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신분이 보장된 정규직 신입사원의 대규모 공개채용은 이제 옛이야기다. 경제위기와 불안정한 경영환경으로 인력운영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은 경력직을 선호한다. 불가피하게 신규채용이 필요할 경우 신규채용 노동자의 능력과 적성을 파악하고 회사에 적응시키기 위해 정규직 채용을 유보하고 기간을 두는 것도 필수적이다.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신입사원 선발 방식이 대표적인데, 이명박 정부 이후 대기업과 공기업을 중심으로 채용형 인턴이라는 제도가 신규채용의 일반적 경로가 됐다.
구직자가 해당 기업의 사업 환경을 이해하고 업무를 실제 체험해 직무 경험을 높인다고 홍보하지만 인턴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매우 불안정하다. 상담사례를 보면 대부분 기업은 인턴 노동자에게 통상의 정규직 노동자와 동일한 일을 시키면서 퇴직금과 연차휴가 산정을 위한 근속기간에서는 인턴기간을 제외한다. 성과급을 지급할 때도 인턴 노동자는 차별한다. 심지어 ‘체험형 인턴’이라는 제도를 악용해 인턴 노동자들의 아이디어나 열정만 쏙 빼먹고 3개월에서 6개월의 인턴기간 종료 후 정규 근로계약을 거부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그랬다. 은행은 경제위기로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신입 노동자의 연봉을 후려쳤고 공기업들은 ‘채용형 인턴’ 노동자에게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뒤늦게나마 법원이 이러한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대구지법 12민사부는 지난달 16일 한국가스공사에 채용형 인턴으로 입사해 인턴 근로계약기간 동안 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정상여금 차별을 받은 사건에서 가스공사가 인턴 노동자들에게 “성과급을 미지급하거나 과소 지급한 것은 차별적 처우로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대구지법 2020가합212341 판결).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 가스공사는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채용형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신규 노동자를 선발했다. ‘채용형 인턴’으로 선발돼 3개월간 근무한 인턴 노동자들은 ‘채용형 인턴’ 기간 중 2주에서 길게는 4주까지 교육연수라는 이름으로 회사의 조직문화를 익히고, 정보보안 등 회사의 업무 수행을 위해 필요한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대부분 인턴기간은 ‘정규직에 준하는 수준의 업무’를 수행하고 이들 중 90% 이상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가스공사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던 상여금을 이들 ‘채용형 인턴’ 노동자들에게는 지급하지 않았다. 가스공사의 취업규칙에 해당하는 보수규정에는 고정상여금 지급요건 중 ‘보수계산일 기준일 현재 재직 중인 직원’에게 지급한다고 돼 있다. 이뿐만 아니라 퇴직금 등을 산정하는 계속근로기간에서 해당 인턴 기간을 제외했다.
가스공사는 ‘채용형 인턴’ 제도가 회사의 정규직 근로자 선발과 연속성이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채용형 인턴’ 제도는 타사 취업을 포함한 청년들의 취업활동 일반을 돕고자 근로 경험과 경력 취득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가스공사로서는 고용형태 속성상 채용형 인턴에게 고정상여금을 지급하지 않을 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다는 항변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해당 기간 ‘채용형 인턴’의 모집과 그 정규직 전환만이 피고의 유일한 인력 수급 방법이었다는 점, ‘채용형 인턴’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업무가 비교 대상인 정규직 노동자와 동종·유사한 것으로 같은 기간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업무능력이 떨어진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을 이유로 가스공사가 인턴 노동자들에게 불합리한 차별을 했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에서조차 이럴진대 중견기업과 대다수 중소기업 인턴 노동자들의 처지는 말해 무엇 할 것인가? 중소·영세 기업에서도 인력부족 해소를 위해 인턴 제도를 실시한다. 제도 취지대로라면 회사는 적절한 인사노무 전문가를 배치해 인턴 노동자들이 사업장에서 일·경험을 하게 하고 조직사회화를 통해 장기근속하며 직무역량을 키워 해당 산업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런데 중소·영세 기업의 경우 인턴 제도의 취지를 실현할 인적자원관리(HR) 역량 자체가 갖춰지지 못한 실정이다. 결국 고용지원금을 통한 인건비 부담을 낮추려는 목적이 더 크다. “국가에서 지급하는 고용지원금만 쏙 빼먹고 인턴 근로계약 기간 내 사업주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밭에 나가 잡초 뽑기를 시켰다”며 하소연하는 중소기업 인턴 노동자의 한탄을 듣고 있다 보면 정말 헛웃음만 나온다.
위의 사례들에서처럼 청년 실업률이 올라가고 경제위기가 닥쳐오면 어려운 취업난 속에서 신규 입사한 노동자들은 필연적으로 더욱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은 금융권과 공기업은 노조에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기도 어려운 대다수 중소·영세 기업 청년 노동자들은 오늘도 수습·인턴·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열정을 빼앗기고 있다.
수년 전 고용노동부에서 수습과 인턴 노동자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어 기업에 인력 운용에 참고하도록 했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부 홈페이지에 자료 검색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들을 보호할 법과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leeseyh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