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복수의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경우 노동조합들은 하나의 교섭대표를 정하여 사용자와 단체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여야 한다(노조법 제29조의2). 따라서 단체교섭권은 교섭대표 노조에게 집중되며 나머지 노조들은 사실상 단체교섭, 단체협약 체결 과정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행 노조법은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하면서도 조합원의 민주적 의사를 반영하기 위한 선거절차를 별도로 두지 않고,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특별한 절차 없이 교섭대표 노조의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자율적 합의, 공동교섭대표단 등 다른 요소도 가미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과반수 노조가 교섭대표로 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는 교섭대표로 되지 못한 소수 노조의 단체교섭권 침해가 이슈로 떠올랐다. 헌법재판소가 과거 2012년 이미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에 대해 전원일치 의견으로 한차례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위헌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최근 2024. 6. 27. 헌법재판소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에 대해 다시 한번 합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번에는 재판관 9명 중 4명이 헌법불합치 의견을 제시했다(이하 ‘대상판결’). 노동법적으로 큰 의미인 결정이기에 대상판결을 소개하고자 한다. 합헌 의견은 이미 널리 알려진 2012년 결정과 같기에 본고에서는 위헌 의견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 헌법재판소
위헌 의견
교섭대표 노조의 독점적 단체교섭권 행사를 규정한 노조법 제29조의2 제2항의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노조법 제29조의2 제2항은 교섭대표 노조가 되지 못한 노동조합과 그 조합원의 단체교섭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조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의 독자적인 단체교섭권 행사를 전면 제한하여, 침해의 최소성 요건과 법익의 균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가. 침해의 최소성
공정대표의무, 개별교섭, 교섭단위 분리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합헌성을 담보하는 조치라고 할 수 있는데, 아래에서는 이러한 조치들이 교섭대표 노조가 되지 못한 노동조합과 그 조합원의 단체교섭권 침해를 최소화하는 조치로 충분한지를 살펴본다.
공정대표의무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합헌성을 담보하는 조치들 가운데 핵심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절차적 공정대표의무의 내용을 구체화하면서, 교섭대표 노조는 소수 노조에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체결과 관련하여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 의견을 수렴할 의무를 부담하지만, 교섭대표 노조가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통해 마련한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에 대해 자신의 총회 또는 대의원회의 찬반투표 절차를 거치면서도 소수 노조가 참여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거나, 그들의 찬반의사까지 고려하여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에 대한 가결 여부를 결정하지 않더라도 절차적 공정대표의무를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는데, 그 논거 중 하나로 노조법과 그 시행령에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와 관련하여 규정이 없음을 들었다(대법원 2020. 10. 29. 선고 2019다262582 판결 참조).
소수 노조의 절차적 참여권은 교섭대표 노조가 단체협약을 체결함에 있어 소수 노조의 의사를 실질적으로 반영시킬 수 있을 때 실현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정보제공이나 단순 의견수렴 등의 절차는 요식적인 것에 그칠 수도 있어 소수 노조의 의사를 실질적으로 반영시키는 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 찬반투표 절차는 조합원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절차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서 더욱 요구되는데, 교섭대표 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을 직접적으로 적용받는 소수 노조로서는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 절차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의사를 반영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노조법은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와 관련하여 아무런 규정도 하고 있지 않다.
이에 소수 노조는 잠정합의안에 대해 찬반투표 절차를 거칠 때에도 그 절차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데,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절차 참여 수단이 막혀있다.
또한, 그밖에 정보제공이나 단순 의견수렴 등의 절차 외에 소수 노동조합이 단체교섭 과정에서 자신의 의사를 실질적으로 반영할 방법이나 수단에 관한 규정도 두고 있지 않다. 결국, 노동조합법 제29조의4가 정한 공정대표의무만으로는 소수 노조의 단체교섭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적 참여권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자율적 개별교섭은 교섭창구 단일화로 인한 문제점을 보완하는 조치로 여겨지나, 사용자가 동의한 경우에만 개별교섭이 가능하여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합헌성을 담보하기에는 취약하다.
사안에 따라 개별교섭이 필요한 경우에는 노동조합에 개별교섭 신청권을 인정하여 노동위원회가 개별교섭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둠으로써 교섭대표 노조가 되지 못한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 침해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 자율적 개별교섭이 사용자가 상대하는 노동조합에 따라 자의적으로 교섭방법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남용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음을 간과하기 어렵다. 나아가 현행 교섭단위 분리 제도는 분리 인정기준이 비교적 엄격하고, 노사 자율의 방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위원회의 결정에 의해서만 가능하므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합헌성을 담보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의 사정을 종합하면, 노조법 제29조의2 제2항은 교섭대표 노조가 되지 못한 노동조합과 그 조합원의 단체교섭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조치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의 독자적인 단체교섭권 행사를 전면 제한하고 있으므로 침해의 최소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나. 법익의 균형성
교섭대표 노조가 되지 못한 노동조합과 그 조합원의 단체교섭권 행사 제한이 비록 교섭대표 노조가 그 지위를 유지하는 기간에 한정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기간 동안 독자적으로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없다.
교섭대표 노조가 되지 못한 노조와 그 조합원의 단체교섭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 이러한 여건에서 독자적인 단체교섭권 행사를 전면 제한하는 것은 단체교섭권에 대한 과도한 규제에 해당한다. 따라서 노조법 제29조의2 제2항은 법익의 균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시사점
복수노조가 허용되며 단결권 침해 논란이 종식되었지만, 복수노조와 동시에 도입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로 인하여 소수 노조에 대한 단체교섭권 침해 논란은 계속된다.
이를 반영하듯 공정대표의무 위반 사건은 매해 늘어간다. 소송의 승패를 떠나 노총 변호사로서 늘 마음 아픈 사건들이다. 이번 합헌 결정으로 교섭창구 단일화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에 몸담은 이 땅의 모든 노동자가 이번 위헌 의견을 되새기며 무디어지거나 빗나가는 화합과 연대의 정신을 날카롭게 바로잡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