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오는 7월 27일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6년이 되는 날입니다. 정전 상태는 ‘잠시 전쟁을 중단한 상태’를 말합니다. 남과 북은 이렇게 비정상적인 상태로, 다시 말해 상시적인 전쟁 위기 상태로 66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난 6월 30일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으로 대화의 물꼬가 다시 틔게 된 점입니다. 이에 ‘남북미 판문점 회동 이후 한반도 비핵평화의 쟁점’을 주제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김동엽 교수님의 기고글을 올립니다.
하노이 이후 깨진 북미 실무회담 복원 여건 마련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사상 첫 남북미 회동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은 미국 대통령이 됐다. 군사분계선에 서서 잠시 만나 인사만 나누고 헤어질 것 같았던 북미 정상은 1시간 가깝게 대화를 나누었다. 2~3주 내 북미 실무회담 재개라는 성과까지 도출하고 보니 제3차 북미정상회담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남북미 또는 중국까지 포함한 정상들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모습은 이미 예상치 못했던 바는 아니나 이번 판문점 회동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상상 속에 바람은 있었다지만 현실 속으로 끌어내지는 못했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미 간 친서까지 오갔지만, 친서에서 판문점 만남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또 우리 정부가 나서서 오사카 G20 정상회의와 연결해 6월 말 트럼프 대통령을 서울로 초청하고 판문점 회동을 계획했다고 자화자찬하기도 힘들다. 하노이 이후 우리 정부의 노력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판문점 회동은 북한으로부터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까지 굴하지 않았던 집요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명장면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으로 시작되었고, 김정은 위원장이 이를 받아들여 하루 만에 극적으로 이루어진 판문점 회동이라고 해도 북미 모두 내부 정치적 목적이나 상호 대화 의지를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섰다. 하노이 이후 깨진 북미 실무회담을 복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협상 의제를 정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논의 가능한 의제의 가시적 범위를 확인하였기에 향후 2~3주 내 실무회담을 재개할 것이라는 발표가 가능했다.
예상치 못한 북미 간 자유의 집에서의 긴 대화가 없었다면 기대할 수 없었던 결과였다. 설령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제안했다고 하더라도 김정은 위원장은 이를 북미대화 재개의 마지막 기회로 보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 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하노이 회담에서의 의견차와 불만, 오해를 쏟아냈을 수 있다. 그 다음 달 노동신문도 “걸림돌이 되는 우려사항을 설명했고 전적으로 이해와 공감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게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했던 2분의 군사분계선 상봉은 김정은 위원장의 의도대로 53분의 자유의집 대화로 이어졌다. 예상보다 긴 대화를 마치고 나오는 김정은 위원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생각이 담긴 얼굴이었다.
앞으로 재개될 북미 실무회담에 대해 낙관할 수만은 없다. 판문점 회동 직후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의 완전한 동결을 원한다”며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북한이 비핵화할 때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하는 대신 인도적 지원이나 연락사무소 개설 등을 언급했지만 동결에 따른 상응조치인지도 불명확하다. 미 국무부 역시 동결이 입구라고 밝혔다.
미국이 동결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북한과의 협상에서 유연해진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셈법이 바뀌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미국이 이야기한 동결이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협상을 위한 전제조건일 수도 있다. 동결이 협상의제라고 하더라도 미국은 단순히 영변 핵시설의 동결이나 모든 핵 프로그램의 동결이 아니라 WMD의 동결을 요구하고 있다.
협상 중에 플루토늄 재처리, 우라늄 고농축 등 핵물질 생산뿐 아니라 미사일과 화생무기 생산을 중단하고 모든 관련 시설을 폐쇄 봉인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조건이다. 더욱이 동결을 확인하고 감시하기 위한 사찰단이 상주하는 문제와 동결 시설 목록을 신고하는 문제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미국의 셈법이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아니 오히려 또 다시 허들을 만들고 골대를 옮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미국이 말하는 ‘동시, 병행’이든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 동시’이든 범위를 결정하고 순서를 정하기 더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간극을 최소화해야
일단은 모든 핵 프로그램 동결을 약속하고 우선적으로 확인된 영변 핵시설 폐기가 더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도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를 다시 언급하며 북한과 미국 모두 반걸음씩 양보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α’는 없지만 검증을 포함하는 영변 핵시설 폐기를 보다 구체화하고 영변 폐기 시작과 동시에 미국의 상응조치로 싱가포르 정신에 따라 연락사무소 개설 문제나 종전선언(평화선언) 문제와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
단,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 논의를 시작하는 문제는 시진핑 주석이 지난달 방북 기간 중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적극적 역할을 하겠다고 한 이상 복잡해 질 수밖에 없다. 제재는 영변 폐기가 어느 정도 진전되는 중간 지점에 우리의 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 경제협력을 우선 예외적으로 적용 실시하고, 추후 국제사회도 유엔 안보리 제재의 부분적 또는 단계적 완화를 모색하는 방안이 가능할 것이다.
향후 열릴 북미 실무회담 결과에 따라 한반도 비핵·평화의 길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는 2~3주 이내 열릴 북미 실무회담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판문점 만남 이후 한반도 정세는 더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오는 10월 1일 중국 건국 70주년과 10월 6일 북중 수교 70주년을 계기로 김정은 위원장이 방중해 북중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 그 이전 9월 유엔 총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연설하게 될 수도 있다.
판문점 회동 이후 북미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이 유엔 총회, 북중정상회담과 어떤 순서로 진행돼야 하는지 설계할 필요가 있다. '9월 평양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영변 폐기를 다시 꺼낸 것은 결국 '9월 평양 공동선언'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함이라는 점에서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이번 판문점 회동으로 북미 간 대화의 채널이 다시 열렸다고 남북관계까지 정상화됐다거나, 우리의 중재자 역할이 복원됐다는 당위론은 우리의 희망일 뿐이다. 8월 한미연합훈련도 넘어야할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북한의 북미대화 채널이 리용호 외무상을 중심으로 한 외교라인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냉정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
중재자 역할에 대한 미련과 집요함보다 냉정하고 신중하게 ‘되돌릴 수 없는 남북관계’를 만들 담대함이 필요하다. 과도한 자기충족적 예언은 실현 가능한 정책과 전략수립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에 상상력도 중요하지만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간극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냉정한 상황인식과 솔직한 메시지 관리가 중요한 때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