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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스와 퐁퐁

[제3회 난생처음 노동문화제 수상작] 수기 특별상, 김난희

등록일 2022년02월28일 15시2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락스와 퐁퐁을 잔뜩 머금은 대걸레로 바닥을 벅벅 닦는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8자 모양을 그리며 닦으면 더 쉽게 할 수 있다고 선배가 알려주었다. 내가 일하는 목욕탕은 동네에서 가장 크다. 목욕탕 바닥을 다 닦고 나면 등줄기에 땀이 맺힌다. 바닥을 닦고 나서는 씻는 자리를 닦아야 한다. 커다란 수세미에 용액을 잔뜩 묻히고 양손에 하나씩 든다. 벽을 마주 보고 접영을 하듯 밖에서 안으로 벽과 거울을 닦는다. 둥글게, 둥글게 팔을 굴리며 수전도 깨끗하게 닦아준다. 한 줄을 다 닦고 나면 고개를 숙여 선반을 닦는다. 왼손으로는 옆면을 닦고 오른손으로는 윗면을 닦는다.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앞으로 나간다. 하얀 거품으로 선반을 가득 채우고 나면 머리가 어지럽다. 한 줄, 한 줄, 해낼수록 팔이 저려온다. 다행히도 내가 맡은 파트는 목욕탕의 반. 나머지 반과 탕은 선배의 몫이다.

 

나는 청소 노동자다. 엄마를 따라 목욕탕에 처음 갔을 때가 어제인 것 같은데 이제는 청소를 하러 매일 밤 12시 30분, 목욕탕에 들어선다. 카운터에는 항상 같은 옷을 입은 여사님이 계신다. 흰 블라우스에 검은색 조끼, 회색 넥타이를 매고 항상 같은 웃음으로 맞이해주신다.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면 21번 열쇠를 꺼내주신다. 열쇠를 받아 여탕으로 들어가면 입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 21번 사물함이 있다. 바로 옷을 갈아입는다. 작업복은 팬티와 찜질방 윗도리. 바지를 입어도 금방 젖어버리기 때문에 팬티만 입고 일을 한다. 처음 일을 시작한 날, 선배는 내게 두 장의 찜질방 윗도리를 줬다. 하나 입고 빨고 말리고 다음날에는 다른 하나를 입고 빨고 말리고... 21번 사물함에는 내 작업복이 매일 마르고 있다.

 

청소를 마치고 나면 나도 목욕을 한다. 자리를 잡고 옷을 벗는다. 작업복에 비누를 잔뜩 묻히고 조물조물 주무른다. 한바탕 청소를 마치고 나면 팔에 힘이 빠져서 빨래도 쉽지가 않다. 수전 위에 꽉 짠 작업복을 올려놓고 샤워기를 튼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을 씻어낸다. 내가 샤워를 마칠 때쯤이면 선배는 탕에 새로운 물을 채운다. 찬물과 더운물을 같이 틀다가 물이 어느 정도 차면 찬물을 잠그는데 물이 채워질 때 탕에 들어가면 점점 따듯해지는 물을 느낄 수가 있다. ‘몸이 녹는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고된 노동 뒤에 하는 목욕은 사람을 녹인다. 열탕의 물 온도는 40도 이상. 몸이 점점 뜨거워진다.

 

목욕탕 청소를 시작하게 된 건 밤에 잠을 못 자서다. 아빠의 죽음 이후에 밤에 잠을 자기가 두려워졌다. 아빠의 혼령이 나타나서 나를 괴롭힐 것만 같았다. 실제로 아빠는 살아계실 적에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서는 밤마다 나를 괴롭혔었다. 밤에 잠을 못 자니 낮에 잠을 자야 했다. 그래서 낮에 할 수 있는 일보다 밤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엄마가 동네 친구인 선배를 소개해 주었다. 선배는 인상이 좋았다. 말수가 별로 없었다. 키가 작았지만 작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큰 고민 없이 목욕탕으로 따라갔다. 그렇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출근을 하면 손님들은 집에 간다. 남은 사람들도 청소를 시작하면 목욕을 빠르게 끝내고 나간다. 사람을 마주치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에 아는 사람을 만났다. 청소를 시작하려고 널려있는 의자와 바가지를 모으고 있다가 눈이 마주쳤다. 전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인데 옷을 벗고 있어서 그런지 생소했다. 눈을 마주쳤지만 인사하지 않았다. 시선을 돌려 의자와 바가지를 마저 챙겼다. 선배가 만들어 놓은 청소 용액에 의자를 담그고 수세미로 박박 닦고 있는데 그가 내 앞을 쑥 지나갔다. 일부러 눈길을 주지 않는 느낌이었다. 몸이 투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청소를 하는 게 부끄럽진 않지만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도 않다. 대단히 멋진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후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사를 했어야 했을까 고민이 든다.

 

목욕탕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고객들은 나이대가 있는 편이다. 와서 목욕도 하지만 마사지도 받고 수다도 떨고 간식거리도 먹는다. 텔레비전 앞에는 항상 어머니들이 앉거나 누워있다. 내가 청소 도구를 챙기고 있으면 한 마디씩 한다. 대충 젊은 사람이 힘든 일 한다는 말인데 기분이 썩 좋지 않지만 좋게 들으려고 노력한다. 청소는 정말 힘든 일일까? 청소는 몸으로 하는 노동이다. 몸이 쉽게 피곤해진다. 처음 일할 때는 근육통이 생겨서 며칠 고생도 했다. 반복적으로 손목을 쓰고 허리를 굽히다 보니 종종 일상에서도 아플 때가 있다. 락스가 들어간 청소 용액은 얼굴에도 튀고 다리에도 튄다. 샤워를 하다 보면 피부가 따끔 따끔하다. 빨갛게 일어난 피부를 보면서 생각한다. 내일도 출근해야할까.

 

나는 내가 목욕탕의 소속으로 일을 하는 줄 알았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되었는데 나와 선배는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세신사 분들이 고용한 사람이었다. 목욕탕은 세신사에게 자리를 빌려주는 대신 청소를 맡긴다고 했다. 그런데 세신 일을 끝내고 청소까지는 하기 힘드니 여러 명이서 돈을 모아 청소 담당자를 두는 거다.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하청은 있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매달 정해진 날에 현금으로 임금을 받는다. 언제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잘릴 수 있다. 돈을 주지 않더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만 같다. 선배는 이런 상황에 불만이 없어 보였다. 보통은 부업으로 하는 일이라서 그럴까. 머리에 물음표와 느낌표가 마구마구 뜨지만 조건을 문제로 일을 그만 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근육통으로 몸이 쑤시는 날에는 대걸레를 약하게 밀기도 했다. 뭉친 근육을 똑같이 쓴다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다. 어떻게든 덜 아프게 움직이기 위해서 몸을 살살 굴렸다. 내가 일을 대충 하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는지 선배가 말을 걸었다. 대뜸 바닥이 미끄러우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니?라고 질문했다. 아이쿠, 걸렸구나. 선배는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다쳐, 그래서 미끄럽지 않게 잘 닦아야 하는 거야. 알겠지?. 그러면서 팁도 알려줬다. 가장 미끄러운 곳은 세신사들이 일하는 다이야. 오일을 많이 써. 바닥에 오일이 흐르면 미끄러워. 그래서 힘줘서 잘 닦아줘야 해. 여기만 잘 닦아도 돼. 선배의 말을 듣고 발바닥으로 바닥을 훑으니 미끄러운 것 같았다. 대걸레를 바로 잡고 바닥을 긁듯이 힘을 줬다. 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일하는구나.

 

선배가 만드는 청소 용액은 락스와 퐁퐁 그리고 탕에 있던 물로 이루어진다. 아기들이 쓰는 목욕 대야에 퐁퐁을 담고 큰 바가지로 물을 퍼서 담고 마지막으로 락스를 넣는다. 용액에서는 목욕탕 냄새가 난다. 그 용액으로 바닥을 닦고 바가지를 닦고 거울을 닦고 탕을 닦고 다이를 닦는다. 손과 발이 닿는 모든 곳에 락스와 퐁퐁이 닿는다. 그곳들에서는 목욕탕 냄새가 난다. 나는 목욕탕 청소 노동자이다. 내 몸에서도 락스와 퐁퐁 냄새가 나겠지. 목욕탕에서 일하는 사람의 냄새가 나겠지. 오늘도 출근을 한다.

 

심사평

☞ 정말 좋은 글이었습니다

☞ 순식간에 읽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는 글이다

임욱영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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