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이들의 기쁨과 슬픔에 주목하는 작가 장류진은 그의 단편소설 <도움의 손길>에서 도시 중산층 여성이 가사노동자를 사용하며 겪는 갈등을 잘 묘사했다. 은행 대출을 얻어 28평 새집을 마련한 ‘나’는 새집의 깨끗함을 유지하고 싶어 가사도우미를 써 볼까 고민 중이다. 월급받으며 일하는 처지에 남을 부리는 것이 조금 그래서 갈등하던 중 가사도우미를 써 본 주위 동료들의 적극적 추천으로 결국 여러 사람을 고민한 끝에 ‘네 번째 아주머니’를 격주 가사도우미로 결정했다.
그런데 뛰어난 청소 실력 때문에 발탁한 ‘네 번째 아주머니’는 슬슬 출근시간이 늦어지더니 ‘딩크족’인 ‘나’에게 “왜 아이를 가지지 않느냐”며 무시로 사적인 경계를 침범하고 불편하게 한다. 그러던 와중에 결국 사건이 터진다. 급한 업무를 마치고 돌아온 집에서 ‘네 번째 아주머니’의 빈틈을 확인한 것이다. 보이는 곳은 반짝반짝 빛이 나는 데 반해 창틀 틈이나 욕조와 세면대 등 보이지 않는 곳은 엉망이다.
결국 ‘네 번째 아주머니’에게 결별을 통보하려는 찰나에 반전이 일어난다. ‘네 번째 아주머니’가 오히려 ‘나’에게 “매일 와 달라는 집이 있다”며 결별을 통보한 것. 그러면서 ‘네 번째 아주머니’는 ‘일하는 사람 먹을 걸 챙겨 주지도 않으면서 일 시키면 안 된다’는 투로 훈수까지 둬 ‘나’를 씁쓸하게 한다.
△ 6월 16일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한국노총 전국연대노동조합 가사돌봄서비스지부 출범식
최근 우리 상담소로 이처럼 가사노동자 사용인들의 상담이 심심치 않게 들어온다. 주된 상담 내용은 아이를 돌봐 주기로 하거나 가사일을 하기로 약속한 가사노동자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어긴다거나 약속한 서비스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사용인들은 이들 가사노동자에게 책임을 묻는 방법이 없는지 분통을 터뜨린다.
사실 상담소에서 일하다 보면 꽤 많은 가사노동자가 상담을 의뢰해 온다. 사용인에게 보수를 받지 못했다거나 일방적으로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며 부당해고를 당했다는 불만이 주된 내용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가사 사용인’으로 불리며 노동법 보호에서 배제됐다. 그 때문에 가사노동자들은 이러한 문제에 관해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 진정을 제기하거나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해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이처럼 가사노동을 제공하는 가사노동자와 사용인들 사이에 고용관계를 둘러싼 지속적인 갈등이 제기되는 배경에는 우리 노동시장에서 가사노동을 규율할 제도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청소와 세탁, 주방일 외에도 가구 구성원의 보호와 양육 등 가정생활의 유지·관리를 담당하는 업무인 가사노동을 우리 사회는 그동안 ‘그림자 노동’으로 취급해 왔다.
국가와 사회는 임금으로 환원되는 산업노동과 달리 가정을 유지하고 꾸리는 가사노동은 임금으로 값을 환산할 수 없었기에 그 가치를 인정하는 데 야박했다. 오로지 산업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과정으로 수행되는, 일터로 나가는 아빠의 셔츠를 다리고 장차 산업역군이 될 자녀를 출산하고 돌보는 일 정도에 여성의 모성을 찬양하며 잠깐 그 역할을 인정했을 뿐이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일터에서 돈 벌어 오는 남성 가장과 가정에서 가사를 돌보는 ‘현모양처’로 대표되는 근대 자본주의 성별 분업구조가 여전히 완고하던 20세기에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은 68년간이나 가사노동자를 ‘가사 사용인’으로 부르며 법 적용에서 배제해 왔다.
다행히 가사노동자들의 노동인권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력해 온 YWCA나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등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노력으로 지난해 4월 국회에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근로자법)이 제정됐다. 이제 가사노동자들이 정부가 인증한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에 고용되면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연차수당의 지급과 4대 보험 가입 등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정부 인증기관이 가사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책임지고 서비스 교육도 실시해 이용자들에 대한 서비스 질도 관리하게 된 점에서 가사노동자 사용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8월 현재 정부 인증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은 24개에 불과하다. 적게는 30만명, 많게는 60만명으로 추산되는 가사노동자들이 서비스 이용자들과 만나는 방식은 전통적 직업소개 방식이 80%에 가깝다(20%는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 인증받지 않은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하는 가사노동자의 노동조건 보호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법 적용을 통해 가사노동자와 서비스 이용자의 권익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정부 인증을 통해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확대해 이곳에 고용된 가사노동자를 늘리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인증을 위한 의무에 비해 정부 지원이 너무 빈약하다.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장은 매일노동뉴스 인터뷰에서 “민간 서비스기관이 정부 인증을 위해서는 노무비용이 20~30% 인상되지만, 정부가 제시한 부가세 면세, 보험료 지원 정도로는 이를 상쇄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렇게 해서 거대 플랫폼 가사서비스 중개기관과 가격경쟁이 가능할까?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