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희 한국노총 정책1본부 부장
아주 오래전 쓰인 성경에도 임금체불 문제가 담겨있다면 믿겠는가? 종교적인 내용을 떠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서적 중 하나인 성경에는 품꾼(노동자)의 품삯(임금)이 언급돼 있다. 품삯은 제때제때 지급해야 하고, 미루게 된다면 벌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기원전에도 임금체불로 인한 노동자들의 고충이 있었고 임금을 미루면 벌을 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임금체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오히려 악화하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는 임금체불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하겠다며 엄포를 놓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임금체불액은 1조 7천억 원을 넘으며 사상 최대치로 증가했고, 올해 상반기에만 이미 1조 원을 넘어서며 하반기에 이르면 임금체불액이 2조 원을 넘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한국노총에서는 이러한 노동현장의 심각한 임금체불 상황 해결을 위해 올 초부터 노동자 임금체불 근절 관련 활동을 전개했다. 지난 4월에는 임금체불 신고센터를 출범시켜 전국 17개 시·도지역에서 임금체불 관련 법률 상담 및 해결 절차 안내 등을 통해 임금체불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고충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임금체불 원인별 대책 마련 제시
한국노총은 지난 9월 10일 국회에서 ‘임금체불 근절대책 및 제도개선 토론회’를 열고 현재 우리나라 임금체불 현황 및 실태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되짚어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와 국회의 책임 있는 활동을 촉구했다.
▲ 9월 10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임금체불 근절대책·제도개선 토론회’
이날 토론회 발제자(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금체불 사태를 사실상 방치하는 정부와 국회에 안일함을 꼬집었다.
“벌써 수년째 같은 주제로 토론회에 참석한다.”고 운을 띄운 그는 말로만 임금체불 근절을 외치며 실제 법 개정이나 제도개선을 위한 노력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임금체불 근절을 위해 근본적으로 임금 지급에 대해서 노동에 대한 개념의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금의 액수와 산정 방법은 노동자의 노동력이 제공되기 전 미리 ‘결정’되면서 사용자는 정해진 임금에서 최대 효율의 노동력을 활용하려는 구조가 유지되기에 임금체불의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임금체불의 발생원인을 ①사용자가 임금을 지급하기 싫거나(주관적 요인), ②사용자가 임금을 지급할 재원을 보유하지 못하거나(객관적 요인), 또는 ③사용자가 법정수당 등 지급해야 할 임금액을 제대로 산정하지 못하는 등으로 구분했으며, “임금체불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각각의 원인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면서도, 포괄적인 법·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임금체불의 각 원인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개선의 방향으로 사용자의 주관적 요인에 대해서는 임금체불로 인하여 사용자에게 발생하는 손실(즉, 제재)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하고, 사용자가 지급할 재원이 없을 경우 대응방안으로 미지급된 임금채권이 누적되는 것을 줄이거나 임금채권 집행에 복종할 책임재산의 범위를 확장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사용자가 법정수당 등 임금액의 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임금체계를 보다 투명하고 단순하게 개선하도록 법·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으며, 사용자에 대한 교육 강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복잡한 임금체계와 임금체불
임금체불은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다수 사례 중 하나는 복잡한 임금체계로 임금산정이 어려워 임금이 체불되는 건이다.
특히, 임금체불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퇴직금 산정의 경우, 퇴직금 산정 기초가 되는 평균임금 항목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비단 노동자뿐만 아니라 사용자 역시 마찬가지다.
엄연히 근로기준법에는 평균임금에 대한 정의와 시행령이 명시돼 있지만, 장기근속 근로자가 퇴직할 경우 발생하는 임금산정 항목 문제, 통상임금에 대한 정의 규정 등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복잡한 임금 항목과 체계로 어떤 임금 항목이 평균임금 또는 통상임금으로 해당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렇게 임금구성 항목이 복잡해진 이유는 기본급의 비중은 적게 하고 각종 제 수당을 늘린 사용자의 꼼수가 작용한 결과이다. 또한, 제조 대기업을 중심으로 ‘성과급’도 논란을 일으킨다. 각종 성과급이 퇴직금의 산정 기초가 되는 평균임금에 포함되는가를 두고 여전히 법의 판단과 해석이 그때마다 바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복잡한 임금체계 구조 속에서도 ‘근로의 대가성’이 인정되고 그 대가로 지급되는 것은 어떠한 명칭으로 불리던 명백히 임금이다. 임금체계의 단순화 및 투명성이 높아져야 임금체불이 줄어든다는 지적이다.
‘임금체불방지법’ 국회 통과...그리고 과제
우리나라 실제 임금체불 형사처벌 사례는 극히 적다. 경제적 살인이라고 불리는 체불 피해자들의 고통에 비해 실제 체불임금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
한국노총은 임금체불 문제를 예방·근절하려면 보다 강력한 제도적 대책이 필요하다며 체불 임금에 대한 처벌 강화하기 위해 ▲체불임금 이자지연 제도 확대 적용 ▲반의사불벌죄적용 폐지 ▲상습 체불사업주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임금채권 시효 연장(5년) 등 다양한 대책을 제시하며 국회 입법 활동을 추진했다.
임금체불 근절대책 및 제도개선 토론회 후 9월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일명 ‘임금체불방지법’이라 불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이날 통과된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임금을 상습 체불 사업주에 대한 정의, 신용제재 절차 간소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골자로 한다. 구체적으로, 상습 체불 사업주는 1년 이내 임금 3개월 이상, 5회 이상 체불 총액이 3천만 원 이상 사업주로 정의했다.
신용제재의 경우에도 앞으로 처벌을 원치 않아도 제재가 가능하고, 3년 이내 2번 이상의 유죄 판결, 1년 이내 체불액이 3천만 원 이상 시 반의사 불벌죄 조항도 적용되지 않는다. 아울러, 명백한 고의로 1년에 3개월 이상 체불한 경우에도 체불액의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도입된다. 법안은 9월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임금체불 근절과 관련해 그동안 수많은 요구 끝에 가까스로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은 다행이다. 여전히 해결 과제는 존재한다. 지금도 체불 피해자와 체불액이 발생하고 있으며, 해결되지 않은 피해로 인해 하루하루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노동자도 많다.
따라서, 이번에 국회 문턱을 통과한 ‘임금체불방지법’이 예방 효과가 있으려면, 피해 노동자를 위한 해결을 위한 신속한 법 집행과 조속한 시일 내 ‘반의사불벌죄조항 전면 폐지’, ‘채권시효 연장’의 보완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