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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새겨진 영광의 상처

[제3회 난생처음 노동문화제 수상작] 수기 특별상, 서현정

등록일 2022년02월28일 15시3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나의 두 손에는 베이고, 찔리고, 데인 거친 노동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희고 고운 섬섬옥수와는 거리가 먼, 참으로 볼품없는 손이다.

 

늘 퉁퉁 부어 있는 손마디는 결혼반지를 거부하고, 제때 치료받지 못해 인대가 늘어나 있는 엄지손가락은 시도 때도 없이 욱신거린다. 화상을 입은 손등엔 새살이 돋아났지만 소나무 껍질처럼 거칠고 뻣뻣하다. 관절은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휘어져 있고, 지문이 닳아 없어진 손가락 끝마디 안쪽엔 굳은살만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흉터투성이인 내 손은 늘 안쓰러운 시선을 받는다. 음식을 나르는 내 손을 측은하게 쳐다보는 손님도 많다. 언젠가 한 번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약국에서 밴드를 한 상자 사다준 적도 있었다.

 

허나 나는 묵묵히 궂은일을 해나가는 내 손이 자랑스럽다. 비록 볼품은 없어도, 내 손은 성실하게 살아온 지난 삶을 증명해주는 훈장과도 같기 때문이다.

 

나는 오랜 시간 식당에서 일하며 부단하게 굴곡진 삶을 헤쳐 왔다. 식당 주방과 홀은 내 삶터다. 종일 문턱이 닳도록 오가면서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 앞에 내어놓는다.

 

오전 11시 30분쯤이 되면 각자의 삶터에서 열심히 일을 한 사람들이 식당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이내 몰려드는 손님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행복한 순간이다.

 

따뜻한 밥 한 끼로 마음을 전하셨던 그 옛날의 어머니처럼 내가 만든 음식이 누군가에게는 허기를 채워줄 든든한 한 끼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마음 속 공허함을 달래줄 소울푸드가 된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특히 집밥을 먹은 것처럼 속도, 마음도 든든하다고 말해주는 손님을 만날 때면 고된 노동으로 인해 몸 구석구석에 배어있던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다.

 

손님이 뜸해지는 오후 2시경은 되어야 잠시 허리를 펴고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잔을 마시는 여유로운 한때가 지나고 나면, 저녁 시간 손님상에 나갈 식재료 준비로 가게와 내 손은 다시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육체적으로는 매우 고된 일상이지만, 일이 가져다주는 활력과 생의 안정감, 누군가를 즐겁게 하는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뿌듯함 등이 내 노동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준다. 이런 감정들 하나하나가 힘든 시간을 성실하게 견뎌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지금처럼 정당한 노동의 가치를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나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식당을 열고 장사를 시작했다. 음식 솜씨만큼은 자신이 있었기에 빠른 시간 안에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 당시 나에게 식당이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음식을 많이 팔아 큰돈을 벌 수 있을까만 생각했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식당을 운영할지, 음식을 통해 손님들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할지는 고민해보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최고의 가치는 돈이었고, 최대한 빨리 많은 돈을 벌어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리면서 사는 것이 내 삶의 유일한 목표였다. 당연히 종업원들이 땀 흘려 이룬 노동의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그 가치를 무시했다.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했던 나는 종업원을 그저 월급 120만 원 짜리, 150만 원 짜리, 180만 원 짜리 일꾼으로만 대했다. 그들이 한시라도 손을 쉬고 있으면 보기가 싫었고, 손을 분주히 움직여도 항상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는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내게서 비롯된 어두운 감정이 종업원들에게도 그대로 스며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지나치게 많은 일을 요구해서 몸과 마음이 지쳐서일까. 그들은 늘 경직되고 딱딱한 얼굴로 접객을 했고, 주문하는 음식 가격을 잣대 삼아 친절과 서비스에 차등을 두고 손님을 대했다.

 

불친절하고 불공정한 대우에 손님들의 항의가 이어졌지만 그 누구도 진심을 담아 손님을 응대하지 않았다. 아무리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라고 주문해도, 당장 주인인 나부터가 손님을 돈으로만 보고 있어서인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들기 시작하다더니, 결국 식당 문을 연 지 2년 만에 폐업을 하고 말았다.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두 번째 식당을 열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식당 주인인 나의 노동이 가치 있는 만큼 종업원들의 노동 가치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노동 뒤에 숨은 인간의 가치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종업원들이 하는 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더 존중해주었더라면 결과가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은 후였다. 두 번의 실패로 나는 이미 삶의 밑바닥까지 다다르게 됐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서 하는 수 없이 한 식당 주방에 취업을 했다. 비록 내가 운영하는 식당은 아니지만, 지난 실패의 경험을 발판삼아 제대로 다시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곳은 식당 규모에 걸맞지 않게 고용 인원이 턱없이 부족한 곳이었다. 손님이 조금만 몰려와도 숨 쉴 틈 없이 손과 발을 움직여야 했다. 여름을 지나 가을이 무르익을 쯤 인데도, 내 이마와 목덜미에는 굵은 땀방울이 수시로 흘러내렸다. 하루 종일 찜통 같은 주방 안 화구 앞에 서서 서른 가지도 넘는 음식을 쉴 새 없이 만들었다.

 

천근만근이 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면 하루의 피로가 폭풍처럼 밀려와 남편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보기도 전에 바로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일이 버거웠지만 벼랑 끝에서 다시 시작한 만큼 좋고 나쁨을 따질 만한 여유는 없었다. 그저 밑바닥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간절하게 발버둥 칠뿐이었다.

 

이런 나의 노고가 무색하게 고용주의 시선에는 늘 무시가 섞여 있었다. 고용주는 나에게 이름이 아닌“주방”이라고 부르면서 나를 하찮은 사람처럼 대했고, 나의 정당한 노력의 가치를 아무렇지 않게 깎아내리기도 했다. 또 사사건건 쫓아다니며 이것저것 참견하기 바빴다.

 

하루는 고용주에게 일할 때 불합리한 점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는데, 고용주는 나를 향해 “주방은 그게 문제야. 내가 월급 주는데,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토 달지 말고!”라면서 몹시 못마땅한 듯 비아냥거렸다. 알량한 자존심이 꿈틀거렸지만, 내가 처한 현실을 생각해 꾹 참았다.

 

월급을 받는 종업원이 된 이상, 과거에 두 차례나 내 장사를 해본 나의 경험과 경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고용주가 원하는 방식대로 충실하게 일을 수행해 낼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나를 향한 고용주의 시선과 과거 종업원을 두고 장사를 할 때의 내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고용주는 예전의 내가 그랬듯, 그저 나를 180만 원 짜리 주방 종업원으로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날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쫓는데 매몰되어, 타인이 이뤄낸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고 정작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것에 소홀했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종업원의 입장이 되고 보니 노동을 하면서 겪는 육체적인 힘겨움보다, 나를 향한 고용주의 무시 섞인 시선이 더욱 버겁게 느껴졌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고용주로부터 내 감정과 노동의 가치를 무시당한 나는 결국 속을 끓이다가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주방이 아닌 홀 서빙 직원으로 식당에 취업했다. 다행히 고용주의 무시 섞인 시선은 사라졌지만, 그 빈자리에는 손님들의 싸늘한 말들이 들어앉았다. 손님들은 말 한마디로 내 감정을 쥐락펴락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한 손님이 다짜고짜 나를 향해 “어이~ 이리 와봐!”라며 손짓을 했다. 영문을 몰라 손님 쪽으로 가보았더니, 메뉴가 잘못 나왔다며 대뜸 막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 사과를 하고 음식을 바꿔 내오겠다고 얘기했음에도, 그 손님은 막말을 멈추지 않았다. 머리가 얼마나 나쁘면 이런 단순노동 하나 제대로 못하냐면서, 그러니 식당에서 서빙일이나 하는 것이라고 모욕을 퍼부었다. 모든 손님들이 식사를 하다말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손님들이 내뱉은 송곳처럼 뾰족한 말들에 찔려 속울음을 삼키던 날이 얼마였던가. 나는 내 일에 진심을 다했는데, 왜 사람들은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의 말에 찔리고 베인 상처는 가슴속에 생채기로 남아 늘 욱신거렸다. 칼에 배이거나 불에 데면 손이 상처를 입지만, 사람들의 날카로운 말에는 마음까지 상처를 입었다.

 

그 후로 내게는 작은 습관이 하나 생겼다. 내가 손님이 되어 식당을 방문할 때면 종업원들의 얼굴 표정과 손을 살피는 일이다. 또 식당을 나온 후에는 혹시 내가 잘못된 말과 행동으로 종업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상처를 내진 않았는지 떠올려 본다. 그들을 존중하는 것이 나를 존중하는 일임을 조금씩 깨우쳐가고 있는 중이다.

 

나의 두 손과 두 다리로 삶을 지탱해 온지 어느덧 20여년이 흘렀다. 긴 시간동안 노동을 해오면서 다양한 세상 속의 시선을 경험하고 이해할 나이가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타인의 뾰족한 말과 시선을 능숙하게 받아낼 수 있는 여유를 갖추게 되었고, 노동의 가치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무엇보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노동에 가치를 담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즐거움과 성취 면에서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과 노동은 나를 세상과 이어주고, 세상과 소통하게 해주는 마중물이다.

 

오늘도 나는 꼭 다시 한 번 식당을 열고 싶다는 꿈을 간직한 채 고단하지만 보람된 삶을 꿰어나간다. 내 두 손에는 일에 대한 열정과 삶의 온기가 담겨있다. 곳곳에 새겨진 베이거나 데인 흔적들은 삶터에서 최선을 다해온 영광의 상처다.

 

값지지 않은 노동이란 없다. 식당 종업원의 노동도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일의 형식과 종류를 떠나 ‘노동’이라는 두 글자가 누구에게나 가슴 아픈 단어가 아닌, 따뜻하고 희망적인 단어가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래본다.

 

심사평

☞ “하지만 이제 내가 종업원의 입장이 되고 보니 노동을 하면서 겪는 육체적인 힘겨움보다, 나를 향한 고용주의 무시 섞인 시선이 더욱 버겁게 느껴졌다.” 모두의 가치를 돈으로 생각했던 사장 시절을 지나 주방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 때 느낀 점을 솔직하고 진실되게 써 주어 귀감이 됩니다.

임욱영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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