이 되고 있는데 그 갑질이 가장 만연한 곳이 바로 직장입니다. 권력과 지위, 상하관계, 기수 등 여러 상황을 이유로 노동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 7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기 시작해 벌써 반년이 다되어갑니다. 이후 현장 상황과 노동조합의 과제를 모색하기 위해 ‘직장 내 괴롭힘과 노사관계’를 주제로 하는 토론회를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개최하였습니다.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 이용득·김경협·김영주·어기구 의원과 자유한국당 문진국·장석춘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노총중앙연구원·행복한일연구소가 주관한 이날 토론회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관한 노동조합과 사용자, 노-사 공동사례 발제와 논의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문제의 다양한 쟁점을 이해하고 향후 공동의 과제 및 역할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사회자는 문강분 대표(행복한 일 연구소), 발제자는 이강호 위원장(페르노리카 코리아 임페리얼 노동조합), 이준희 수석위원(한국경영자총연합회 노동경제연구원), 김은주 센터장(한국수자원공사 조직문화혁신센터), 토론자로 권오성 교수(성신여자대학교 법과대학), 문성덕 변호사(한국노동조합총연맹 중앙법률원), 이영기 사무관(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이 참석했습니다.
2019년 마지막 <노동N이슈>는 본 토론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지상 중계합니다.
|
* 이 자료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한국노총의 공식 견해를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취지와 내용
지난 2019년 7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기 시작해 현재 5개월째를 맞이했다.
직장 내 갑질 문화를 근절하자는 취지로 5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된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에서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하 ”직장 내 괴롭힘“이라 한다)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직장 내 괴롭힘인지에 대한 성립요건을 설명하고 있으며, 괴롭힘 신고가 접수될 경우 사용자에게 조사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고, 괴롭힘 피해자 및 행위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 괴롭힘인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고 사용자에게 명확한 강제 규정이 없다는 것이 제도의 미비점으로 지적되어왔다. 예를 들면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남녀고용평등법」에 관련 예방교육을 실시하지 않거나 문제발생시 적절한 조사와 조치를 취하도록 사업주에게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 '직장내 괴롭힘과 노사관계' 토론회 (2019.12.12)
토론회의 첫 사례발제를 맡은 페르노리카 코리아 임페리얼 노동조합의 이강호위원장은 지난 몇 년간 사업장에서 진행됐던 직장 내 괴롭힘 문제의 내용과 경과, 이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사례를 소개하며, 법시행 이후에도 괴롭힘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괴롭힘 가해자 임원을 옹호하는 회사, 그에 맞서는 노동조합의 고군분투
페르노리카 코리아는 프랑스계 위스키 수입 기업의 한국법인이다. 회사대표 장 끌로드 투불 대표는 직장 내 괴롭힘을 서슴치 않아온 임원을 옹호해왔다. 괴롭힘 가해자 임원은 자신이 씹던 껌을 부하 직원에게 씹으라고 강요하고, 판매 목표를 못 채운 팀장에게는 “대가리를 박으라"고 소리치는 등 상습적 욕설·폭언·갑질과 성희롱 발언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대표는 욕설도 리더십이라고 두둔하며 오히려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노동조합을 공격했다.
이 같은 내용은 언론은 물론이고, 2018년 10월 국정감사에도 채택되며, 노동청의 조사를 받았지만 회사는 겨우 과태료 400만원을 납부하며 사건을 종결하려고만 해왔다. 이에 노동조합은 민・형사 대응에 나섰고, 2019년 12월 5일 1심에서 피해자들이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판결에도 불구하고 회사 측 입장은 변함이 없어 여전히 문제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강호위원장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에도 현재로서는 실질적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고 있지 못하다고 밝혔다. 금지법이 보다 현실적인 문제해결의 도구가 되려면 ▲ 회사 인사위원회의 노사 간 동수 구성 ▲ 사업주의 의무 강화 및 행위자의 처벌 강화 ▲ 고용노동청의 실질적 관리 및 감독에서 실질적 권한 부여 등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규정하는 입법 대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노동경제연구원의 이준희 수석위원은 사용자측 발제자로 나서 괴롭힘 금지법 이후 많은 기업들이 처한 현실적 어려움과 상담사례를 소개했다.
사용자들의 실질적 고민들
이준희 수석위원은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해도 피해자가 낙인 및 소문을 염려해 비밀을 요구하는 경우가 흔하다 보니, 회사측이 가해자에 대한 단호한 대처나 처벌을 하고자 해도 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실제로 무엇이 괴롭힘인지에 대한 피해 신고자나 가해자의 인식의 차이가 커 회사가 징계를 해도, 혹은 괴롭힘이 아니라고 판단해도 양쪽 모두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회사가 조사 및 분쟁처리를 해도 법정다툼까지 가면서 분쟁이 장기화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최근에는 문제의 당사자를 분리하고 자세한 결과를 그 어느 쪽에도 통보하지 않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사용자나 관리자가 인식하기 어려운 은밀한 영역이나, 혹은 노동조합 내부 역학 관계에서 발생하는 괴롭힘, 손님 등이 판매노동자에게 가하는 괴롭힘 등은 실질적 대응이나 개입이 어렵다고 밝혔다.
기업들 역시 직장 내 괴롭힘을 판단하고 처리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어, 고용노동부 처리권한이 더욱 확대되는 것은 물론 노동위원회나 근로감독관 등의 정당한 권한과 권위가 있는 기관이 직장 내 괴롭힘 해당성 여부를 판단할 필요성을 절감한다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 법제화의 한계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해당 문제에 대응하는 하나의 출발점으로, 이후 법안의 미비점에 대해서는 다른 입법대안 등을 고려해야한다고 제시했다.
첫 번째 토론자인 권오성 성신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실제적인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전적 예방과 사회적 구제의 양 측면을 포괄하는 입법이 필요하며, 민법에 ‘인격권’ 조항 신설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 금지에 대해 보다 실효성을 가지려면 가해자뿐 아니라 사용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 있는 법안도 고려해야 하며, 피해자 구제를 위해서는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 제도를 마련하는 방안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의 문성덕 변호사는 ILO 제190호 협약이 담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요건에 비해, 현행 한국 법이 그 내용을 모호하게 규정하고 있어 예측가능성이 저하된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조치를 사업장 내에서 해결하도록 제한함으로써, 노동위원회·법원 등을 통한 외부 구제절차에 대한 진입장벽을 만들었는데, 이 또한 재고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예방 및 대응조치나 운영에 있어 반드시 노동조합의 참여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조합은 취업규칙에괴롭힘에 대한 규정을 넣는 것은 물론, 협력사 직원으로 통칭되는 파견노동자나 하청노동자에게도 적용되도록 함으로써, 원청 노동조합이 선도적으로 연대와 협력의 역할을 할 것을 제안하였다.
노-사 간 공동대응 모범 사례를 보여주는 한국수자원공사
노-사 간 협업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 사례에 대응하는 좋은 사례를 확인할 수도 있었다. 한국수자원공사 조직문화혁신센터의 김은주 센터장은 수자원공사가 물관리를 위해 민원을 받던 상담방식을 이제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도 적극 활용해 선도적으로 대응하는 방식들을 소개했다.
우선 수자원공사는 법 개정에 따라 7월 16일 취업규칙에 이를 반영했으며, 10월 14일에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고충처리지침을 제정했다.
또한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관련 고충이 접수되었을 경우 과거보다 조사기간을 줄이는 등 시스템을 대폭 개편해,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한편, 보다 정확한 조사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외부전문가와 협업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아울러 외부전문가의 사실조사를 토대로 권익보호위원회라는 공식 의사결정기구를 상설화해, 노동조합과 함께 비위행위 여부 및 행위자 조치방안에 대해 최종적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었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은 문제발생에 대한 조치만큼이나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그 예방활동이 중요한데,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과의 협업이 이루어져야 더 효율적으로 직원고충을 해소하고 조직문화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5개월, 우리의 고민은
한국은 OECD국가 중 노동시간이 긴 나라이고, 직장 문화도 일상생활이나 여가시간까지 회사와 밀접하게 관련된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그 노동자는 일상생활 전반에서 신체적·정신적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노동자의 삶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여야가 폭넓게 공감했기 때문에 작년 12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입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의 이영기 사무관은 현장의 다양한 사례 를 접수받고 있는데, 여전히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이 피해자 보호 및 구제조치라고 밝혔다. 아울러 금지법에 대한 악용사례도 접수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더 엄밀한 매뉴얼 및 현실적 조치들을 정부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조합이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대응하기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괴롭힘이 단순히 임원 등의 사용자와 노동자 간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간 혹은 노동조합의 조합원 간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때문이다. 어디까지를 사인 간의 분쟁으로 볼 것이며, 어디부터 공식기구에서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할 것이며, 노동조합은 그 결정과정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각 사업장 및 사례에 따라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또한 괴롭힘에 대한 주관적 인식도 큰 차이가 있어 분쟁 종류에 따라 노동조합이 명확한 입장을 취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즉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노동자들의 구체적 업무 내용, 조직 문화, 인간관계 등에 폭넓게 연관되어 있어 노동조합의 개입이 보다 섬세하게 이루어질 것을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편 노동조합의 역할이 이제 단순히 사측을 상대로 <요구사항>을 <쟁취>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일수록 노동조합은 회사 및 조직문화를 개선하고 경영에 참여하며, 직장 내 민주주의를 이루어 노동자들에게 더 좋은 일터를 제공하는 폭넓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즉 한국도 궁극적으로 노동하는 대다수 시민을 위한 공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시대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제 한국의 노동조합은 때로는 선-악 구도가 분명하지 않고, 매우 다양한 민원까지 고려해야 하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개선 및 피해자보호 조직문화 개선에 선도적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지난 12일 열린 한국노총 토론회는 ‘직장내 괴롭힘 문제’에 대한 다양하고 체계적인 대안과 노동조합의 구체적인 역할을 모색하는 뜻 깊은 시작점이 될 것이다.
※ 참고문헌 : 이강호 외, 『2019년 12월 12일 직장 내 괴롭힘과 노사관계 자료집』, 한국노총중앙연구원·행복한 일 연구소(직장 괴롭힘 포럼).
※ 문의 및 각종 제안 : 정혜윤(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02) 6277-0163 / smhansa@inochong.org
# 직장내_괴롭힘 #직장_민주주의 #한국노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