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1일 미국 미들베리 국제문제연구소가 “1950년 6월만큼 위험한 정세”라고 평가할 만큼 동북아 역내 지각변동이 매우 크게 일어나고 있다.
가장 충격적으로 체감되는 지각변동은 바로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발표된 북한의 입장이다. 12월 31일 발표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확대 회의에 관한 보도>는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다고 발표했다.
나아가 1월 8일~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주요 군수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는 결코 조선반도에서 압도적 힘에 의한 대사변을 일방적으로 결행하지는 않겠지만 전쟁을 피할 생각 또한 전혀 없다. 감히 우리의 주권과 안전을 위협하려 든다면 주저 없이 수중의 모든 수단과 력량을 총동원하여 완전히 초토화해버릴 것’이라고 했다.
연이어 발표된 북한의 입장으로, 안 그래도 불안한 한반도 정세는 ‘전쟁위기’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1월 12일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시기 북남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을 위한 련대기구로 내왔던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련합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단군민족통일협의회 등 우리 관련 단체들을 모두 정리하기로 하였다’고 발표해, 수십 년간 평화통일운동을 해왔던 많은 단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남북노동자 연대교류사업을 추진해왔던 한국노총 역시 통일사업의 큰 방향키가 한순간에 상실되는 순간이었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북미관계, 남북관계 복기
이러한 극도의 혼란 속에 한국노총 통일위원회는 2월 6일~7일 경기도 파주 일대에서 <2024년 한국노총 통일위원회 워크숍> 및 제1차 통일위원회 회의를 개최했다. 당초 2023년
통일사업 보고와 2024년 통일사업계획을 논의하는 자리로 계획되었던 워크숍은 현 정세에 대한 분석과 향후 노총 통일사업의 방향을 토론하는 자리로 확대됐다.
▲2/6~7 열린 <2024년 한국노총 통일위원회 워크숍>에서 발제 중인 김동엽 교수
이를 위해 북한대학교대학원 김동엽 교수의 초청 강연을 열었다. 김동엽 교수는 두 가지의 질문 즉 ‘북한은 왜 헤어질 결심을 했는가?’, ‘북한의 의지는 전쟁할 결심인가, 전쟁에 맞설 결심인가?’를 던졌다.
먼저 헤어질 결심은 2018년~2019년 사이에 진행된 남북 및 북미 관계에 대한 평가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2018년 6월 북·미 싱가폴 정상회담은 사상 최초로 개최된 양국 정상회담으로써, 북미관계 정상화 및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합의했다. 당시 북한은 싱가폴 정상회담을 매우 무게 있게 평가했고, 이의 이행을 위한 선제적 조치로 6자회담 참가국을 초청한 가운데 영변 핵시설을 폭파해 비핵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반면 미국은 북한이 가장 기대했던 경제제재 해제를 위한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더구나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개최된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추가적인 시설’의 폐기 및 각종 핵전략 무기의 해체가 이행되어야 대북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고 주장해, 사실상 북미 관계는 막을 내리고야 말았다.
이러한 북한의 경험은 미국과의 대화에 대한 깊은 회의감으로 이어졌으며, 바이든 행정부 이후 더욱 강화된 대북압박정책은 북·중·러 동맹 전략으로 선회한 핵심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남북관계 역시 순탄치 않았다. 2018년 4월 판문점회담과 9월 평양회담에서 남과 북은 상당히 진전된 합의를 이룬 바 있다. 그러나 회담 이후에도 한국이 독자적으로 결행한 대북 경제제재는 유지되었고, 북한의 개성 및 금강산관광 재개 제안에 대해 어떠한 답도 주지 않았다.
더구나 <9.19 남북군사합의> 서명 당사자인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평양에 대한 신속한 점령을 기반으로 하는 미래 합동 작전개념과 입체기동부대 창설을 추진한 데 이어, 2019년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직후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재개하면서 사실상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기대는 무너졌다.
여기에 한·미·일 동맹을 핵심전략으로 선택한 윤석열 정부가 탄생하면서, 남북 당국 간 협의를 통한 관계 개선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최종 결론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이로써 미국과는 ‘어정쩡한’ 협상에 목매지 않고, 한국 정부가 현 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선언을 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또한, 오늘 북한의 의지가 전쟁할 결심인지, 전쟁에 맞설 결심인지를 제대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북한은 ‘일방적으로 결행하지는 않겠지만 전쟁을 피할 생각 또한 전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한이 느끼는 위기의식이다. 2023년 한미연합군사연습은 총 281건이 진행됐고, 오는 3월 초에는 최대 규모로 미국 핵전력이 참여하는 한미연합군사연습이 진행될 예정이다. 결국, 전쟁에 맞설 결심은 이러한 배경에서 발표되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김동엽 교수의 발제에 대해 ‘한반도 위기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인가?’, ‘통일은 이제 요원한 것인가?’, ‘노동자 통일운동이 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등 각급 조직 통일위원장 및 통일사업담당 간부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물론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당사자인 우리가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작금의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통일은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진 큰 과제라는 것이었다.
이에 올해 통일사업은 예년과 같은 수준에서 진행하면서 향후 다양한 정세 강의, 토론회 등을 통해 노동자 통일운동의 방향과 과제를 깊이 있게 토론하고, 이를 기반으로 2025년 노총 통일사업의 새 기틀을 만들어가기로 하였다.
2024년 한국노총 통일위원회 워크숍, 노동자 통일운동은 어디로?
정세교육 이후, 2023년 한국노총 통일사업 평가와 2024년 통일사업 계획에 대한 회의가 이어졌다.
회의에 앞서 한국노총 강석윤 통일위원장은 현재 조성된 정세에 대한 우려를 전하며, 우리 통일위원회가 평화를 위한 실천에 나서야 함을 강조했다. 특히 정세 악화에 따라 부정적 통일인식이 계속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총 통일위원회가 다수의 국민들로부터 지지와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사업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2024년 한국노총 통일사업 계획에 대한 여러 의견이 제기되었는데, 정세가 어렵더라도 노총 통일사업은 계속 발전되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통일역량 강화를 위한 여러 노력이 주문됐다. 새롭게 선출된 회원조합·지역본부 통일위원장에 대한 오리엔테이션부터, 노총 통일사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통일선봉대 사전 교육 등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이에 대해 향후 노총 대협 본부에서 계획을 마련하고, 통일위원회 회의에 보고 후 추진키로 했다. 또한, 2022년부터 시작된 <8.15 한국노총 통일대회>를 원안대로 추진하되, 올해는 500명 규모의 대회로 성사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통일정세가 악화되고, 통일 대회는 물론 각종 통일사업에 대한 조합원의 관심과 참여가 떨어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노총은 물론 각급 조직 통일위원장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어려울수록 기본을 지키자는 말이 있다. 위기일수록 우리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밀고 나가야 한다. 평화는 지켜져야 하며, 통일을 이룰 때 비로소 항구적 평화는 가능하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노총 통일위원회가 갈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