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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을 혁명의 적이라 믿은 르샤플리에

등록일 2018년11월09일 13시25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윤효원 글로벌 인더스트리 컨설턴트 


르샤플리에(Issac Rene Guy le Chapelier, 1754~1794)는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프랑스혁명기의 정치인이다(사진). 그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은 직업조합 등 각종 결사체의 단결과 단체행동을 금지한 법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을 따 르샤플리에법이라 불리는 법은 프랑스혁명이 한창이던 1791년 6월 14일 제정되었다. 법은 “동일한 직업이나 직능을 바탕으로 하는 어떠한 종류의 시민들의 조합(guild)에 대한 철폐는 프랑스헌법의 근본 토대 가운데 하나로, 이를 재설립하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떠한 형태를 막론하고 금지된다”고 선포했다.  
 

법률로 금지한 것은 노동자의 단결과 파업권은 물론 기업가의 단결도 포함되었다. 당시 길드라 불렸던 각종 조합들은 봉건제의 유산이며 구체제의 제도였다. 개인의 자유를 가장 높은 가치로 내세운 프랑스혁명에서 개인의 자유를 구속할 목적을 가진 단체의 결성은 구체제로의 복귀를 의미했다. 혁명으로 인민의 보편적 이익을 대변하는 국가가 탄생한 상황에서 임금을 비롯한 노동조건의 결정은 개인 대 개인의 자유로운 합의를 통해 이뤄지면 될 것이었다.  
 

프랑스혁명은 자유주의의 봉화를 높이 올렸고, 이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유주의의 불길은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 세습 특권, 국가 종교, 절대군주, 왕권신수설로 대표되는 봉건제는 그 토대를 상실했다. 구체제의 상징인 폭압적 왕정 체제는 타도해야 할 괴물이었다. 미국 혁명에 이은 프랑스혁명의 성공으로 공화정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개인은 왕과 귀족의 폭압에서, 신분제의 굴레에서 해방되었다. 개인의 자유와 번영이 가장 중요한 시대적 가치로 떠올랐다.  
 

개인 대 개인이 평등하다는 자유주의의 가설은 19세기 산업혁명의 발흥과 자본주의의 성장을 겪으면서 가차 없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자본을 가진 자본가로서의 개인과 자기 몸뚱이만 가진 노동자로서의 개인은 결코 평등할 수 없었다. 보편적 이익의 대변자를 자임했던 국가는 보편적 이익이 아니라 자본가의 당파적 이익을 수호하는 계급 지배의 수단이라는 사실도 여지없이 폭로되었다. “기업 활동의 자유”, 즉 이윤 극대화가 지고의 가치인 사회 체제에서 노동자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거주 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계약 체결의 자유가 자유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진실이 드러났다. 나아가 노동자에게는 단체로 떼를 지어 자기 목적을 위해 행동할 자유, 즉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이 중요한 자유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자기만의 고유한 자유를 쟁취하려는 노동자들의 항쟁은 1830년 7월 혁명, 1948년 2월 혁명, 1848년 6월 혁명, 1871년 파리 꼬뮌을 거치면서 거세졌다.  
 

노동자의 투쟁과 희생의 결과, 단결과 파업 금지는 올리비에(Emile Ollivier, 1825~1913) 법으로 1864년 5월 25일 폐지되었고, 노동조합 결성 금지는 발데크 루소(Waldeck-Rousseau, 1846~1904) 법으로 1884년 3월 21일 폐지되었다. 임금과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문제에서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개인 대 개인의 자유로운 합의는 불가능하다! 자본주의의 평범한 사실을 법률로 인정하는 데 한 세기가 흘러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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