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처리 기간 단출을 위한 연구 진행
고용노동부는 금년에 근골격계 질환 추정의 원칙 고시를 발표했다. 추정의 원칙이란 단어가 생소할 수 있는데 추정의 원칙은 원래 당연인정기준이라는 용어에서 파생되었다. 추정의 원칙에 대한 연구는 2018년 처음 진행되었고 이후 2020년, 2021년에 추가 연구가 진행되었다. 연구가 진행된 배경은 그동안 근골격계 질환 산재 처리기간이 5~6개월 이상 소요되다 보니 그로 인한 산재 신청인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고 이에 산재 처리기간 단축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산재 처리기간이 지연되는 이유는 산재를 신청한 상병에 대해 현장조사를 모두 시행하기 때문이다.
추정의 원칙은 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판위)에서 심의한 근골격계 질환 중 다빈도 상병에 대해 승인율이 높은 직종을 선별하여 그 직종에 대해서는 현장조사를 생략함으로써 신청 기간을 단축하자는 취지이다. 특정 직종에서 특정 상병의 승인율이 높다는 것은 질판위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이 그 직종의 업무가 신청 부위에 부담이 된다고 이미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굳이 현장조사를 실시할 필요성이 없다.
2018년 연구결과로 다빈도 6대 상병, 즉 경추간판탈출증, 요추간판탈출증, 회전근개 파열, 내·외상과염, 수근관증후군, 반월상 연골 파열에 대해 승인율이 70~80% 이상이 되는 직종들이 선정되었고 질환별로 최소 종사 기간, 작업 중단 후 신청 유효기간 등을 정하여 시행되었다. 2020년 연구결과로 각 질환별로 새로운 직종들이 추가되었으나 경총의 반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이후 실제 추정의 원칙 적용 건수가 저조한 문제점이 발생했는데, 이것은 6대 상병 외 다른 상병들이 같이 신청되면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로, 어깨에서는 회전근개 파열이 추정의 원칙 대상 상병인데 회전근개 파열이 단독 질환으로 신청되고 직종 및 종사 기간 등의 기준에 해당하면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어 현장조사를 생략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회전근개 파열뿐만 아니라 충돌증후군, 관절와순 파열 등 다른 상병들도 같이 신청되는 경우가 많아 이 경우에는 같이 신청된 다른 상병들이 추정의 원칙 대상 질환이 아니므로 추정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2021년 연구에서는 기존 연구에서 선정된 직종을 재검토하고 신규 직종과 손목질환 2종을 추가했으며, 동시에 추정의 원칙 적용 대상이 확대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마련해 제시했다. 적용확대 방안은 같이 신청된 상병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자는 것이고, 6대 상병 외 흔히 같이 신청되는 상병을 부위별로 나열하여 추정의 원칙 적용을 확대하고자 했다.
앞의 예처럼 기존에는 직종, 종사 기간 등이 기준에 맞고, 회전근개 파열이 단독상병일 때만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었으나 개정안은 회전근개 파열, 충돌증후군, 관절와순 파열이 같이 신청되어도 일단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서 현장조사를 생략한 이후 질판위에서 회전근개 파열 외의 상병에 대해서는 개별 심의를 하여 승인 여부를 결정하자는 취지이다.
이런 확대방안이 나오게 된 근거는 같이 신청되는 상병들의 발생원인이 6대 상병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에 있다. 원래 노동부가 준비한 추정의 원칙 고시(안)은 직종이 확대된 추정의 원칙(안)인 별표 11)과 추정의 원칙 적용대상 질환 확대 방안이 담긴 별표 2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개정도 3년에 1회씩 실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경총과 일부 전문가들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결국 최종적으로 별표 2는 빠지고 추정의 원칙 개정 시기도 1년 6개월로 단축되어 발표되어 그야말로 반쪽짜리 개정안으로 전락했다.
경총은 추정의 원칙이 고용노동부 고시로 들어가는 것 자체를 반대했다. 그 이유는 추정의 원칙이 학문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 같은 직종 작업이라도 사업장에 따라 작업형태가 다를 수 있어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점, 그리고 신청이 많은 특정 업종이나 직종에 집중되어 업종과 직종 간에 차별이 발생한다는 점, 최근에 개선이 많이 되고 있는 업종과 직종이 들어간 점, 산재신청이 급증하여 기업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점 등이었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주장이지만 사실상 추정의 원칙의 도입 취지를 곡해한 주장들이다.
연구진 원안대로 적용, 시행해야
먼저 추정의 원칙은 인정기준이 아니라 신청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기준이다. 물론 승인율이 대부분 80% 이상의 직종(일부 직종은 80%가 되지 않아도 기존 추정의 원칙에 포함되어 있고 일관된 승인율을 보이는 경우에는 포함되었음)이라는 것은 그만큼 업무부담이 높다는 것을 전문가들이 인정한다는 것이므로 업무상 질병으로 승인이 되는 것은 타당하다. 20%나 불승인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불승인된 20%도 대부분 신청 상병이 확인되지 않는다거나 종사 기간이 짧아서 불승인되는 등 업무부담과는 거리가 있는 불승인 이유였다.
따라서 추정의 원칙에 포함되는 직종은 업무부담이 인정되는 직종들이므로 현장조사를 생략해서 신청기간을 단축하자는 취지는 타당하며, 업무관련성을 높게 본다고 고시에서 규정하였다고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질판위에서 심의하여 결정하므로 무조건 승인된다고 볼 수 없다. 질판위의 판정과정을 보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동안의 경험과 연구결과를 집대성하여 고도의 전문적 판단을 한 결과로서 학문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경총의 주장은 질판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이다.
그리고 추정의 원칙 대상 직종은 회사마다 작업내용의 편차가 큰 직종이 아니다. 물론 특정 업종과 직종에 집중되어 있으나 이에 대해 빠른 처리를 하고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업종과 직종에 대해 제한된 조사인력을 투입해 정확한 조사를 하자는 것이 추정의 원칙 도입 취지와 맞다.
한편, 타이어 등의 일부 업종에서 최근 자동화 등으로 업무개선이 이루어져 부담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근골격계 질환은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누적되어 발생하는 질환으로 최근의 현장개선 결과가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현재 산재를 신청하는 노동자들은 개선되기 전의 부담업무가 누적되어 신청하는 것이지 현재 개선된 업무와는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경총의 주장은 전제 자체가 다른 얘기이다.
이번 고시(안)의 가장 큰 문제는 별표 2의 삭제이다. 별표 2는 추정의 원칙 적용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이다. 기존 추정의 원칙은 적용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며, 실제 2020년도 9,900건 이상의 산재 신청자 중에서 추정의 원칙 적용 건수는 330여 건에 불과하다. 물론 별표 1의 추정의 원칙이 기존 추정의 원칙보다는 직종과 질환이 확대되어 그만큼 적용이 확대되는 측면이 있으나 이 또한 단독상병일 때만 적용 가능하다. 따라서 현재의 고시내용은 매우 실망스러울 수 있다.
사실 별표 2의 내용도 연구진의 원안에 비해 후퇴했는데, 이것은 추정의 원칙 적용확대 방안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에 기인하며, 그런 측면에서는 오히려 별표 2가 빠진 것이 다행스러운 면도 있다. 따라서 고시에서 별표 2가 빠졌다고 실망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추정의 원칙 적용이 확대될 수 있는 체계에 대해 요구를 할 필요가 있다. 가장 좋은 방안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는 기준을 연구진의 원안대로 적용하여 시행하는 것이다.
사실상 이것이 연구진이 원래 추구하고자 하였던 실질적 목표이기도 하다. 추정의 원칙 도입 취지가 조사기간을 단축하자는 것에 있는 만큼 이런 요구는 근로복지공단 입장에서도 행정력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것이며,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도 별표 2가 고시에 포함되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미주>
1) [별표 1] 라목 3) 관련 상병, 직종, 근무기간, 유효기간 기준(「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 일부개정 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