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낮기에 경기 침체기가 맞다.” 지난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우리나라 경기침체를 사실상 시인했다. 정부와 여당은 발등에 불이 떨어져 농산물 가격안정, 유류세 인하 연장 등의 임시방편 정책을 부랴부랴 발표했지만, 실제 경기 부양 효과를 가져올진 의문이다. 더욱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영향에 따른 국제유가 급변이라는 대외경제 불확실성 요인도 증폭되었다. 국책은행의 수장이 경제침체를 인정하고 국민은 침체가 아닌 위기로 느끼는 상황에서도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주요 국가의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를 보면 우리보다 성장률 높은 국가는 별로 없다”라는 궤변을 내놓았다.
경제위기, 비상이다 : 수출감소, 물가상승, 내수침체, 부채폭등, 실업확대
올해 국정감사 기간 중 한 의원실이 입수한 자료(1)에 따르면, 지난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의 올해와 내년 잠재성장률을 각 1.9%, 1.7% 전망했다. 잠재성장률이란 한 국가가 모든 생산요소를 사용해서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최대한 이룰 수 있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다. 다시 말해,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최대의 노력을 했을 때의 성장지수가 잠재성장률인데 일반적으로 경제성장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다. 과거 외환위기(IMF 사태) 때도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연평균 7.3%에 달했다. 1%대까지 떨어진 것은 앞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으며, 이렇다 할 반등 요인도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지난 10월 20일 무역협회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자료를 인용해 발표한 국가별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누적 264억 6,700만 달러(약 36조) 적자로 집계되었다. 이 통계가 다소 충격적인 건 208개 국가 중 우리나라가 200위로 최하위권인데, 북한(109위)보다 낮으며 무역이 활발하지 못한 아프리카 국가보다도 낮은 수치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무역 대국인 우리나라가 갑자기 경제 상황이 급격히 악화하는지 이유를 아무도 시원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새롭게 출범하든 위기에 대응하든 정부는 세간의 경제학 이론을 밑바탕으로 경제정책을 수립한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은 기업의 기술개발과 성장에 초점을 맞춘 경제모델로 주류경제학의 ‘신자유주의’를 신봉한다. 특히 기업에 R&D 투자 지원, 투자세액공제액 확대 등은 신자유주의의 대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과 연관이 깊다. 프리드먼은 주택 임대료 규제는 주택 가격을 인상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주장하고, 시장 논리에 따라 공공재의 민영화도 찬성한다. 어딘가 모르게 현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지난 정부에서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경제성장 방식을 추구했는데, 소득주도성장 이론은 포스트 케인지언의 임금 주도 성장이며 국제노동기구(ILO)가 2010년대 제안하며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 이론이 항상 현실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과거보다 현재처럼 하루하루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부는 현실에 어긋난 정책은 과감히 수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 국민의 생활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
임금삭감, 노동자·서민을 저격하는 경제위기
윤석열 정부 출범 2년, 서민 노동자 가구의 삶은 악화일로다. 정부는 법인세 인하, 투자세액 공제액 확대 등 기업 혜택만 고집한다. 저출산과 고령화,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노동자·서민 가구를 위한 지원 정책이 고려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부터 공공요금 인상, 각종 취약계층 지원 정책 폐지, 지역 화폐 발행 축소, 임금억제정책 등 생계를 더욱 힘겹게 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의 임금지표는 악화하고 앞으로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정책 수립에도 먹구름이 드리운다. 노동부가 발표한 올해 상반기 임금체불 신고액은 8,231억 5,600만 원이다. 가장 최근 8월 말까지 체불임금 규모는 1조 1,411억 원으로 전년 대비 29.7%나 증가했으며, 연간 임금체불액은 최근 10년간 1조 원을 웃돈다. 어마어마한 액수다. 임금 불평등에 따른 소득 양극화로 이어진다. 지난달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 격차도 약 167만 원(정규직 362만 3,000원, 비정규직 195만 7,000원)으로 역대 최대로 벌어졌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정부는 노동자 임금대책에 대해선 손 놓고 있다.
정부가 노동 개혁을 이유로 노동조합과 노동자 때리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노동자 임금은 물가인상률보다도 낮아 실질임금 삭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국가 경제가 단시간 내 회복하기 어렵고, 경영상황마저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는 이상 임금 협상에 나설 노동조합에 여러모로 상황은 나쁘다.
정부의 임금억제정책에 대비한 연대임금제도
지금처럼 경제위기상황이 펼쳐지면 정부는 경제회복 명분으로 ‘노동’만 때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고스란히 그 피해는 노동조합과 노동자에게 전가될 것이다. 과거 경제위기 당시 정부는 비정규직을 무분별하게 양산하고, 해고를 쉽게 하는 제도를 만드는 등 기업만 살리고, 엄한 ‘노동’에 화풀이를 하지 않았던가. 최근 기업의 구조조정을 무마하기 위한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가 재등장하고 있으며, 기업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부 지원도 기시감이 든다.
경제위기를 노동에 전가하는 정부와 사용자에 저항하면서도, 임금인상이 어려워지는 시기를 대비해 노동조합에서는 노동자의 임금인상 정책 다양화를 모색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재 대기업들은 당해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성과급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대다수 기업은 성과급 같은 비현실 제도가 없다. 그러기 때문에 앞으로 경기침체를 이유로 임금인상이 어려운 시기가 닥치면 기업 규모별로 임금 불평등이 더욱 확대될 것이다. 원하청 불공정 거래구조가 만연한 우리나라 노동시장 내 불평등 및 양극화도 심화할 수 있다.
노동조합에서 사회 양극화 해소, 노동계급 내 연대 강화를 위해 노총에서 최근까지도 임금인상요구안으로 담아온 ‘연대 임금제도’를 대안으로 살펴볼 수 있다.
연대임금제도 실행을 위해 사내공동근로복지기금 조성 방식을 생각해 볼 만하다. 사내공동근로복지기금은 노동조합이 중심이 돼 지역사회 내 대기업(내지 중견기업)이 중심이 되고 (하청)중·소기업을 하나로 묶는 연합형 공동근로복지기금을 설치 방식이다. 생산 활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을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 노동자가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임금인상분의 일정분을 지역 화폐로 받아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도 덧붙인다.
경제위기 상황을 이유로 노동조합이 경제성장률 + 물가상승률의 정해진 경제지표 인상률로만 조합원의 임금인상 방식에 매몰된다면 결국 조합원 삶은 ‘현상 유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노동자의 임금인상을 위해 다양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제안하고 알려줄 필요가 있다.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여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1) :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준현 의원실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최근 20년 한국 포함 주요국 연도별 국내 총생산(GDP)갭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