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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기 국제정세와 한반도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등록일 2024년01월30일 16시47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작년 12월 북쪽에서 들려오는 메시지는 삼엄하기 짝이 없다.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북과 남의 관계를 보여주는 현주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중앙통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또한 이렇게도 말했다. “조선반도 지역의 위태로운 안보환경을 ... 면밀히 주목해 보면 ‘전쟁’이라는 말은 이미 우리에게 추상적인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현실적인 실체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1월 15일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또한 이렇게 말한다. “수도 평양의 남쪽 관문에 꼴불견으로 서 있는 ‘조국통일 3대 헌장기념탑’을 철거해 버리는 등 ... 우리 공화국의 민족력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이 밖에도 “헌법에 있는 ‘북반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래 구절에서 이제 인식 전환은 고점을 찍는다.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령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글로벌 정세는 세계화·단극화에서 다극화로

연말 연초 북에서 발신된 이 일련의 메시지는 우리의 기존 인식과 익숙한 감각을 뒤흔들었다. 여기에 해외의 이러 저러한 소위 ‘전문가’들의 글과 말들이 여과 없이 버무려지면서 한반도는 창졸간에 전쟁위기설에 휩싸였다. 우리 세대쯤이면 유년기 이래 한반도 전쟁위기설은 삶의 구비마다 찾아오는 그 무슨 양념 같은 것이라 이제는 별 감흥도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고 한다. 진심 북측에서 ‘전쟁할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분명 북의 언설이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그 어떤 전략적 대전환을 함의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알다시피 수학방정식의 해를 찾는 과정에서 n>0 등의 조건을 명시하지 않으면 그 해는 정답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위기의 핵심을 이루는 전쟁 가능성 여부에 답하는 과정에서 북측 언설의 전제조건을 확인하는 것은 풀이 과정의 기초 중 기초라 할 것이다. 아래를 보자.

 

1) 북한은 “전쟁이라는 선택을 할 그 어떤 이유도 없으며 일방적으로 결행할 의도도 없지만 일단 전쟁이 우리 앞의 현실로 다가온다면” 피하지 않을 것이다. 2) “미국과 남조선 것들이 만약 끝끝내 우리와의 군사적 대결을 기도하려 든다면 우리의 핵 전쟁억제력은 주저없이 중대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엄숙히 선언”한다고 했다. 3) “명백히 하건대 우리는 적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결코 일방적으로 전쟁을 결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4) 바로 위에 말한 것처럼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공화국 령역에 편입”시키겠다등(이상 강조는 인용자) 이처럼 북의 메시지는 엄연히 ‘만일 ∽한다면, ∽하겠다’는 조건절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적어도 문언으로만 보자면 남북한 긴장 고조는 객관적 추세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일방의 아무런 작용이 없는데 북측이 정신이상이 아닌 한 무턱대고 선제공격을 한다는 말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보자면 나는 우리가 좀 더 살펴야 할 대목은 차라리 북 대표단이 러 외무장관 라브로프의 초청을 받아 1월 15일~17일 러시아를 방문한 뒤 발표한 ‘외무상 보좌실 공보’가 아닌가 싶다. 발표문을 보면 양국은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지역 및 국제문제들에 대한 심도 있는 전략적 의사소통을 진행하고 견해 일치를 보았으며 조로 두 나라의 핵심 리익을 수호하고 자주와 정의에 기초한 다극화된 새로운 국제질서를 수립해 나가는 데서 전략적 협조와 전술적 협동을 더욱 강화해 나가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고 한다. 나아가 양국의 “친선 협조 관계가 국제평화와 안전을 수호하고 다극화된 세계건설을 추동하는 데서 강력한 전략적 보루로, 견인기로 되고 있다는 데 대하여 인정하였으며 조로 두 나라 관계를 전략적인 발전 방향에서 새로운 법률적 기초에 올려세우고 전방위적으로 확대 발전시키기 위한 실천적 문제 토의에서 일치 공감과 만족한 합의를 이룩”하였다고 발표했다.

 

내가 강조한 구절의 핵심어는 ‘다극화’다. 이는 한국언론이 위 외무상 보좌실의 공보를 보도하며 정작 가장 중요한 말은 빼놓고 엉뚱한 곳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정세 인식이 작년 9월 김정은 방러를 전후부터 미국발 대포알 거래설에 포획되어 우리가 진정 봐야 할 것은 보지 못한 채 지엽말단적인 것에 인식이 거의 전적으로 매몰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가까운 미래에 푸틴이 방북과 동시에 양국의 ‘전략적’ 협력관계는 “새로운 법률적 기초”위에서 “전방위적으로” 확대 발전될 것이라고 했다. 그 협력과 확대의 방향이 ‘다극화’라는 말이다. 이로써 북과 러는 다극화의 전략적 파트너가 된다는 말이다.

 

다극화는 현 단계 글로벌 정치경제의 지배적 경향이다. 물론 이 말은 이 경향에 길항하는 반 경향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현재 한국언론과 담론지형에서 거의 듣기 힘든 단어가 다극화다. 세계가 다극화됨에도 오직 하나 미국, 미국의 주류언론만 쳐다보고 베끼기에 이들이 말하지 않는 것은 한국언론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30년 전 김영삼 정부에서 국가사업으로 추진했던 ‘세계화’와 지금의 단극화는 너무나 다르다. 당시 거의 광적으로 몰아 부친 국가주도 세계화로 인한 최대의 이익은 한국의 초국적 자본이 챙겼다. 당연히 그 ‘루저’는 기층대중들이었다.

 

지금의 다극화는 세계화에 대한 부정이다. 따라서 ‘거의 본능적으로’ 좌우를 막론한 한국의 글로벌주의 엘리트들이 여기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이 엘리트들의 담론을 생산하는 좌우를 막론한 한국의 주류언론이 다극화를 애써 외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시간이 갈수록 미국의 일극 체제가 한국 및 비미국계 자본의 논리와 충돌한다는 점이다. 특히나 압도적으로 대외의존적인 한국의 수출지향 경제는 미국에만 매달리기보다 그것이 다극이건 단극이건 확장된 세계시장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또 시간이 갈수록 단극 대 다극 즉 미국과 그 동맹국 대 중·러 등 비미국 진영으로 양극화가 진행될수록 한국의 국가는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반면 한국의 자본은 이 선택이 오히려 이윤율 악화의 핵심 요인이 된다는 점이다.

 

2개의 대 전쟁을 동시에 하지 말라는 것은 로마의 격언이다. 나치독일이 패망한 것은 어쩌면 양면의 전쟁을 동시에 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우크라이나에서, 가자에서, 예멘에서, 시리아/이라크에서 교전 중이다. 그리고 이제 대만 민진당 정권의 재집권과 함께 또 새로운 전쟁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세계 3차대전은 미국이 3개의 전선에서 싸워야 하는 전쟁이다. 미국이 여전히 슈퍼군사강국이고 세계사를 통 털어 유일한 단극체제를 이룩한 나라임에 누구도 의문을 제기할 순 없다. 하지만 3전선 전쟁은 그냥 불가능이다. 왜냐하면, 다극화 진영이 군사적, 경제적으로 이미 앞서기 시작했고, 시간이 갈수록 이 격차는 확대될 것이다.

 

▲ 출처: 이미지투데이 

 

한반도의 무력분쟁 가능성 검토

그렇다면 현재 한반도의 무력분쟁 가능성을 짚어 보자.

먼저 미 랜드연구소의 추정에 따르면 2020년 현재 북은 67~116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매년 12~18개씩 늘려 2027년이 되면 151~242개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공포의 균형이 무너지고 핵 전이 시작되었을 때 개수는 보복반격 즉 제2 핵타격second-strike능력 여부의 기준이 된다. 만일 추정이 맞다면 2027년이 되면 북의 핵 무력은 남한 전역은 말할 것도 없고 미 본토를 실질적으로 위협할 수준 즉 상호 확증 파괴 수준의 핵무기를 보유하는 셈이 된다.

 

내가 자주 인용하는 말이지만 작년 8월 미 시카고대학 석좌 미어샤이머 교수는 한국 통일부 주최 국제 심포지움에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북핵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대가의 이 기절초풍할 발언이 윤석열 정부를 얼마나 불편하게 했을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분명한 한 가지는 북핵의 존재가 한반도 전쟁의 재발을 억제하는 요인임은 이제 부정하기 어렵다.

 

둘째는 한미가 가만히 있는 데 북이 선제공격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미국의 전쟁 수행 능력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실상 패배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프락시를 앞세운 대이란전쟁의 전망도 불확실하다. 가자와 홍해에서의 전쟁도 미국을 소모하는 요인이다. 그리고 서아시아에서도 이란-러시아-중국의 빌드업이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글로벌 또는 동아시아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다. 그래서 대만을 프락시로 내세운 대중 전쟁은 미국이 제3전선을 전개함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것이 과연 가능한 가하는 점이다. 현재의 미 경제력과 군사력을 평가할 때 과연 미국이 3대 전선의 동시 전쟁을 책임지고 수행할 수 있을까. 심지어 서아시아 전역에서도 승패가 불확실한 데 또 동아시아 전쟁을 개전해서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셋째 이유는 두 번째와 분리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미 조야의 최우선 관심사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다. 무엇보다 한반도 전쟁의 결정권은 한국 정부가 아니라 미국 정부가 갖고 있다. 물론 미 작전권 관할 밖의 병력 예컨대 특전사 등을 통한 한국의 독자적 전쟁 수행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전혀 비현실적이다. 그런데 양안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북한만을 상대로 제3전선을 전개했을 때 미국이 거둘 글로벌 패권 유지상의 어떤 실익이 있을까. 이것이 핵심이다. 한미일 3각 동맹의 빌드업이 진행되자 당연히 북중러 빌드업이 반작용으로 강화되고 있다. 서아시아의 이란-중-러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에서는 북·중·러 전략적 협력관계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한반도에서의 무력분쟁은 결코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미·일 대 북·중·러의 블록 간 대전쟁이라는 말이다.

 

사실상 비핵화 종료, 북·중·러 협력 고도화로 이어져

안보의 역설이란 것이 있다. 한쪽이 안보를 구실로 군사력을 강화하면 상대방 역시 더 많은 군사력을 도모하게 되어 있다. 한·미·일 빌드업이 진행되자 당연히 북·러 그리고 북·중·러 협력이 빠른 속도로 고도화되고 있다. 문제는 한·미·일을 통해 한국이 얻을 이익보다, 북·중·러를 통해 북측이 얻을 이익이 더 크다는 점이다. 일단 비핵화는 사실상 종결되었다.

미국도 실상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비핵화를 고리로 한 즉 주고받기식 셈법에 기반한 북한의 체제 보장 이슈도 의미를 사실상 잃었다. 북·중·러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셋째, 비핵화를 대가로 한 북의 경제발전도 실효했다. 북·중·러 경제협력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러시아 경제는 PPP기준으로 독일의 GDP를 추월했다. 향후 3~4년 정도면 일본도 추월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러의 에너지는 중국과의 ‘시베리아의 힘2’와 더불어 북한 에너지경제의 전망을 완전히 새롭게 할 수 있다. 요컨대 북은 경제적, 정치·군사적으로 한국도 미국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지정학적 대전환은 이렇게 북에 전혀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어준 셈이다.

북에서 발신된 거칠고 당혹스러운 말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러한 이유에서 지금 상황에서 북의 의도는 ‘전쟁할 결심’이 아니라 ‘헤어질 결심’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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