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 문제는 소규모 사업장, 취약 노동 계층에 집중된다.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임금 상담의 비중은 높아진다. 부천상담소의 상담 사례를 보더라도 임금․퇴직금 상담 의뢰자의 대부분이 건설일용직이나 소규모 식당 등 서비스업, 그리고 단기간 계약직과 경비나 미화 직종에서 일하는 60대 이상이 고령 노동자들이다.
▲ 8월 8일,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앞에서 위니아전자노조가 주최한 '위니아 박영우 회장 체불임금 변체촉구 집회'
현장의 임금․퇴직금 체불 상담 사례를 살펴보면 뚜렷한 특징이 드러난다. 첫째는 불안정한 형태의 고용 관계를 맺고 있는 취약 노동 계층에서 임금체불 문제가 장기화하고 악성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라고 말하는 일용직 노동자가 대표적이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조경 일을 하는 60대의 강아무개씨는 작은 조경회사에 소속되어 전국을 돌며 조경일을 한다. 60대의 고령이라 일거리가 많지 않다. 올해 3월부터 3개월간 충남 천안에 어느 공장에서 조경일을 했는데 임금 500만 원을 아직 받지 못했다.
그를 채용한 사업주는 강 씨에게 원청회사가 대금을 지급하지 않아 노임을 못 주고 있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고용노동지청에 신고해 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나마 일을 시켜주는 조경회사에 눈 밖에 날까 봐 머뭇거리다 보니 벌써 2개월이 지났다.
일용직은 건설 현장을 비롯해 제조업, 그리고 각종 용역업체에 단기간 고용되어 일한다. 건설 현장에서는 속칭 ‘오야’라 불리는 인력 수급 업자가 일당제로 노동자를 모집해 하청받은 업무를 수행한다.
공사를 발주한 원청회사의 대금 지급 기간과 근로기준법상 임금 지급 기한이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원청의 대금 지급이 늦어지면 고용 관계상 사업주인 ‘오야’가 일용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지급하지 못한다.
물론 이런 경우를 대비해 건설산업법과 근로기준법은 임금체불에 대하여 원청회사의 연대책임을 지워 체불 당한 노동자가 원청회사를 상대로 임금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건설일용직들의 일감을 주는 원청회사나 오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일용노동자 처지에서 이들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하는 것은 어렵다.
청소년이나 여성 비정규직 등 취약 노동 계층에 대한 수습 기간 중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 지급 관행도 여전하다. 한국노총 구미상담소 상담 사례에 따르면 개인 카페에서 수습 기간을 정해 2개월간 근로 제공을 한 어느 노동자의 시급은 5천 원에 불과했다. 2024년 최저임금 시간급 9860에 4천8백6십 원이나 미달한다.
현행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1년 이상의 근로계약을 한 경우 3개월 이내의 수습 노동자에 대해 최저임금의 10%를 감액할 수 있다. 업무에 미숙한 노동자에 대해 일정 기간 업무 숙달에 따른 사용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취지일 것인데, 편의점 등 단순 판매 직종이나 1년 미만의 단기간 노동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반 서비스 업종에서 청소년이나 여성 비정규 기간제 노동자에 대해 수습기간 중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 지급의 관행이 여전하다.
이러한 중소 사업장의 임금체불 문제는 사업주의 영세성과 근로기준법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대부분 인사 노무 역량이 부재하여 연장이나 휴일근로 등 초과근로에 대한 가산 수당을 미지급 하거나,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 미지급, 퇴직금 지급의 기준이 되는 평균임금 산정 때 포함되어야 하는 수당을 누락해 발생하는 퇴직금 차액 미지급 등이 임금체불 갈등의 쟁점이 된다.
인사 노무 역량이 부재한 중소 사업장은 일반적으로 소득세 등의 원천징수 업무를 대리하는 세무사에 4대 보험료나 임금 산정 업무 등을 위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노동관계법 전문가가 아닌 세무사는 평균임금 산정 때 산입 수당 누락 등 근로기준법에 위반되는 자문을 사업주에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제 상담 사례를 보면 평균임금 산정이 잘못되었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노동자에게 사업주는 세무사에게 문의하라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기 일쑤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은 임금체불 문제 해결을 위해 시급히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임금체불이 발생하면 노동자는 고용노동지청에 문제를 제기하여 행정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체불 노동자에 대한 고용노동지청의 행정서비스에 문제가 있다. 임금체불 사건에서 사업주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여 사건이 계속하여 진척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근로감독관 집무 집행 규정에 따라 사업주에 대한 인신 구속 등의 근거가 있음에도 경찰의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유독 임금체불 사건에서 고용노동부는 사업주에게 매우 관대하다.
마지막으로 현행 고용보험법에 따르면 임금체불로 인해 자발적으로 이직하면 실업 인정이 되어 구직급여를 수급할 수 있다. 그러나 이직 일로부터 2개월 이상의 임금체불이 발생해야 하는 만큼 피해노동자로서는 현행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인 임금체불을 2개월이나 견뎌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사업주의 임금체불을 2개월 이상 당해야 실업 인정이 요건이 된다고 정해 놓으면 이는 임금체불을 감수하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피해노동자가 해당 사업장을 벗어나 새로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급히 관련 규정은 개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