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반(反)지성적 노동정책의 특징 중 하나로 ‘언행 불일치’, ‘거꾸로’ 정책추진을 꼽을 수 있다.
작년 화물연대 총파업 국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노사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늘 개입해서 너무 노사문제에 깊이 개입을 하게 되면 노사 간에 원만하게 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역량과 환경이 전혀 축적되지 않기 때문에 정부 개입이 노사관계와 문화를 형성하는데 바람직한지 의문이다”라며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노사 자율을 강조한 바 있다. 현재 노조 회계 공표를 의무화하고 이에 응한 노조에 대해서만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등 노조운영에 개입·통제를 시도하며 노조를 달달 볶고 있는 것과 전혀 일관되지 않는 언행 불일치의 대표적 사례이다.
▲ 10월 18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노사자율교섭 확대 및 근로시간면제제도 전면 개편 노조법 개정안 처리 촉구 기자회견’
‘거꾸로’ 정책추진 사례로는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 등 개별적 근로관계법과 노조법을 중심으로 한 집단적 노사관계법 각 영역에서 필요한 정부의 역할을 정반대로 추진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부는 현재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추진하며 노사 간 자율적 선택을 강조하면서, 노사관계에 대해서는 정부의 통제·개입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각 영역에 대한 정부의 역할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다. 판례는 근기법은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에 대하여 국가의 관리·감독에 의한 직접적인 보호의 필요성이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근로계약에 기초한 개별적 노사관계를 규율할 목적으로 제정되었으나, 노조법은 노무 공급자 사이의 단결권 등을 보장해 줄 필요성이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율할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개별적 근로관계법 영역에서는 근로권을 보장하려는 국가의 후견적 기능이 강조되는 반면, 집단적 노사관계법 영역에서는 노동3권이 실질적으로 행사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국가의 여건 조성 기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노사관계의 대원칙 : 노사자율교섭을 통한 노사자치와 협약자치
이처럼 노조법 등 집단적 노사관계법은 노사 간 교섭력의 균형을 확보하여 노사관계의 질서를 자치적으로 형성하고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이를 ‘집단적 노사자치(집단자치)의 원리’라고 한다. 집단적 노사자치의 원리는 노조법을 관통하는 지도원리이자 헌법상 노동3권 보장에 내재한 객관적 가치로서, 조합자치, 협약자치, 노동쟁의에서 자주적 해결의 우선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노조법 제48조에서는 “노동관계 당사자가 단체교섭의 절차와 방식을 규정하고, 노동쟁의가 발생할 때는 자주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여 이를 확인하고 있다. 정부의 노조탄압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노사자치의 원칙과 그에 입각한 노사자율교섭 보장 문제는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다시 한번 명심하고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이다. 대정부 관계 정립과 투쟁전략은 이러한 기본적 토대 위에서 수립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사자율교섭과 국가의 역할
노사자율교섭 보장, 그리고 이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역할은 지난 2021년 개정 노조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신설된 제30조 제3항에서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기업·산업·지역별 교섭 등 다양한 교섭방식을 노동관계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에 따른 단체교섭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신설 규정은 우리나라가 비준한 ILO 기본협약 제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 협약) 제4조 “정부는 단체협약에 의해 고용조건에 관한 규정을 둘 목적으로 한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와 노동자조직 사이에 자발적 교섭을 위한 절차의 충분한 개발과 활용을 장려하고 촉진하는데 필요한 경우 국내 사정에 적합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는 규정에 근거한 것이다. 정부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다양하게 교섭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여야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 정부가 그토록 떠들어대는 ‘노사 법치주의’를 하고 있는가? 단호하게 아니다. 지금 정부는 노사자치를 노사 법치주의로 뭉개며 ‘언행 불일치’, ‘거꾸로’ 정책추진을 하고 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원청사용자에 대한 하청 노조와의 교섭 의무를 인정하면서 하청 노동자의 단체협약 체결권과 단체행동권은 인정할 수 없다는 황당한 판정을 내렸다. 산재 노동자 자녀 우선채용조항을 부풀려 고용세습이라 선동하면서 단체협약 시정명령을 내렸다. 다분히 편향적인 근로시간면제제도 운영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현장의 임단협을 교란하고 있다. 수년간 노사갈등 없이 평화적으로 교섭을 체결해 오던 사업장에서조차 정부 눈치를 보느라 교섭에 난항을 겪는 등 노사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노사 법치주의에 따른 노사 자율교섭 보장을 위한 정부의 역할은 명확하다.
법·제도상 보호와 노사협약에 따른 자치적 보호에서 이중배제 되어 있는 비정규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 최근 급증하고 있는 플랫폼·프리랜서 등 비정형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초기업적 협약체계를 모색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사용자의 공동책임, 특히 원청의 책임 강화에 대한 법적인 정비와 자율 협약을 유도하기 위한 교섭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지자체별 노동센터를 먼지털기식으로 꼬투리를 잡아 예산으로 겁박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권익센터를 통한 지역 취약노동자 보호가 되도록 지원체계를 확대·신설하는 것이다.
근로시간면제제도 개편
10월 10일, 한국노총은 근로시간면제제도 개편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노조법 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비례)을 통해 법안을 발의했다. 현재 상한선으로 규정하고 있는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하한선 방식으로 수정함으로써 노사가 그 이상으로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고,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초과하여 급여를 지급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취급하는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이다. 노사자율교섭을 위해서는 노조법상 교섭창구단일화 절차, 단체협약 효력 확장 등 수 많은 난제가 산적해 있지만, 근로시간면제제도는 현장 노조 활동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라도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근로시간면제제도는 노사자율적으로 건전한 노사 관행을 정착시키자는 취지로 도입되었으나, 지금은 노조 활동 위축과 노사갈등, 노노 갈등을 유발하는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노조탄압 수단으로 역이용되기도 한다. 제도 자체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한 이유이다. ILO 결사의자유위원회 역시 우리가 비준한 기본협약 원칙에 맞게,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이 법적 개입을 받지 않도록 하고, 이에 관한 노사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교섭이 이루어지도록 할 것”을 수차례 권고한 바 있다. 해외 주요국가에서도 근로시간면제제도는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에서 근무시간 중 최소한도 이상의 유급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는 제도로써 노조 활동 보호 기능을 한다. 한국노총은 2023년 정기국회 국면에서 노사자율교섭 확보 그리고 근로시간면제제도 현실화를 위한 대국회 집중투쟁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