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미래 대안보다 분란의 씨앗 심은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이동철 부천상담소 소장

등록일 2022년12월16일 10시12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부천의 어느 화장품 제조업체와 식당에서 일하는 60대 여성 강아무개씨와 정아무개씨는 탄력적으로 일한다. 50명 미만으로 소규모 회사인지라 사장님은 필요할 때마다 이들을 불렀다가 일이 한가하면 쉬게 했다. 1주에 2~3일 정도를 꾸준히 일했지만, 그들이 근무일을 기록한 탁상 달력에는 일당을 받지 못해 휑한 비번일이 눈에 띄었다. 어느 동요의 한 구절처럼 사장님은 ‘퐁당퐁당’ ‘무급휴가’의 돌을 던졌다.

이 회사의 사장님들은 이들에게 수년간 일을 시키고도 퇴직금을 안 줬다. 특히나 제조업이나 서비스 자영업 사업장에서는 기간의 정함이 없이 인력회사에서 파견받은 노동자들을 고정으로 자기 직원처럼 부려 가며 일을 시킨다. 통상적인 근로관계가 상당 기간 지속돼 기간제 노동자나 매한가지인 것이다.

이 경우에는 한 주 15시간 이상 일을 했다면 설사 일부 근로계약기간이 단절된 경우라도 전체 근로기간을 근속기간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와 같은 ‘퐁당퐁당 계약’을 통해 우리는 이미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영세 사업장들이 일회용 근로계약을 남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아무개씨가 일하는 포장반 노동자들은 퇴근시간인 오후 5시가 가까워지면 현장의 칠판에 시선을 고정한다. 이때쯤 공장장이 사무실에서 내려와 칠판에 마커팬으로 휘갈겨 쓴 ‘잔업’이라는 글귀에 따라 가족과의 저녁식사의 행복이 깨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잔업 여부는 매일 매일 종업시간 몇 분 전에 공장장이 ‘탄력적’으로 통보한다.

그뿐 아니다. 부품 도장 회사에서 도장 스프레이 뿌리는 일을 하기로 하고 채용된 윤아무개씨는 사장님의 신임이 돈독하다. 입사한 지 두 달도 안 된 윤씨에게 사장님이 생산제품을 수출 컨테이너에 지게차를 이용해 싣는 작업도 믿고 맡긴 것이다. 윤씨는 지게차 운전면허증이 없는데도 말이다. 근로계약상 업무 외의 일을 시키며 사장님은 월급을 더 줄 생각은 안 하고 매번 격려만 한다. 작은 회사에서 네 일 내 일이 어디 있나?

이처럼 중소·영세 사업장에서는 이미 탄력적이고 유연한 노동이 판을 치는데 고용노동부 장관이 미래의 노동자의 일하는 방식에 대해 혁신적 방안을 연구해 보라고 만든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교수와 전문가들은 현장의 일하는 방식이 너무 경직돼 있다고 한탄한다.

 


△ 출처 = 고용노동부


최근 연구회가 고용시장의 혁신 방안을 연구한 결과물을 권고안으로 발표했다. 이들은 권고안에서 근로시간 제도를 개편해 노사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시간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전통적 임금체계를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장근로를 현행 1주 12시간 한도에서 벗어나 1년까지 탄력적으로 운영하게 하고 연장근로에 따른 수당을 높게 쳐주다 보면 장시간 근로가 이뤄지므로 이를 계좌에 저축하듯 쟁여 놓고 장기적으로 안식휴가 등을 주자고 방법론도 제시했다. 언뜻 보면 아름다운 말이다.

그런데 이들은 연차휴가 제도가 적용되는 사업장 노동자들이 법으로 보장된 자기 연차휴가조차도 다 못 쓴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2020년 노동부가 조사한 ‘일·가정 양립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연차휴가 적용 사업장 5천곳의 평균 연차휴가 사용 비율은 약 63%로 2019년 약 75%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낮게 나왔다. 절반 이상이 “업무가 과다하고 대체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있는 연차휴가도 못 썼다”는데 휴가저축계좌는 무슨.

이들은 일의 가치를 평가해 이에 따라 임금을 달리 매기는 직무급제 시행도 권고했다. 이는 업무의 내용이 명확하게 분장되고 평가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일부 대기업이나 체계를 갖춘 공기업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너의 일, 나의 일 구분 없이 ‘올 라운드 플레이어’를 요구하는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직무의 가치를 평가해 임금을 달리 매긴다? 그 평가는 사장님이 할 테고 사장님의 눈 밖에 나면 기존의 임금을 깎는다는 의미밖에 더 되나.

물론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고용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영세 기업의 인사노무관리 역량을 강화하고 임금체계 구축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과제를 밝힌 부분은 평가할 만하다. 직무급제 시행은 노동자들이 납득할 만한 합리적 임금체계의 구축과 인사노무관리 역량을 갖춘 후에 차분하게 진행돼야 그 효과가 있을 것이다.

앞선 상담사례에서처럼 이미 충분히 유연하게 노동자를 사용하는 기업들은 분쟁 예방을 위해 근로시간을 의무적으로 기록하게 하고 비정규직 양산을 막기 위해 마련된 기간제 사용제한 규정도 “기업경영을 가로막는 규제”라고 난리다.

직무급제나 인사평가를 통해 노동자를 통제하는 데 골몰하는 기업의 탐욕을 바로 보지 못한다면 연구회가 제시한 해결책이 오히려 노사 분쟁의 뇌관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공동으로 기재되고 있습니다.

이동철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인터뷰 이슈 산별 칼럼

토크쇼

포토뉴스

인터뷰

기부뉴스

여러분들의 후원금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듭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