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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북·러 조약의 내용과 의미

제성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등록일 2024년09월06일 13시4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2024년 6월 19일, 24년 만에 이루어진 푸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북한과 러시아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했다.

 

2000년 2월 서명된 ‘친선·선린 및 협조 조약’과 같은 해 7월 개최된 북·러 정상회담이 소련 해체 후 소원했던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그쳤다면, 2024년 6월 서명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질서의 변화를 배경으로 양국 관계를 과거 냉전 시기 수준까지 강화했다.

 


 

북·러 조약의 핵심

 

새로운 북·러 조약의 핵심은 유사시 상호 군사 원조이다. 해당 조약 제4조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가 유사시 한반도에 군사적 개입을 할 수 있는 확실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혹자는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의 법에 준하여’라는 문구를 지적하면서, 러시아가 군사 원조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해당 문구를 삽입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엔헌장 제51조’에 준한다는 문구는 오히려 해당 조항이 규정하고 있는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을 확인하면서 유엔 안보리의 결의 없는 군사적 개입의 법적 정당성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의 법’에 준한다는 문구는 ‘원조의 범위와 절차’에 관한 법적 근거를 지적한 것으로 군사적 개입의 제동장치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기는 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상원에서 불과 몇 시간 만에 군사력 사용승인을 받을 수 있는 러시아의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유사시 군사적 개입이 법적 문제로 지체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게다가 한·미 동맹의 법적 기반인 ‘한·미 상호방위조약’ 역시 제3조에서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유사시 상호 군사 원조를 ‘자동 군사개입’으로 해석해야 하는지 아닌지에 관계없이 북·러 조약은 사실상 ‘동맹 조약’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는 왜 북·러 조약을 체결했는가?

 

첫째, 러시아는 유라시아 안보의 파트너로서 반드시 북한이 필요했다. 푸틴 대통령은 2024년 6월 18일 ‘노동신문’ 기고를 통해 북한과 함께 ‘유라시아에서 평등하고 불가분리적인 안전 구조를 건설해 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러시아의 시각에서 유라시아 서쪽에서 나토(NATO) 확대, 유라시아 동쪽에서 한·미·일 군사협력, 그리고 이것을 연계하려는 미국의 전략은 유라시아 안보를 위협하는 ‘글로벌 동맹 구조’ 구축 시도로 해석되고 있다.

 

러시아는 유라시아 동쪽의 안보 위협에 맞서려면 새로운 세계질서 건설에 소극적인 중국과의 협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을 또 다른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만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확대되어 러시아와 나토 간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20세기 초 볼셰비키 혁명 직후 벌어진 내전에서처럼 서방 군대가 극동도 공격할 가능성이 큰데,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이라는 파트너가 필요했다.

 

따라서 북·러 조약은 유라시아 동쪽에서 전략적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러시아가 수행하고 있는 ‘재균형’ 전략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러시아는 북·러 관계 강화를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러시아의 시각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지속적인 우크라이나 지원은 자신을 장기전의 수렁에 빠뜨려서 국력을 소모하게 하려는 시도로 인식되는데, 그렇다면 다른 지역인 한반도에서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면 러시아도 같은 방식으로 북한에 무기, 탄약, 작전, 정보, 병참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되면 미국이 우크라이나보다 자신의 사활적 이익지대인 한국의 안보에 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북·러 관계 강화 자체가 서방을 겨냥한 러시아의 ‘전략 무기’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의 대응이 다른 지역이 아닌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것은 우리의 불행이자, 다름 아닌 윤석열 정부가 그동안 수행한 외교정책의 후과(後果)이다.

 

중국과 러시아

 

북·러 조약 체결로 인해 중·러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북·러 조약 체결이 한·미·일 군사협력에 명분을 제공하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러 관계는 그 정도로 허약하지 않다.

 

첫째, 미국이 글로벌 패권국 지위를 유지하는 한, 중국은 러시아가 필요하다. 냉전 시기 중국이 미국과 수교하고 소련과 대립하면서 사회주의권이 분열되었고, 이는 결국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미국이라는 글로벌 패권국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대립과 분열이 자신들에게 파멸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기존 세계질서가 유지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고 있지만, 러시아가 ‘공동전선’에서 이탈하는 것만은 두려워하고 있다. 더 나아가, 향후 미·중 패권 경쟁의 심화로 인해 만일 현재 러시아가 직면한 정도의 경제적·군사적 압박을 받게 된다면, 중국은 러시아의 식량과 에너지, 무기와 탄약 지원 없이 결코 버틸 수 없다.

 

둘째, 중국은 북·러 관계 강화를 한·미·일 군사협력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한·미·일 군사협력이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비동맹 노선을 포기하고 북한과 군사협력을 강화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러 관계 강화는 자신의 이미지를 손상하지 않으면서, 더 나아가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면서, 한·미·일 군사협력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물론, 중국은 북한이 냉전 시기처럼 자신과 러시아의 경쟁을 부추기면서 이익을 추구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이를 경계하고 있다. 따라서 속으로는 북·러 조약 체결을 반기고 있지만, 겉으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실책

 

그동안 한국 정부는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러 관계가 잘 관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설사 한·러 관계는 관리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북·러 관계는 전혀 관리되고 있지 않았다.

 

새로운 북·러 조약의 의미를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그동안 북한과 러시아 간에는 2000년에 복구된 비포장도로 하나가 놓여있었는데, 이번 푸틴 대통령의 평양 방문 이전에는 여기에 아스팔트를 깐 왕복 2차선 도로 정도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런데 결과는 왕복 8차선 고속도로였다. 이제 고속도로를 놓았으니, 무슨 차가 지나갈지는 정책적 결단에 달렸다. 중요한 것은 이제 북한과 러시아 간에는 고속도로가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북·러 조약 체결 직후 정부 당국자는 부랴부랴 러시아가 북한에 정밀 무기를 제공한다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제공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제공한다고 해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양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서방은 2년 반이 넘도록 살상 무기보다 더한 것까지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경고는 정부 당국자의 말처럼 러시아를 한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지렛대’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살상 무기 제공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한·러 관계를 파탄 내는 ‘방아쇠’가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다행히 러시아는 한국과의 경제협력 단절을 원치 않고, 그래서 한·러 관계가 유지되기를 바란다. 러시아가 한·러 관계 유지를 원하는 이유는 살상 무기 제공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지난 30여 년간 한국 기업과 노동자들이 러시아 시장을 뚝심 있게 개척하면서 만들어낸 성과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현지에 진출한 기업과 노동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동시에 한반도에서 안보딜레마를 가중하는 ‘힘에 의한 평화’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고, 북한과 대화의 물꼬를 트는 ‘신뢰에 의한 평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수행한 외교정책의 가장 큰 실책은 한·미·일 군사협력에 집착하면서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제한하고 적을 많이 만들었다는 데 있다. 새로운 북·러 조약 체결 이후 북한과 러시아의 몸값이 너무 올랐다. 이제 북한 또는 러시아와 협상하려면 이전보다 더 큰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그 비용은 안타깝게도 차기 정부와 성실하게 땀 흘려 일하는 우리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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