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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희극, 팔레스타인의 비극

장창준 한신대 통일평화연구센터장

등록일 2024년11월12일 09시18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그것은 전쟁이 아니다. 무차별적이고 일방적인 폭격이다. 희생자의 다수는 군인이나 무장단이 아니라 민간인이며 그것도 대부분 어린이와 여성이다. 그래서 이것은 학살이다.

 

그 학살은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넘어 레바논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며칠 전 레바논에 있는 유엔 평화유지군 기지를 덮치기도 했다.

 


▲ 10월 5일 오후 2시, 보신각 앞에서 열린 ‘가지지구 집단학살 1년, 이스라엘 규탄 전국 집중행동의 날’

 

6%의 땅에 살던 31%의 인구가 52%의 영토를 차지

 

같은 지역에서 각기 다른 민족이 국가 창설을 계획하는 상황에서 갈등과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중재자라고 나선 미국이 유엔의 간판 아래 내놓은 해결책은 94%를 소유하고 있던 팔레스타인인에게 48%의 땅을, 6%를 소유하고 있던 이스라엘인에게 52%의 땅을 배분하는 것이었다. 거주하는 인구수 역시 69:31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스라엘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팔레스타인은 격렬히 반대했다. 그러나 소용 없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은 국가 창설을 선포했고, 가장 먼저 미국이 승인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중동 국가들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1차 중동전쟁이 터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을 상대하기엔 중동 국가들의 힘이 미약했다.

 

이스라엘의 땅은 더 넓어졌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 지역은 더 좁아졌다. 2차 중동전쟁(1953년), 3차 중동전쟁(1967년), 4차 중동전쟁(1973년)은 그 양상을 심화시켰을 뿐이다.

 

75만 명이 30%의 물을, 4만 5천 명이 70%의 물을

 

2차 중동전쟁(1953년), 3차 중동전쟁(1967년), 4차 중동전쟁(1973년)을 거치면서 팔레스타인의 ‘영토’는 더욱 좁아졌고, 이스라엘의 ‘영토’는 더가자지구와 서안지구라는 거대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3차 중동전쟁 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점령한다. 그리고 가자지구로 유대인을 이주시켜 정착촌을 확대해갔다. 가자지구에서마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쫓고 이집트 시나이반도로 강제 이주시켜 팔레스타인 지역을 완전한 이스라엘의 영토로 만드려는 구상이었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가자지구의 수도시설은 완전히 파괴됐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이 공급하는 물에 의존해야 했다. 가자지구를 점령한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가 사용하는 물의 30%를 75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공급했다. 나머지 70%의 물은 4만 5천 이스라엘 정착민들에게 주었다.

 

6m 높이의 분리 장벽, 65km(가자지구)와 714㎞(서안지구) 길이로 설치

 

2000년대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분리 장벽을 설치했다. 6미터 높이의 장벽이 가자지구에 65km, 서안지구에 714km 길이로 설치되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동권마저 차단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2004년 7월 국제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하고, 철거 조처를 명령했으나 이스라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분리 장벽을 가리켜 “일리걸”이라고 외친다. 불법(illegal)이라는 것이다. 분리 장벽을 다녀온 세계 평화 활동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분리 장벽은 팔레스타인을 옥죄는 뱀”이라고.

 

짱돌 던지던 소년, 기관총을 들다

 

‘봉기’를 뜻하는 아랍어인 ‘인티파다’. 호사가들은 1980년대 후반의 1차 인티파다, 2000년대 초반의 2차 인티파다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과 봉기는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진행되었다. 다만, ‘1차, 2차 인티파다’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을 뿐이다.

 

이들의 투쟁 무기는 짱돌이었다. 맨몸으로 이스라엘 탱크로 돌진해 짱돌을 던졌다. 탱크 앞에 그들의 짱돌은 미약했다. 그러나 시간의 힘은 강했다. 짱돌을 던지던 소년은 청년이 되어 기관총을 들었다. 무장 투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그 전쟁은, 팔레스타인에게는 무장독립투쟁이다.

 

“포기하는 것보다 저항하다 죽겠다”

 

영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영국에서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팔레스타인에 돌아간 한 청년이 있다. 32살의 그 청년은 다섯 살, 두 살 자녀가 있는 가장이기도 하다. 영국에서 취업할 기회를 포기하고, 가자지구로 돌아가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이 일자리를 갖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국제사회에 보내는 편지를 썼다.

그는 10월 7일 일어난 사건(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오랫동안 사람들을 질식시키고 포위했던 “이스라엘의 잔혹한 점령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결코 가자지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 가족 모두는 함께 가자지구에 머물기로 합의했고, 죽는다면 여기서 죽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밝혔다.(그 가족이 생존해 있기를 바란다.)

 

제5차 중동전쟁

 

미국의 한 대학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10월 7일 이후 179억 달러(한화 24조원) 이상의 군사지원을 했다. 최근엔 미국의 사드 레이더와 발사대가 이스라엘에 배치되었다. 혹시 모를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에 대비한다는 명목이다.

 

미국의 지원과 보호 아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레바논을, 시리아를, 예맨을 무차별 폭격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제5차 중동전쟁을 우려한다. 어떤 이는 5차 중동전쟁이 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리라 전망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스라엘 뒤에는 미국과 나토가 있고, 이란으로 대표되는 중동의 반미국가들 뒤에는 중국·러시아가 있다. 중동전쟁은 이들 나라를 직간접적으로 연루시킬 것이다.

 

세계대전까지 논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인가. 그럴 수 있다. 그렇다면 이거 어떤가. 중동전쟁의 발발은 유가 폭등을 초래하고, 국제 공급망 체계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세계 경제는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된다.

 

문제의 근원엔 제국주의가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등 중동 문제에 근원엔 제국주의 영국이 자리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약속했던 맥마흔 선언, 이스라엘 국가 건설을 약속했던 벨푸어 선언 결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두 민족의 대립은 시작되었다.

 

영국 제국주의가 물러간 자리에 제국주의 미국이 들어갔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편향된 ‘해법’을 제시하여 이스라엘 건국을 도왔다. 그 후 미국의 지원 아래 이스라엘은 자신의 영토를 넓히는 희극의 시간을 향유했다. 그에 반해 팔레스타인은 봉쇄되고 쫓겨나는 비극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이스라엘의 희극,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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