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망인이 된 4·3 희생자에게 무죄선고의 의미

김잔디 제주다크투어 사무국장

등록일 2024년04월12일 09시57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이승만 정부는 1948년 10월 17일, 해안에서 5km 이상 통금을 명령하는 포고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11월 17일, 제주도에 불법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12월 31일에 해제된다. 이 기간 제주도에는 민간인을 상대로 한 군사재판이 열렸다.

 

1차 군사재판이 이뤄진 1948년 12월은 계엄령 시기였기 때문에 민간인도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다. 당시 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871명으로 적용된 법률은 구 형법 제77조 내란죄다. 2차 군사재판은 계엄령이 종료된 이후 1949년 6~7월 사이에 이루어졌다. 분명 계업령은 종료되었으나 군사재판을 통해 1,659명의 유죄판결하였다. 적용된 법률은 「국방경비법」 제32조 간첩죄와 제33조 이적죄다.

 

이렇게 구체적인 수형인의 인적사항과 형량은 관련 기록이 없어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9년 9월 15일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추미애 국회의원이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입수하여 발표했다. 그 이후 어디서, 어떻게, 왜 희생되었는지 모르는 많은 4·3 희생자의 행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 됐다.

 

▲ 2021. 1. 21 제주지방법원 앞, 행방불명 수형인에 대한 첫 무죄선고에 환호하는 유족들

 

4·3...죄없이 죄인이 된 군사재판 수형인 희생자

현재 진행되고 있는 4·3 관련 군사재판에 대한 검찰의 조사에 따르면 일관되게 지적되는 사실이 있다. 위에서 언급된 1, 2차의 군사재판이 매우 불법적이라는 것이다. 2023년 8월 29일 37차 군사재판 재심 재판에서 변진환 검사는 당시 재판의 불법성을 설명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당시 재판을 받았던 수형인들은 불법적인 과정으로 구속·구금되었다. 수형인 희생자들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거나, 밭에서 농사를 짓거나, 촐을 베러 나갔다가 잡혀갔다. 토벌대나 무장대를 피해 몸을 숨겼다가 잡혀갔다. 고문 수사, 불법 구속영장, 불법 구금 등 모두 불법이었다.

 

둘째, 수형인 대부분은 변호인으로부터 변호를 받지 못했고,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못했다. 실제로도 수형인이 자신의 범죄사실을 알 수 있어야 하는데, 기소장도 없고, 공소사실도 특정되지 않았고, 판결문도 없다. 재판은 판사 또는 판사 역할의 군인이 있어야 하고, 변론을 거쳐 법정에서 구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형인 피해자는 형무소에 가서야 형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4·3 관련 군사재판은 법률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셋째, 형량은 다르지만, 법률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죄의 크기로 정한 것이 거의 없다. 군법회의가 진행되었던 15일 상간에 무작위로 재판이 이루어졌다. 수형인 기록을 보면, 죄질에 따라 피고인을 선별하는 것은 시간상으로 불가능한 상태였다. 사형을 선고받았다고 해서 죄가 더 무겁다 할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다.

 

▲ 2022. 5. 31 제주지방법원 앞, ‘4.3 군사재판 직권재심 및 일반재판 특별재심 무죄판결 환영 기자회견’

 

불법 군사재판 직권재심은 어디까지 진행됐나?

사법체계에서 재심 청구 요건은 그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무엇보다도 기존 판결에서 증명력이 상실할만한 명확하고 새로운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고 검사, 피고인, 피고인이 사망한 경우는 배우자, 직계친족 또는 형제자매까지만 재심 청구의 권한이 있다. 현재 수형인 피해자 대부분은 사망하였거나 행방불명인 상태에서 까다로운 재심 조건을 맞추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러한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국회는 2021년 2월 26일, 「4·3 특별법」을 전부 개정하여 ‘불법 군사재판 수형 피해자에 대한 직권재심 및 일반재판 수형 피해자에 대한 특별재심’ 조항을 신설했다.

 

같은 해 11월 24일 광주고검 산하에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 설치했다. 그리고 2024년 2월 23일 현재까지 총 47차의 직권재심 재판을 통해 전체 군사재판 수형인 피해자 2,530명 중 1,360명에 대한 재심 청구가 진행되었다. 평생 4·3 피해를 숨기고 살아왔던 수형인 생존자 박화춘(1927년생)님과 오00님(1927년)에 대한 재심청구도 이루어졌다.

 

최근 재심재판에 참석한 유족들의 몇 증언을 소개한다.

 

망 양재섭은 조천읍 와산리 출신으로 1949년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실제 사형이 집행됐는지, 어디서 사망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법정에는 조카 양00은 울음을 참으며 "부친은 참전용사였는데, 부친의 형은 빨갱이가 되었다. 중산간 마을에 사는 이유로 이렇게 됐다. 해안에 살았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안타까움을 토했다.

 

망 이윤성은 제주읍 일도리 출신으로 1948년 내란죄 위반으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1949년 2월 화북리 부근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세상을 떠났다. 재판에 참석한 그녀의 딸 이00은 "아버지 얼굴도 모른다. 어머니도 22세에 혼자되어, 남편을 가슴에 묻고 나랑 살다 돌아가셨다."라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어머니, 아버지가 죄인이 아니랍니다. 하늘에서 아버님 만나셔서 행복하게 사셔요."라며 발언을 마쳤다.

 


▲ 2024. 1. 16 제주지방법원, 제44차 군사재판 재심 공판 안내

 

이미 불법 재판이지만...재심재판을 신청한 이유

2022년 한국을 찾은 유엔 진실·정의·배상 및 재발방지 증진에 관한 특별보고관(이하, ‘진실정의 특별보고관’) 파비안 살리올리는 이미 4·3 희생자 인정받은 사람이 왜 재심재판을 거쳐 무죄선고를 받아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수형인 피해자들은 4·3 희생자로 인정받는 과정에서 이미 무고하게 희생되었음이 증명됐다. 희생자로 ‘인정’받은 것 자체가 기존의 선고받은 죄목과 형량이 무죄가 되었음을 의미하므로 추가적인 사법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자동 무죄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어쩌면 이러한 지적이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우리는 재심을 통해 수형인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해소하기로 하였다.

 

우리나라는 삼권분립 구조로 운영되고 있어, 불법적인 사법절차를 거쳤다 하더라도 다시 사법절차를 거쳐 무죄판결을 받는 것이 절차적으로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다수이다. 4·3이 여전히 정쟁의 도구로 악용되는 현상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수형인의 기록을 재심 절차를 거쳐 공식적인 무죄판결로 정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는 불법 군사재판 수형인들이 이념을 빌미로 피해를 당하거나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재심이 영향력을 준다는 판단이다.

 

올해로 76주기를 맞는 제주 4·3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4·3 희생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재심재판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아야 이념의 낙인이 사라질 것이라 기대한다.

 

너무 오랫동안 4·3의 역사를 숨겨야 했고, 대를 이어 낙인과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니 비록 불법 군사재판 수형인 피해자가 망인이 되었더라도 역사의 아픔을 치유하는 최소한의 노력으로서 재심 재판은 아직 유효하다.

 

너무 소중한 역사의 현장이다. 너무 늦은 명예회복의 순간이지만 단 한 명의 수형인 피해자도 빠짐없이 죄가 없음을 밝혀야 한다.

 

 

 

 

 

 

 
 

 

 
김잔디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인터뷰 이슈 산별 칼럼

토크쇼

포토뉴스

인터뷰

기부뉴스

여러분들의 후원금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듭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