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기후 위기 대응조치로 탄소 배출량 보고의무를 시작했다. 2026년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시행을 앞두고 사전 조치가 시작된 것이다. CBAM 도입에 따라 EU는 2026년부터 일종의 '탄소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이번 조치로 탄소 다배출 업종(철강·석유화학·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이 주력 산업으로 대거 포진한 우리나라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탄소세나 에너지세 ‘생태 사회적’ 세제의 선제적 도입 주장이 제기된다. 이렇듯 국가 정책은 재정과 세금, 즉 ‘돈’을 통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돈’을 올바르게 활용하고 운용해 국민을 위한 국가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다. 지난 9월 1일, 기획재정부가 세법개정안을 국무회의에 제출했다. 나랏돈이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운용되는지 이번 세법개정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세법개정안은 사실상 기업을 위한 ‘종합선물세트’다. ‘국가전략기술 및 신성장’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기업 대상의 각종 세액공제 혜택을 확대했고, ‘부의 대물림’의 상징인 가업 승계, 지주회사 설립 등에 ‘꼼수’도 봐주었다. 반면, 노동시장 인력난 해소 및 노동 현장의 불평등과 차별 그리고 불공정거래 행위를 바로 잡기 위한 임금노동자를 위하는 세제 정책은 전혀 없다. 사실상 다수 국민을 위한 세제 정책은 조세정책에서 소외됐다.
여기에 최근 전반적인 국가의 재정운영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문제까지 발생했다.
지난 9월 18일 기획재정부는 ‘국세수입 재추계 결과’를 발표하며 잘못된 세수 추계 결과를 설명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국가의 수입을 잘못 계산했다는 일종의 ‘경위서’였다. 발표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당초 올해 국세 수입 전망치인 400조 5천억 원에서 무려 59조 1천억 원 낮춘 341.4조 원으로 수정 발표했다. 감소율로 살펴보면 14.8%로 우리나라 정부 역사상 최대폭의 감소 비율이며, 소위 3대 세목이라 불리는 법인세, 소득세, 부가세 세목에서의 감소액이 52조 4천억 원에 이른다.
국세 수입에 대한 재추계 결과를 정부가 직접 나서 발표하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더욱 큰 문제는 세수를 과대 추계하여 향후 국가의 정책 전반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의 해명은 천하태평이다. 기획재정부는 “세수 오차 발생은 코로나 19위기 이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여러 주요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며, 세수 부족으로 인한 민생・거시경제 영향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잘못된 세수 예측으로 대규모 ‘세수 펑크’가 난 상황의 피해는 일반 국민에게 전가될 확률이 높다.
‘기업소원수리부’ 자처하다 세수결손과 저성장으로 이어져
이번 ‘세법개정안’과 ‘역대급 세수결손 사태’의 공통점은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성장 방향성과 실제 현실이 전혀 맞지 않아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정부의 조세재정 정책은 코로나 사태 이후 불평등 양극화가 확대되고 있는 시점에서도 기업의 성장에만 방점을 두고 기업에 각종 세액공제 혜택을 퍼주어 경제성장의 낙수효과를 노렸다. 많은 전문가는 대내외적으로 저성장-고물가 시기인 만큼 과거 시기 정부가 추구했던 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이 효용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수활성화와 새로운 경제 성장동력이 필요하다는 내외의 조언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은 것이다. 소위 복합위기에 조세재정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감세 기조를 유지하고 기업 세제 혜택만 주다가 역대급 세수결손과 저성장의 결과를 낳았다.
세수결손 사태도 마찬가지다. 세수 예측의 최대 감소폭 중 가장 큰 비중의 세액은 법인세다. 윤석열 정부는 이전 문재인 정부에서 법인세 최고세율을 22% → 25% 높인 것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려다 야당 반대에 부딪혀 4개 과표 구간 세율을 1% 포인트씩만 낮추는 것으로 결론 낸 바 있다. 이렇게 조정된 법인세율을 올해 기업실적을 바탕으로 추계한 결과 내년도 법인세는 올해 105조 원 대비 25.4조 원(24.2%) 감소한 79.6조 원에 그치며 감소 폭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것이다. 정부는 세법개정안을 확정한 지 한 달도 채 안 돼, 지난해 4/4분기 이후 대외경제 여건이 급격히 악화하며, 예상을 상회하는 ‘어닝 쇼크’ 발생으로 법인세가 급격히 감소해 세수결손이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정부가 코앞의 경제상황도 예측하지 못하는 무능을 널리 알리고, 기업의 오랜 ‘소원 수리’ 사안이었던 법인세 인하와 투자세액공제율 인상으로 국가 재정에 대한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 것이나 다름없다.
미래를 대비한 조세정책, 더 늦출 수 없어
이미 엎질러진 물은 어쩔 수 없다. 하루빨리 잘못된 세수 예측에 따른 결과를 바로 잡아 새로운 국가재정전략 수립을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나라의 경제 상황과 대외 환경을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위기’라면 위기에 맞는 정책을, ‘성장’이라면 성장에 부합하는 정책을, ‘분배’라면 분배를 이룰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지금 조세재정정책은 목표와 정책이 모순이다. 여전히 코로나 이후 불평등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여기에 저출생·초고령사회 진입, 산업 변화·기후위기 등의 복합위기 상황도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때 사용자단체는 기업들이 어려움에 부닥치며 도산 위기에 처해있다고 주장하며 기업 위주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사용자단체 주장과 달리 국내 재벌 대기업들은 코로나 시기 오히려 막대한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며, 주식금융·비대면 서비스업 확대로 인한 플랫폼, 디지털 웹 기반의 거대 공룡 기업들이 탄생했다. 반면, 노동자는 고용불안정, 물가 폭등에 따른 실질임금 저하, 임금인상 억제 정책 등으로 삶의 질이 악화되었다. 국민과 노동자를 볼모로 한 기업 위주의 정책 추진은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하고 사회 불평등과 양극화를 가속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노총에서는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조세정책 마련을 위해 수차례 정부 기관에 건의해 왔다. 특히, 경기침체상황에서 고통 분담을 하는 사회연대적인 차원에서 고소득자, 재벌대기업, 플랫폼기업 등에게 세금을 한시적으로 부과하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른바 ‘횡재세’라 불리는 일종의 사회연대 차원의 조세정책을 검토해 봐야 할 시점이다. 자본주의 상징 국가인 미국에서도 루즈벨트 정부는 대공황 당시 고율의 누진적 소득세와 법인세 인상 등을 실시해 세수 기반을 확충하고 재정을 확대해 위기를 극복했다. 현재 정부가 경제 전반이 위기라고 하면서 ‘감세’를 통한 ‘경기 부양’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대책’이다.
횡재세 또는 서두에 언급한 새로운 환경변화에 따른 미래를 대비한 세제 도입이 유럽 등에서 실시되는 이유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기후 위기, 디지털 및 자동화에 따른 로봇세, 누진적 조세 등도 검토 대상이다. 정의는 정의하는 것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소득 양극화, 사회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서 수직적 형평성을 기반으로 ‘소득 있는 곳에 과세 한다’는 조세 정의 원칙을 현실화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