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은 물 밑에 꼭꼭 숨어있던 가사노동자 이슈가 세상에 나온 해였다. 노동조합과 노동단체들이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노동법을’ 적용시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산재보험 및 고용보험 적용이 비정형 노동자들에게도 확대되고 다양한 노동인권교육이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 집을 방문하는 노동자를 존중해주셔요’라는 가정방문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개선 캠페인이 진행되었지만, 그 어디에도 가사노동자는 없었다. 현재 가사노동자는 그 숫자만도 20만 명에서 40만 명1)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사근로자법)의 시행과 노동조합의 설립은 문제의 최종 해결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무수한 문제를 이제 막 정리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국가의 강력한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기업의 직고용모델이 가능할 것인지, 호출노동의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고 근로환경에 이용자들의 개입력이 큰 이 영역에서 노사정 관계만으로 노동자 보호가 가능할 것인지, 개별 가정에 흩어져 일하며 거리에서조차 만나기 어려운 가사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묶는 것이 가능할 것인지 등 가사노동자의 노동 기본권 보호와 조직화를 위해 도전하고 풀어나가야 할 많은 과제가 존재한다.
이 글은 이러한 현장의 고민을 살펴보고, 노조 조직화가 먼저 시작된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시사점을 얻고자 하는 시론 성격의 글이다. 외국의 사례도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필자가 아는 범위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제 고민은 실천을 통해 해답을 찾아나가야 하며, 이 글이 그러한 실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첫째, 법은 가사근로자와 가사서비스를 정의하고 있다. 가사서비스란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청소, 세탁, 주방일과 가구 구성원의 보호, 양육 등 가정생활의 유지 및 관리에 필요한 업무를 수행(법 제2조 1항)’하는 것이며, 가사근로자란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의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이용자에게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법 제2조 4항)’을 말한다.
둘째, 가사노동자 고용의 주체와 의무를 분명히 하고 있다. 법 제7조에서 ‘제공기관’은 법인으로서 일정 인원 이상의 가사근로자를 유급 근로자로 고용해야 하고, 서비스 제공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적‧물적 손해에 대한 배상수단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근로자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가사근로자의 고충처리수단을 반드시 마련3)해야 한다. 제공하는 서비스의 종류와 요금 산정기준, 이용절차 등을 반드시 공개해야 하며(법 제9조) 가사근로자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근로를 강요해서는 안되고 또 근로자가 고충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된다(법 제4조).
셋째, 정책의 방향과 국가의 역할 및 의무를 제시했다. 법 제1조에서는 이 법의 목적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 ‘가사근로자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제3조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하며 제공기관에 대한 자문 및 정보제공, 교육훈련과 고충처리‧상담 등 가사근로자의 권익 증진을 위해 필요한 시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했다. 법 제20조에 의거해 앞으로는 고용정책기본법에 따른 고용정책심의회가 가사근로자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향상에 관한 중요 정책의 수립 및 제도개선 등을 심의하게 된다. 나아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제공기관과 이용자에 대하여 조세 감면과 사회보험료 일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정했다.
넷째, 선언적 성격이 강하지만 이용자의 의무를 규정하였다. 법 제4조에서는 이용자와 이용자 가족은 가사근로자에게 휴게시간을 주는 등 적절한 근로환경을 제공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입주근로자의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곧, 가사근로자법의 핵심은 근로계약을 매개로 사용자와 사용자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가사노동자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더하여 한계는 있지만 주요 이해관계자인 이용자4)의 역할을 명시함으로써 향후 이해관계자간 거버넌스 구축의 실마리를 던지고 있다.
가사근로자법 시행의 주요 의미 중 하나는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을 정부가 인증하고, 인증기관에 고용된 가사노동자는 노동관계법을 적용받게 된다는 것이다.
올 6월 16일 법 시행과 함께 제공기관 인증이 시작되었다. 현재 제공기관 인증에 관심을 가진 100개의 기업들이 노동부의 컨설팅을 받고 있는 중이며 7월 24일 현재 14개 기업이 인증이 완료되어 정부인증 가사서비스 사이트인 ‘가사랑’(https://www.work.go.kr/gsrnMain.do)에 등록되었다. 등록기관 중에는 7개의 사회적경제기업, 그리고 대표적 플랫폼 기업 중 하나인 대리주부가 포함되어 있다.
이밖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앞의 <표 1>과 같다.
3. 가사근로자법 관련 과제
이로써 가사노동자 권리보장운동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법과 관련하여 최우선 과제는 가사노동자들이 근로계약으로 보호받는 제공기관이 확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곧 직업소개로 굳어져 온 시장에 정규 고용이 가능하다는 메시지와 대안을 던지는 것이다. 그런데 고용에 관심있는 기업들은 하나같이 정부의 지원이 미흡함을 호소한다. 고용을 한다면 퇴직금과 각종 수당, 보험료 등으로 최소 30%의 추가비용이 필요한데, 요금을 인상하면 플랫폼기업 등 수수료 체계를 유지하는 곳과 비교하여 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점, 직업소개에서 기업 운영으로 바뀔 경우 행정업무가 늘어나는데 추가로 행정인력을 고용하기 어렵다는 점 등이 주요 이유이다.
또 현장 노동자들에게도 인센티브가 부족하다. 퇴직금, 고용보험과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 지원을 통한 고용 및 소득 안정은 미래의 급부일 뿐 지금 당장은 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이며, 정부가 약속한 사회보험료 지원은 현재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60세 이상 노동자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근로계약과 법적 보호를 받아보지 못한 가사노동자들을 고용으로 이끌 유인책이 부족하다는 뜻이다.5)
또 하나 중요한 과제는 지금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앞으로도 존재할 직업소개시장의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가사근로자법으로 노동자 보호의 물꼬가 막 트이는 이 시점에도 한편으로 전국민고용보험제, 산업안전보건법, 근로자복지기본법 대상 확대 등 비정형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가사노동자는 이러한 보호조치들로부터 배제되고 있다. 가사근로자법에만 매달려 있다면 이 법에 포괄되지 못하는 다수의 가사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은 더 커져만 갈 것이다.
따라서 제공기관 확대와 더불어 비정형 노동자에게 확대되는 법적 보호로부터 가사노동자가 배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덧붙이자면 현행 직업안정법에 대한 전면적 검토가 필요하다. 직업안정법은 구인구직자간의 고용계약 지원, 최저임금 및 임금 지급 원칙의 준수,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한 고지 의무 등 최소한의 노동자 보호 규정을 가지고 있지만 최소한 가사서비스 영역에서는 이것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Ⅲ. 가사노동자 조직화와 외국의 동향
1. ILO 가사노동자협약과 추진전략
가사노동자 조직의 설립은 70년간 기울어져 온 생태계를 바로잡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간 가사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조직하지도, 자신들을 대변할 조직도 제대로 갖고 있지 않았다. 1960년대 시작된 한국YWCA연합회의 가사노동자 직업훈련과 사업단 조직, IMF 이후 본격화된 한국가사노동자협회의 가사노동자 사업단 조직 등 비영리단체의 활동에 이어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이후 사회적경제기업의 일부가 이들을 조직하고 있을 뿐이다.
가사노동자의 규모를 최소 20만 명이라 할 때 이들의 조직률은 한때 10%에 이르렀지만6) 가사서비스가 산업화되고 플랫폼기업이 시장을 점유하기 시작하면서 최근 조직률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그동안 일자리 알선과 권리보호운동을 병행해왔지만 시장에서의 생존이 중요해지면서 기업적 활동으로 중심이 옮겨지고 있다. 따라서 가사노동자 조직화 역시 새로운 단계로 도약해야 하며 그 중심은 노동조합이 될 것이다.
가사노동자 조직화를 논할 때 ILO 가사노동자협약(189호)을 빼놓을 수 없다. 외국에서는 일찍이 가사노동자 문제를 주목했으며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 International Trade Union Confederation)이 앞장서 협약 및 후속전략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ILO는 협약을 채택한 뒤 2013년, 전세계에 7,650만 명의 가사노동자가 있는데, 이 중 81%가 비공식 고용이며 이들이 다른 노동자 월평균 임금의 56%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고, 90%가 사회보장제도로부터 제외되고 있다고 밝혔다.7) 또한 17%가 이주노동자로서 가사노동자 이슈는 비공식 노동, 이주노동, 여성노동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음을 얘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ILO 가사노동자협약은 일반 노동자들과 같은 수준의 처우 혹은 최소한 불리하지 않은 대우 보장을 전제로 가사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 최소한의 근로조건과 최저임금 보장, 알선 및 소개업의 적절한 규제, 정부의 적극적 정책 수립을 규정하였다. 2022년 7월 18일 현재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필리핀, 멕시코 등 35개국8)이 협약을 비준하고 국내 법제도를 제개정, 보완하였다.
또 ILO는 협약 채택에 그치지 않고,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 국제가사노동자연맹(IDWF: International Domestic Workers Federation)과 협력하여 가사노동자 조직화를 지원하고 있으며, 5대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각국 정부와 노사가 추진해야 할 5대 전략이란 ▶가사노동자 관련 국가기구의 강화와 효과적인 정책 및 입법, 프로그램의 채택 ▶가사노동자와 고용주 조직을 만들고 대표성을 강화 ▶ILO 가사노동자 협약 제189호와 가사노동자 협약에 대한 권고 제201호의 이행 촉진 ▶가사노동자 권리에 대한 인식 제고와 옹호 ▶업무 표준화와 국가간 교류를 통한 행동 강화이다.
2. 외국의 가사노동자 조직화 사례
ILO 가사노동자 협약 비준의 구체적 내용뿐 아니라 외국의 가사노동자 조직화 사례는 아직 연구된 바가 없기때문에 여기에서는 필자가 그간 관심있게 살펴본 필리핀과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고 이에 기초하여 시사점을 얻고자 한다.
먼저 2012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사노동자 협약을 비준한 나라인 필리핀의 사례를 살펴본다.9) 2020년 현재 필리핀의 가사노동자들은 140만 명으로 필리핀 노동인구의 약 3.2%를 차지하는데 비공식 노동자까지 합치면 190만~250만 명으로 추정된다. 필리핀은 필리핀노동조합연맹, 고용주연맹, 비정부기구(NGO), 비영리단체(NPO), 고용노동부가 워킹그룹을 구성하여 2012년 이전부터 협약 비준을 준비해왔으며, 비준 직후 ‘가사근로자 보호와 복지에 관한 법’을 제정하였다. 법은 가사노동자들과 직업소개소, 이용자 각각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먼저 가사노동자들은 바랑가이(일종의 주민자치센터)에 자신을 등록해야 하며 직업소개소는 노동자들에게서 수수료를 받아서는 안된다. 이용자들은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 휴게시간 부여, 연 5일의 유급휴가, 3대 보험 의무가입, 13개월 급여(13month pay)10), 고용증명서 발급의 의무가 있다. 즉 필리핀은 한국의 가사근로자법과 달리 노동자-직업소개소-이용자의 관계를 법 안에 그대로 반영하였다.
협약 비준과 더불어 대도시(메트로마닐라)에서 가사노동자 조직화가 시작되었다. NGO의 도움을 받아 그 해 말 74명의 가사노동자가 저축협동조합(일종의 공제회)을 설립했으며, 2015년 UNITED라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조 설립총회에는 ILO와 노동조합, NGO 외에 필리핀 고용노동부 관계자도 참석했는데, 2016년 현재 조합원은 약 600명이며 조직 단위는 마을이다.11) 노동조합은 가사노동자 조직화, 리더십 육성, 기술교육 및 권리확보 캠페인, 연구활동에 주력한다.
문제는 민관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9년 필리핀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83%가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못했고 98.5%가 여전히 고용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며, 휴일 없이 일주일 내내 일하는 노동자들도 36%에 달했다. 이에 필리핀 정부는 2020년에 ‘지역 고용을 위한 민간고용기관의 국내 근로자 모집 및 배치 관리규정(Do.217)’을 공표하였는데, 가사노동자와 고용주에게 사전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하며, 법의 내용이 명시된 고용계약서 사본을 보관할 것 등 민간고용기관(=직업소개소)의 의무를 강화하였다.
필리핀의 사례는 우리에게, 집합적 사업장이 없이 흩어져 개인 가정에서 일하는 가사노동자들은 지역에서 접근할 수 있고, 이 때 ‘가사노동자 등록제’12)는 매우 유용한 수단임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가사근로자법에 포괄되지 않는 집단의 경우 구직구인자 사이에서 중개역할을 하는 민간고용기관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할지가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미국13)의 경우 비영리단체와 노동조합(주로 SEIU)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미국에는 약 2천 만명의 가사노동자가 활동하고 있는데 다수가 남미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이다. 미국도 가정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노동법 적용을 하지 않다가 1974년에 가서야 ‘공정노동기준법(FLSA: Fair Labor Standards Act)’을 일부 적용하기 시작했다(지민선, 2021). 가사노동자 조직화가 본격화된 것은 2005년 전후인데 여기에는 워커스센터14)의 활동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2007년에 비영리단체인 전미가사노동자연맹(NDWA: National Domestic Workers Alliance)이 설립되었다. 현재 NDWA는 약 2만여 명을 대변하는 25개 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노동조합총연맹(AFL-CIO)은 2011년 NDWA와 파트너십을 맺고 조직화를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뉴욕시의 가사노동자권리장전(2010년)을 시작으로 2019년까지 하와이, 캘리포니아, 코네티컷, 매사추세츠, 오리건, 일리노이, 네바다, 뉴멕시코주에서 권리장전이 제정되었다.
총연맹이 전국 단위에서 법제도 개선운동에 나섰다면 직접 가사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은 개별 연맹, 특히 북미서비스노조(SEIU: 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가 중심이 되어 전개하였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해서는 조직활동가를 파견하고 비영리단체와 협력하여 노동자협동조합을 조직하도록 지원하였으며, 홈케어(노인돌봄 및 가정간호 등) 분야에서 다수의 노동자를 노조로 조직하였다. SEIU775는 홈케어 노동자들의 노조이며, 의료수급자들과 노동자를 매칭하고 노동자들의 교육훈련, 정보 제공을 위해 Carina라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상호협력을 배경으로 2천 명이 넘는 조합원으로 구성된 홈케어 노동자협동조합 CHCA는 전원이 노동조합에 가입하였다. 지난 해에는 약 1천 명 이상의 베이비시터를 조직했다고 한다.
미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집합적 사업장이 없는 가사노동자들에게 직업훈련, 정보제공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영리단체 및 노동자협동조합과 노동조합의 협력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특히 노동자협동조합은 사업장 단위로 가사노동자를 조직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다.
Ⅳ. 가사노동자 노동조합과 향후 과제
1. 가사‧돌봄서비스지부 노동조합의 설립
지난 5월 28일 한국 역사상 최초로 가사노동자 조직을 표방하며 한국노총 전국연대노조 산하에 ‘가사‧돌봄서비스지부(약칭 가사‧돌봄유니온15))’가 둥지를 틀었다. 가사‧돌봄유니온은 가사‧돌봄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 및 복지 향상, 가사‧돌봄노동자를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 취약계층 가사‧돌봄서비스 확대를 통한 안정적 일자리 창출을 설립 목적으로 제시하였다.
가사노동자 노동조합의 조직은 전례가 없기 때문에 해결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많다. 가장 핵심은 ‘어디에서’ 조직할 것인가이다. 노조는 ‘일터’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삶터에서 생기는 조직이 친목회, 지역조직들이라면 일터에서 생기는 대표적인 조직이 노동조합과 (노동자)협동조합이다. 산업혁명은 노동자계급의 탄생뿐 아니라 집합적 일터(대공장)라는 장치를 통해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공간’에 모여서 서로를 알아가고 ‘공동’의 문제를 인식하며 ‘함께’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을 학습한다. 일터에서의 모습을 통해 누가 ‘잠재적 리더’인지도 알게 된다. 곧 노동조합의 탄생은 ‘일자리’와 ‘공동의 일터’를 기본조건으로 한다.
하지만 가사노동자들은 이러한 공동의 일터가 없다. 이제 막 근로계약을 맺는 기업들이 생겨나는 초기 단계이며,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다수의 노동자들은 개인 가구와 거래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곧 공동의 이해관계를 확인하고 유대를 쌓아갈 수 있는 ‘공동의 일터’가 여전히 부재하다. 아니, 같은 비정형노동인 배달, 대리운전 노동자들과도 달리 아예 길거리에서조차 ‘만남의 장’ 자체가 없다.
최근 돌봄서비스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노동조합이 조직되기 시작했다. 요양보호사를 선두로 장애인활동지원사, 아이돌보미 등이 그러하다. 이들의 특징은 가정방문 돌봄서비스이지만 ‘사회서비스원’, ‘장애인활동지원기관’, ‘건강가정지원센터’와 같이 근로계약을 통해 집합적 일터를 가지고 있으며, 공공일자리의 특성상 정부라고 하는 근로조건 개선에 핵심 역할을 하는 직간접 사용자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가사‧돌봄유니온은 주요 요구의 하나로 정부와 지자체에 가사노동자 지원조례 및 ‘가사노동자지원센터’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센터는 다중의 가사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홍보와 교육, 상담을 통해 조직화의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유력한 기제이다.
다음으로 ‘무엇을 통해’ 조직할 것인가이다. 여전히 최저임금 혹은 그 이하를 받고 있는 가사노동자들에게 임금 인상은 매우 중요한 요구이다. 비정형 노동자 가운데 호출노동적 성격이 가장 강한 이들에게 일자리 안정화도 시급한 요구이다. 다양한 조사에서 안정적 일자리에 대한 요구가 가장 높게 나오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가사노동자들을 내가 ‘부리는 사람’으로 보는 이용자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를 직업인으로 인정해달라는 인식 개선 요구도 빠뜨릴 수 없다.
먼저, 일반 노동조합은 임금 인상을 핵심으로 단체협약을 통해 근로조건을 개선해나간다. 하지만 개인 가구를 대상으로 과연 임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을까. 이용자는 더 낮은 요금을 제시하는 업체로 옮겨가면 그만이다. 제공기관 역시 마찬가지이다. 수수료만 공제하는 직업소개소(플랫폼기업도 여기에 속한다)가 혼재하는 상황에서 당분간 요금 인상을 통한 근로조건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서 가사‧돌봄유니온은 주요 요구의 하나로 정부에 가사서비스 일자리 확대와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소득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이 필요한 가사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활복지 확충의 요구이자, 이러한 일자리가 민간일자리의 질을 끌어올리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지방정부의 가사서비스 지원사업을 제공기관(직고용업체)에 우선 위탁할 것을 요구한다. 대부분의 지원사업은 알선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해당 지역에 가사노동자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협동조합이 있는데도 플랫폼기업에게 위탁하는 사례조차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여전히 가사노동자를 배제한 채 확대되고 있는 전국민고용보험제, 산재보험과 산업안전보건법 적용도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우리 요구의 하나이다.
나아가 가사‧돌봄유니온은 일상사업이자 제도화 요구의 하나로서 공제회를 운영하며, 정부에 직업훈련과 자격증 제도 도입을 요구한다.
2. 한국노총의 역할
우리는 제한된 자료이지만 필리핀과 미국의 사례에서 가사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과 조직화가 쉽지 않은 과제임을 보았다. 필리핀에서는 가사노동자 등록제와 병행하여 마을 단위에서 조직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제도화된 노인돌봄분야에서는 노조를 설립하지만 주로 이주노동자로 구성된 가사돌봄 등 민간영역에서는 노동자협동조합, 비영리단체와 협력을 통해 조직화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노총(AFL-CIO)은 전국 단위의 비영리단체와 협력하여 권리장전 제정 등 법제도 개선에 주력한다.
따라서 한국노총은 노총 중앙단위에서는 전국민고용보험 등 미조직 가사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와 권리 보장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ILO 가사노동자협약 비준을 목표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미조직 노동자를 가시화하고 이용자-민간고용기관-기업-종사자간 새로운 권리의무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데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할 수 있는 협약 비준이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가사‧돌봄유니온이 속한 전국연대노조는 구체적으로 조직화방안을 만들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노총은 근로자복지관, 노동상담소, 취업지원센터 등 다양한 민관의 지원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가사노동자 조직화를 최소 3년간 주요 의제로 잡아 집중 홍보와 상담 및 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글에서는 극히 일부를 다뤘지만 외국에서는 이전부터 가사노동자 조직화가 시도되었으며 특히 ILO 가사노동자협약 채택을 기점으로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ILO 역시 가사노동자 조직화도구를 개발, 확산하고, 국가별 조직 설립을 지원하는 등 세계적 동향도 ‘조직화’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 점에서 가사‧돌봄유니온은 노동조합운동에 되돌아봄을 요구한다. 비정형노동자들은 무엇으로 조직되는가, 노동조합은 왜 지금까지, 또 지금도 비정형노동자들을 잘 조직하지 못하고 있는가, 고정된 일터와 단체교섭으로 상징되는 근로조건 개선 활동이 비정형노동자, 아니 최소한 가사노동자들에게는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가 등이 그것이다.
가사‧돌봄유니온의 설립은 취약노동자, 비정형노동자 조직화가 이제 현실로 다가왔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실험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길을 뚫을 수 있도록 노총 차원의 구체적인 연대와 지원이 필요하다.
<미주>
1) 가사근로자법은 이후 제공기관과 고용노동자의 규모를 예상할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비용추계서를 붙이지 않았다. 직전인 2017년 국회예산정책처에서 작성한 비용추계서에서는 사회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가사노동자의 규모를 21만으로 추계했으며, 현장에서는 이주노동자 및 파악되지 않은 숫자를 합치면 이 수치의 두 배가 될 것이라 이야기한다.
2) 그간 법 제정운동에서는 ‘가사노동자법’이라고 불렀지만 이제부터는 ‘가사근로자법’이라 칭한다. 이 법이 모든 가사노동자를 포괄하는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제공기관에 고용되어 ‘근로계약’을 맺은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현행 법에서는 30인 이상의 사업장에 대해서만 노사협의회, 고충처리위원을 두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이 법에서는 모든 제공기관에게 규모에 상관없이 고충처리수단을 마련하도록 의무화함으로써 30인 미만 사업장이어도 근로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최소한의 창구를 마련했다.
4) 가사서비스를 비롯해 모든 돌봄서비스는 상품처럼 규격화가 어려우며 기업과 소비자 관계로만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청소면 어떤 도구와 세제를 쓸지, 어느 정도 강도로 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아이돌봄이라면 부모가 어떤 양육관을 가지고 있는지, 집에 어떤 놀이도구가 있는지 등이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서비스 이용자와 그 가족이 서비스 제공과정에 관여하게 되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소비자의 역할과 의무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5) 예를 들어 가사노동자들에게 건강보험 납부액과 국민연금 납부액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효과적인 유인책이 된다. 예산 측면에서도 건강보험 납부액이 국민연금 납부액보다 낮기때문에 정부의 부담도 줄어들 것이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 한국YWCA연합회, 한국여성노동자회, 전국가정관리사협회는 ‘가사근로자 사회보험료 지원에 관한 고시 제정안에 대한 의견서(22.6.14.)’ 제출을 통해 이를 요구했다.
6) 비영리단체와 사회적경제기업을 아울러 가장 큰 가사노동자 조직은 한국YWCA연합회이다. 연합회는 회원YWCA에서 가사노동자를 사업단으로 조직하고 있는데, 배정미(2020)에 따르면 2016년 약 19,000명이던 회원이 2020년에는 약 8,800명으로 줄었다. 한편 한국가사노동자협회는 회원단체가 대부분 사회적경제기업인데 소속 가사노동자의 숫자는 약 1천 여명이다.
7) https://www.ilo.org/global/topics/domestic-workers/
8) 33개국이 비준을 완료하였고 2개국은 비준을 준비 중이다.
9) 필리핀 사례는 IDWF, NTUC Phl, TUCP 홈페이지 및 필리핀 고용노동부 자료, 신문기사 등을 참고했다. 다만 현재의 조직률에 관한 자료는 거의 찾기 어렵다.
10) 한 달 이상 일한 가사노동자에게 고용주가 지급하는 의무급여이다. 1년이 지나면 한 달치를 줘도 되지만 1년이 되지 않아도 일한 날짜만큼 계산해 지급해야 한다.
11) 마을을 조직 기반으로 하는 것은 지리적 문제 외에, 가사노동자들은 ‘마을의 주민자치센터(바랑가이)’에 등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리핀 고용노동부는 마을 단위로 설명회를 열기도 하며 노조도 마을에서 집회를 갖는다.
12) 등록제는 단순히 조직화의 유용한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정책대상의 규모를 추정할 수 있고 정부의 정책 전달통로로 활용할 수 있다. 만약 한국에도 이러한 제도가 있었다면 특고․프리랜서 긴급고용지원금과 같은 정책이 좀더 빠르고 정확하게 가사노동자들에게도 전달되었을 것이다.
13) 미국의 사례는 한국노동연구원의 2021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기념 해외전문가 초청세미나 자료 및 NDWA, SEIU775 홈페이지를 참고했다.
14) 워커스센터(workers center)는 미국에서 노조 조합원이 아니거나 노동법에서 배제된 취약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비영리기관이다. 문자 그대로 당사자들의 임파워먼트와 자조에 중점을 두어 커뮤니티를 만들도록 지원한다. 70~80년대는 흑인 노동자, 90년대 이후에는 남미계 이주노동자들이 중심이 되고 있다. 노동상담과 노동교육, 영어교육, 리더십 육성 등이 주요 사업이다. 2006년 AFL-CIO가 이주노동자 포용으로 정책을 전환함에 따라 양자는 파트너십을 맺고 협력을 본격화했다고 한다.
15) 가사․돌봄이라는 용어를 쓴 것은 가사서비스가 간접적 대인돌봄으로서 돌봄서비스에 포함되지만 몇 년 전부터 노인, 장애인, 아이와 같이 직접적 대인서비스에만 돌봄이라는 용어를 쓰는 관행이 생겼기 때문이다. 또 가사근로자법의 가사서비스에도 가구원의 보호와 양육이 포함되어 있지만, 가사서비스라고만 하면 ‘가사도우미서비스’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현장의 많은 노동자들은 가사돌봄이라는 용어처럼 가사서비스를 청소서비스가 아니라 돌봄서비스로 인식하고 있는데, 건물청소와는 달리 청결에 대한 가구원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위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합원들은 창립총회에서 토론을 통해 노동조합 이름으로 가사․돌봄이라는 용어를 선택했다.
<참고문헌>
배정미(2020), 가사노동자법 제정을 위한 한국YWCA 돌봄운동,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제8차비정규직위원회 발표자료.
지민선(2021), 「미국 가사노동자 조직 현황」, 한국노동연구원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기념 KLI해외전문가 초청세미나.
최영미‧윤지영‧표대중(2017), 「이주가사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와 정책방안」, 서울노동권익센터.
최영미(2021), 「가사근로자법 시행과 전망」, 『월간노동법률』 7월호 vol.362.
최영미(2022.1), 「서울시 가사노동자 지원조례의 필요성과 주요 내용」, 서울특별시 가사노동자 지원조례 제정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서울특별시의회.
최준하(2020), 가사서비스 공식화방안, 가사노동자 고용개선제도 입법을 위한 정책토론회 자료집, 이수진(비례)의원실 외.
신문기사
“New DoLE guidelines for additional protection of kasambahay”(2021.1.19.)
https://www.bworldonline.com/new-dole-guidelines-for-additional-protection-of-kasambahay/
“Employers urged to register household workers”(2020.2.19.)
https://www.pna.gov.ph/articles/1094284
“New DoLE guidelines for additional protection of kasambahay”
https://ntucphl.org/2015/10/batas-kasambahay-a-law-exploited/
홈페이지
ILO(https://www.ilo.org/global/topics/domestic-workers/)
NATIONAL DOMESTIC WORKERS ALLIANCE(https://domesticworkers.org/)
NATIONAL TRADE UNION CENTER(https://ntucphl.org/)
DEPARTMENT OF LABOR AND EMPLOYMENT(https://www.dole.gov.ph/)
International Domestic Workers Federation(https://idwfed.org/)
SEIU775(https://seiu775.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