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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2020)

어디에도 없는 우리 집

등록일 2022년10월05일 09시3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손시내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오래전, <홈리스>의 제목은 ‘우리 집’이었다. 촬영을 마치는 동안 동명의 영화가 나오자, 임승현 감독은 영문 제목이었던 ‘홈리스’를 타이틀로 삼기로 했다. 우리 집과 홈리스, 우리 가족이 사는 보금자리라는 뜻과 집이 없다는 뜻을 지닌 상반되는 두 단어는 기묘하게도 이 영화와 모두 잘 어울린다. 영화에 등장하는 낡은 주택은 말 그대로 ‘우리 가족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동시에 영화의 주인공들에겐 집이 없다. 어떻게 된 일일까?

 

<홈리스>는 새하얗고 밝은 모델하우스에서 시작한다. 얼룩이라곤 어디에도 묻어있지 않을 것 같은 예쁜 공간에 한눈에 봐도 어린 커플이 아직 분유를 떼지 못한 어린아이와 함께 있다. 그저 집을 구경하러 온 신혼부부인가 싶지만, 행색은 그게 아니다. 이들은 지금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덜덜거리는 트렁크를 끌며 돌아다니고 있다. 처음에 마치 세 가족만의 공간처럼 보였던 모델하우스에는 곧 관람객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어디에도 안락함은 없다. 소음, 시선, 기척, 모든 것들이 가족의 시간을 방해한다. 하긴, 당연하다. 여긴 그들의 집이 아니니까.

 

한결(전봉석)과 고운(박정연)은 어린 부모로, 이들은 어린아이 우림을 함께 키운다. 영화가 많은 정보를 주진 않지만, 어쨌든 이들에게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것 정도는 확실하다. 고운은 부모가 없고, 한결은 부모와 연락하지 않는다. 스쳐 지나가는 대사로 이들이 ‘가출팸’에 속해 있었다는 걸 추측할 수 있지만, 그 사실 역시 이들의 현재와는 큰 관련이 없다. 중요한 건 이들에게 도와달라고 연락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마냥 길거리를 떠도는 중인 건 아니다. 영화는 이 어린 부부가 열심히 일해서 모은 보증금으로 집을 구하는 시기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들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 한결은 배달대행업체에서 오토바이로 배달하고, 고운은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전단을 붙인다. 조금만 더 버티면 그동안 모은 돈으로 구한 그들만의 집에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찜질방을 전전해도, 거기서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며, 빨래한 옷을 말리고, 소음 속에서 잠을 청해야 해도, 그들은 버틸 수 있다.

 


출처 : 다음영화

 

이따금 화면에 비치는 도시의 풍경엔 집이 그야말로 한가득이다. 단독주택과 빌라, 아파트와 오피스텔. 세상에 집은 정말로 많다. 그러나 그 많은 집중에 ‘우리 집’은 없다는 것이 <홈리스>를 지탱하는 정서다. 물론 새로운 통찰은 아니다. 이는 보편적 문제다. 현대의 우리는 대개 이 주인공들처럼 집 문제로 고민한다. 특히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내 집 마련의 꿈’ 같은 건 물거품 같은 희망이 된 지 오래다. 실은 그저 맘 편히 지낼만한 공간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현대인이 겪는 주거 문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영화의 소재가 되어 오기도 했다. 라민 바흐러니 감독의 <라스트 홈>(2016)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수많은 사람이 집을 빼앗긴 시기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데, 그와 같은 사태를 초래한 사회, 정치적 조건을 함께 건드리며 어느 가족의 절박한 생존기를 그려낸다. 국내에선 집이 공포, 스릴러와 같은 장르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허정 감독의 <숨바꼭질>(2013)은 한때 흉흉한 소문을 낳으며 떠돌았던 아파트 괴담을 모티프로 집을 둘러싼 신경증과 혈투에 집중한다. 한편,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2018)는 이 각박한 세상에서 집을 포기하기로 선택하는 청년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출처 : 다음영화

 

<홈리스>는 현실의 문제에 대한 면밀한 설명서가 되려고 하거나, 그것을 장르적 쾌감으로 전환하거나, 가능한 혹은 환상적인 대안을 제시하려는 영화가 아니다. <홈리스>는 주거 문제라는 일종의 재난 앞에서 웅크린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연약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는 고요한 드라마다. 예쁜 모델하우스는 아니더라도 우리만의 아기자기한 보금자리를 꿈꿨건만, 고운과 한결의 바람은 곧 전세금 사기라는 사태와 함께 날아가 버린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다시 찜질방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들은 정말로 너무나 연약하다. 주변의 작은 기척에도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큰 눈을 끔뻑이며 연신 눈치를 본다. 게다가 몸집까지 작아서 각자의 몸을 건사하기에도 버거워 보인다. 아이를 품에 안기 전에 그 작은 몸부터 추슬러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이들은 책임감을 저버리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힘들었던 기억을 털어놓으며 우리는 우림을 절대 그렇게 키우지 말자고, 꼭 잘 키우자고 다짐한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적어도 지금 세상에서라면 집이 필요하다. 설상가상으로 찜질방에서 우림이 다치기까지 하자, 고운은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며 절망한다. 한결은 그런 고운을 데리고 어느 단독주택을 찾는다. 아무도 살지 않는 아늑한 집. 정성스레 가꿔진 마당하며, 온통 손때 묻은 물건들로 가득한 거실, 아주 오랜 세월을 담고 있는 여러 장의 사진들까지, 사람의 손길 닿지 않은 곳이 없지만 기묘하게도 이곳엔 사람만 없다. 평소 배달을 자주 시켜 한결과 친했던 주인 할머니가 미국에 여행을 가며 집을 잠시 비웠다는 것이다. 고운은 의아한 마음을 거둘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 공간을 포기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여기엔 소음도, 시선도 없다. “남들 코 고는 소리랑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하나도 없다. 밤이 이렇게 조용했나.” 무심히 던지는 말이지만, 이들의 조건을 상기하게 하는 쓰라린 대사다.

 


출처 : 다음영화

 

물론 이들이 누리는 아늑함은 일시적이다. 할머니가 집을 비웠다는 기간은 한 달. 자기 집이 아닌 그곳을 이들은 곧 떠나야 하며, 돈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대문만 열면 험악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큰 창을 통해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때가 있긴 하지만, 어쩐지 그 빛은 너무나도 창백해 보인다. 게다가 할머니의 집에서 사는 것 자체가 왠지 두려움을 안긴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2층 방과 옥상이 나오는데, 축축한 어둠이 그곳을 감싸고 있다. 집에서 생활을 시작하자 한결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고운에게 2층에 절대 올라가지 말고, 할머니 물건에도 손대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그리고 고운은 언젠가부터 이상한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수상한 낌새에 영화 중간중간 삽입되는 한결과 할머니의 일화까지 더해지면,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홈리스>는 관객이 숨은그림찾기를 하도록 유도하는 대신,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사회의 어둑한 풍경을 느슨하게 잇고, 그 안에 일렁이는 정서를 담아보려 노력한다.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건, 선하고 어리숙한 이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더 나은 상태에 도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니, 그러기는커녕 나쁜 결과들만 기다리고 있다. 여기엔 물론 분명한 사건들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사태를 받아들이고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의 내면에까지 도달한다. 이들은 영원히 집에 돌아올 수 없는 할머니 대신 그곳에 둥지를 튼다. 그러나 그곳은 여전히 그들의 집이 아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우리 집’이 허락되지 않는 한, 우리 모두가 집을 ‘우리 집’으로 부를 수 없는 건 아닐까. 영화가 끝나는 곳에서 곱씹어 볼만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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