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조합원 200만 시대’를 선언했습니다. 올해 상반기 ‘200만 조직화사업 추진단’(200만 추진단)을 발족하는 등 조직 확대사업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에 <주간 노동N이슈>가 200만 추진단의 도움을 받아 조직화 모범사례를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편집자 -
1. 포항지역철강노조(제14호, 7월30일 발행)
2. 학교법인한국폴리텍노조(제15호, 8월6일 발행)
3. 강원도교육청노조
70~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이라면 ‘소사 아저씨’의 존재를 기억할 것이다. 특별한 직함도 없이 그저 ‘아저씨’로 불리던 이들은 60년대 학교장 재량으로 채용돼 일용잡부처럼 일하다가, 70년대 들어 그 규모가 증가했다. 소사라는 명칭도 그 즈음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80년대 들어서는 이들 신분에 변화가 생겼다. 노태우 정부 때 무시험 특채로 기능직공무원으로 전환됐다. 위계와 서열이 강조되는 공무원 사회 기준으로 보자면 말단직급에 속하지만, 묵묵히 학교현장을 지켜온 수많은 노동자들의 수고에 공적성격이 부여된 점은 고무적인 변화다. 학교 행정업무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다 지난 2012년 대대적으로 이뤄진 공무원 직종개편 과정에서 기존 기능직공무원이 일반직공무원으로 통합됐다. 기능직과 일반직의 인사관리방식이 동일하고, 직무분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간 노동N이슈>가 지난 4일 찾아간 강원도 원주시 소재 강원도교육청노조(위원장 최승덕)의 조합원 상당수는 옛 기능직공무원 출신이다. 2007년 출범 당시 명칭도 전국기능직공무원노조(기공노)였다. 그 뒤 몇 차례 조직 변경과정을 거쳐 2017년 11월 강원도교육청노조라는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이름이지만, 노조로서는 쉽지 않은 결단 끝에 선택한 명칭이다. 그 속에는 과연 어떤 고민이 스며들어 있을까.
‘기능직’의 반란
우리나라 공무원노조의 등장 시점은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이 제정된 시기와 맞물린다. 공무원노조법은 지난 2004년 12월 국회를 통과해 2006년 1월부터 시행됐다. 법 시행을 계기로 전국에 크고 작은 공무원노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직장협의회로 활동하던 조직들이 하나 둘 노조로 전환됐다.
강원도교육청노조는 기공노 강원도교육청지부로 활동을 시작했다. 지부 설립 당시 조합원수는 7명이었다. 11년이 지난 현재 조합원수는 1천507명이다. 조직 규모가 200배 넘게 커졌다. ‘최초의 7인’으로부터 시작된 작은 기적이다.
공무원노조법은 노조 유급전임자나 노동조합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공무원들의 노조활동은 원칙적으로 무급으로 이뤄진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적용받는 보통의 노조들과 차이 나는 대목이다. 이런 제도적 한계로 인해 대부분의 공무원노조 간부들이 초기 조직 확대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연차휴가를 털어가며 사업장을 방문하고, 업무시간이 끝난 저녁시간에 부랴부랴 모여 회의를 하는 식이었다. 컵라면에 김밥 한 줄로 허기를 채우며 노조의 미래를 그렸다.
통상 교육청 소속 공무원들은 교육청과 교육지원청, 관할 초·중·고등학교에 흩어져 일한다. 해당 공무원들의 직무도 교육행정직·시설관리직·운전직·공업직·사서직 등으로 다양하다. 강원도의 경우 교육청·교육지원청·각급학교가 660여곳에 달한다. 강원도교육청노조가 관리해야 하는 사업장 역시 660곳이라는 얘기다. 노조간부 몇몇이 연차휴가를 소진한다고 해서 커버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해냈다. 비법은 ‘은근과 끈기’였다.
1년에 두 번, 660개 사업장을 누벼라
노조 설립 초기인 기공노 시절에는 기존의 직장협의회를 규합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비약적인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꾸준하게 조합원수가 늘었다. 그러다 한 차례 위기가 찾아왔다. 지난 2012년 대대적으로 이뤄진 공무원 직종개편에 앞서 2011년 일부 직종의 변화가 있었는데, 이때 기능직에서 일반직으로 전환된 조합원들이 대거 노조를 탈퇴한 것이다.
노조로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기능직에서 일반직으로의 전환은 환영할 일이지만, 노조로서는 존폐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대대적인 일반직 전환이 예고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자구책을 찾아야 했다. 결국 노조 명칭을 바꾸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기능직만을 위한 노조’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고자 ‘한국공무원노조’(한공노)로 개명했다. 다행히 공무원 직종개편 과정에서 조합원 이탈은 없었다.
그 뒤 노조는 보다 적극적인 조직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일들을 벌이기로 했다. 1년에 두 번 660여곳에 달하는 소속 사업장을 순회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조간부들이 미리 만들어 둔 노조홍보물을 지참한 채 자가용을 몰고 현장을 누볐다. 원주에서 횡성·홍천·춘천으로, 어떤 날은 산 넘어 고성·속초·강릉으로 정치인들이 선거유세 하듯 강행군을 했다. 노조간부들에게는 어느새 ‘승포자’(승진을 포기한 사람)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고작 7명에 불과했던 노조가 1천500명 조직으로 커질 수 있었던 비결이다.
교육현장의 노동자들, 교원·공무원·공무직
대표적인 교육현장인 학교에는 크게 세 종류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교원과 일반직공무원, 그리고 공무원 신분은 아니지만 최근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고용안정을 보장받은 교육공무직이 있다. 이들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때, 학생들은 안정적인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다. ‘공교육 정상화’는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하지만 업무분장을 둘러싼 교원·공무원·공무직 간 갈등의 골이 깊다는 점이 문제다. 과거 교육현장에 공무원·공무직이 없던 시절 교원들이 행정업무를 부담하던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다. 교원들은 수업과 관련된 본연의 업무 외에도 각종 행정업무 처리 권한까지 부여받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러니 교사에게 부여된 행정업무가 공무원들에게 하달되는 방식으로 처리되기 일쑤다. 양자 간 갈등의 골이 파일 수밖에 없다.
공무원과 공무직 사이에도 문제가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비용절감 차원에서 학교에 비정규직을 대거 채용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다. 가령 조리종사자의 경우 공무원 신분인 노동자도 있고, 공무직 신분인 노동자도 있다. 하는 일은 같은데 신분과 처우가 다르다. 향후 분란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갈등의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 교원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교사들에게 행정업무를 떠넘긴 것이 결국 교원-공무원 간 업무갈등을 낳았다. 교육현장에 반드시 필요한 업무에 비정규직을 대거 투입함으로써 공무원-공무직 간 다툼의 여지도 만들었다. 강원도교육청노조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를 단위사업장 노조가 풀기에는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정책과 네트워크를 갖춘 조언자가 필요했다.
‘공무원’ 없는 공무원노조
실제 정부를 사용자로 둔 공무원노조에게 있어 정책과 네트워크는 매우 유용한 교섭수단이다. 임금을 비롯한 주요 노동조건이 법률과 예산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정부를 상대로 한 직·간접적 압박이 때로는 임금·단체협상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 공무원노조의 활동을 지나치게 제약하고 있는 현행 공무원노조법을 개정하거나, 교원·공무원·공무직 간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도 정치적 협상력은 중요하다.
강원도교육청노조가 지난 2014년 12월 한국노총의 문을 두드린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한국공무원노조(한공노) 강원도교육청지부라는 명칭을 쓰고 있던 강원도교육청노조는 한국노총 산하 한국공무원노조연맹(한공연) 산하 조직이 됐다.
그러다가 지난해 11월 한공노에서 조직을 분할해 사업장 단위노조로 독립한 상태다. 상급단체는 지난 7월 새로 출범한 한국노총 소속 ‘교육청노동조합연맹’(교육연맹)이다. 교육연맹은 기존 한공연과 대한민국교육청공무원노동조합연맹(대교련)이 통합해 만든 조직이다. 공무원노조들이 매우 복잡하게 헤쳐모이는 것 같지만, 그 속내는 복잡하지 않다. 정책과 네트워크를 갖춰 대정부 교섭력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조직을 확대하려는 것이다.
강원도교육청노조라는 현재의 이름은 지난해 한공노에서 독립하는 과정에 만들어졌다. 노조 명칭을 정할 때 고민이 많았다. 강원도교육청 소속 노동자라면 누구나, 일반직공무원은 물론이고 교원과 공무직까지 아우르는 이름이 필요했다. 그래서 쉽지 않은 결단을 했다. 노조 명칭에서 ‘공무원’이라는 단어를 지우기로 한 것이다. 일종의 기득권 내려놓기다. 우리나라 공무원노조 중 유일하다.
“노조간부들의 헌신 덕분에 꾸준히 조직이 확대됐지만, 정책과 네트워크의 한계로 좌절한 경험이 많아요. 국회의원 한 명을 만나려 해도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하는지 막막했으니까요. 한국노총에 가입한 뒤로는 든든합니다. 과거 우리 노조와 비슷한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조직이 있다면, 한국노총에 들어오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최승덕 강원도교육청노조 위원장의 말이다. 최 위원장은 “기득권을 놓고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우리 노조의 의지와 한국노총의 지원이 만나 반드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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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승덕 교육연맹 강원도교육청노조 위원장
“승진 포기하고 노조하는 이유요? 내 딸이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길 바라니까요”
“내가 잘하면 내 딸이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노조활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공교육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교육현장의 잘못된 노동관행을 바로잡는 것이 공교육 정상화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봅니다.”
최승덕(사진) 교육연맹 강원도교육청노조 위원장의 말이다. 최 위원장은 30대 중반의 젊은 위원장이다. 젊은 만큼 욕심이 많다. 조직의 실력과 규모를 동시에 키우겠다며 날을 벼리고 있다. 주말도 휴가도 반납하고 노조활동에 몰두하는 그에게 동료들은 ‘승포자’(승진을 포기한 사람)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 위계와 서열이 강조되는 공무원 사회에서 승진을 포기한다는 것은 삶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이쯤 되면 ‘노조중독자’라는 새로운 별명이 붙을 만도 하다. <주간 노동N이슈>가 지난 4일 강원 원주 소재 강원도교육청노조 사무실에서 최 위원장을 만났다.
- 강원도교육청노조의 조직 대상은 어떤 노동자들인가?
“교육 현장에는 크게 세 부류 노동자가 있다. 교원·공무원·공무직이다. 우리 노조 조합원 대부분은 일반직공무원이다. 그런데 지난해 노조 이름을 바꾸면서 ‘공무원’이라는 단어를 뺐다. 교원과 공무직까지 포괄하는 일반노조를 지향한다. 전체 노동자가 하나로 뭉칠 때 노동조건과 교육현장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노조 설립 당시 7명에 불과했던 조합원수가 1천500명까지 늘었다. 비결이 뭔가?
“매년 상·하반기 현장순회사업을 진행한다. 강원도 내 660여곳에 달하는 교육청·교육지원청·각급학교를 일일이 방문해 노조를 알리고 가입을 권유한다. 이렇게 한 바퀴 돌고나면 적어도 몇 백 명씩 조합원이 늘어난다.”
- 공무원노조는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 적용이 되지 않는데.
“올해 처음 전임을 인정받아서 무급휴직 상태로 활동하고 있다. 내 활동비는 조합비에서 나온다. 그동안에는 무급 전임자조차 없어서, 우리 간부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이렇게 간부들의 헌신성에 기대는 활동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간부들의 실무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노조업무 전산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 공무원의 노동조건은 법률과 예산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교섭에서 다룰 수 있는 의제가 많지 않을 텐데.
“실제로 그렇다. 임금 등이 일괄 적용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사회나 교육제도 관련 목소리를 크게 내려고 한다. 예를 들어 강원 지역 고교평준화 도입 당시 우리 노조 조합원들이 열심히 나섰다.”
- 조합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교육현장의 고질적인 문제인데, 교원과 일반직공무원 사이의 업무 떠넘기기가 심각하다. 업무혁신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현장에 대한 이해가 높은 교육감이 필요하다. 민선교육감 시대라고 하지만 교수나 교원 출신이 주로 당선되다 보니, 실질적인 교육행정에 대한 이해가 낮다.”
- 2014년 한국노총에 가입했다. 무엇이 달라졌나?
“힘 있는 상급단체 없이 활동하면서 정책역량과 네트워크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이 부분에 강점을 가진 한국노총을 선택했다. 한국노총에 들어오기 전과 후의 차이가 크다. 예전엔 국회의원 한 번 면담하려고 해도 방법을 몰랐는데, 지금은 한국노총을 통해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노조 내부적 변화도 있다. 그 전에는 공무원노조끼리만 소통을 했는데, 한국노총에 들어온 뒤 민간과 공공부문 주요기업의 노사관계를 지켜볼 수 있게 됐다. 시야가 넓어졌다고 할까. 새롭게 배우는 점이 많다.”
- 한국노총에 바라는 점은 ?
“현장순회활동을 하거나 노조 홍보활동을 할 때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리플릿이나 현수막 시안을 참고할 때가 있다. 내용은 한국노총인데 그림은 민주노총이니 어딘가 어정쩡하다. 한국노총이 이런 자료를 자주 업데이트 해주면 좋겠다. 한국노총 로고가 들어간 제대로 된 홍보물을 게시하는 것만으로도 노동조합을 알리고 노조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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