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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 나의 사명

[제3회 난생처음 노동문화제 수상작] 수기 특별상, 김현지

등록일 2022년02월28일 15시27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선생님, 혹시 일하시면서 사명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네? 사명이요?"

 

처음으로 간 노동조합 모임에서 "다른 직원과 비교감이 너무 많이 든다"는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지부장님께서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하셨다.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꿈뻑꿈뻑하는 나를 보고 지부장님께서는 웃음을 터뜨리고는 이야기 하셨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단어죠?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의 사명이라고 해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에게 지부장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선생님, 불행한 사람은 남과 나를 비교하지만 행복한 사람은 사명과 나를 비교한대요. 이왕 일하는 거, 맡은 일에 집중해보는 거 어떠셔요?"

지부장님의 말씀은 지치고 고단하기만 하던 직장생활이 즐겁고 보람나게 변화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는 90년대생 공무원이다. 2018년 11월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하 공시생) 25만 명 시대,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화제의 책, 『90년생이 온다』 가 출판됨과 동시에 90년대생의 꿈의 직장, 9급 공무원 시험에 최종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부터 공무원이 될 생각은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의 전공과 적성에 맞는 직장에서 보람찬 삶을 살고 싶어 몇 년간의 취업준비 끝에 사기업의 인턴이 되었다. 하지만 일을 하다가 택시비도 주지 않으면서 야근에 철야근무에 주말 출근까지, 주7일 일을 하며 점점 찌들어갔다.

 

아주 오랜만에 밤 9시에 퇴근하고서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외쳤다. "나 일찍 퇴근했어! 술 한잔 하자." 그렇게 만난 친구와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자아실현은 취미에서 하는 거지, 직장에서 자아실현하려고 한 내가 어리석었다."하고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 말에 공감한 친구와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를 하고 공시생이 되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나 교육행정직 공무원 공무원증을 걸게 되었다. "이제 됐다, "저녁 있는 삶"을 살며 취미와 특기를 개발해야지!"하고 부푼 마음에 1월 1일 첫 출근을 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그 다음날이 되는 새벽 12시 넘어서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

 

학교로 발령받은 신규 공무원인 나는 전임자에게 급여 업무를 주로 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말은 학교에 있는 모든 직원의 급여를 줘야할 뿐만 아니라, 1번도 제대로 월급을 받아본 적 없던 내가 교직원들의 월급에 대한 근로소득세 연말정산을 해야했다. 게다가 학교에는 30가지가 넘는 서로 다른 법을 적용받는 직종이 있었다. 공무원이라는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했는데 얼굴도 모르는 200명의 월급을 줘야할 뿐만 아니라 연말정산이라는 단어가 뭔지도 모르는데 그 업무를 해야한다니!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500명이었던 동기가 연말정산기간 2달이 지나고 100명이 의원사직서를 냈다.

 

실장님은 "나 때는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어서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고, 함께 실무를 하는 선배는 "나는 이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 다른 데 물어보라"고 하셨다. 근무지 내에서 일을 물을 곳이 없으니 하나의 일을 처리하는데 10군데에 물어보았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을 잘못 처리하는 바람에 각 직종마다 하루에 한번씩 무리지어 찾아와서 거의 욕을 먹다시피 컴플레인을 들었다.

 

더 답답한 것은 서로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이었다. 상사 분들은 나를 "별나고 특이한 90년대생"으로 보았고, 나는 상사 분들을 "나 때는 말이야"를 연발하는 "꼰대 라떼"라고 부르며 서로를 무시하며 서로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나몰라라 했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학교에 가장 일찍 출근하는 것도 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것도 난데 내가 월급이 제일 적다는 사실이었다. 9급 1호봉 150만원. 공무원 시험을 마치고 임용을 기다리면서 벌었던 아르바이트비보다도 못했다. 학교 내에 있는 25개 무기계약직종 중에 어떤 직종은 무기계약직인데도 비정규직에 근로기준법을 따랐기 때문에 공무원에게는 없는 단체행동권이 있어 수시로 파업을 했고, 파업을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임금이 올랐다.

 

그들의 임금을 소급해서 지급하는 작업을 하면서 "이럴 거면 무기계약직할 걸 왜 나는 3년동안이나 젊음을 허비해가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어가는 건 욕뿐이었고, 의욕 넘치던 동기들은 만나서 "야, 뭐하러 일 열심히 해? 월급만큼만 일해."라고 했다.

 

일은 해도 해도 줄지 않고, 직장에서는 소통이 되지 않고, 기존 법률을 익히기도 전에 법률은 계속 변화되고 내 월급 빼고 다른 직종 월급은 다 오르고. 매일 야근해가면서 일하는 게 너무 싫고 ‘공노비’같은 나의 삶이 너무 불만족스러웠다. 반복되는 야근과 업무 스트레스로 역류성 식도염, 위궤양과 같은 스트레스성 질병이 생겼다. 설상가상으로 선생님 한 분이 경력 산정에 오류가 생긴 것 같다는 민원을 제기하여 312개월의 급여를 재계산하는 ​업무가 추가되었다. 2주일밤을 꼬박 세워 완성했는데, 해당 선생님께서 경력 증빙 자료를 잘못 제출하셨기 때문에 다시 26년치를 계산해야한다는 공문이 도착했다.

 

또 다시 2주를 밤을 지새우며 계산한 결과는 오히려 지금까지 받았던 급여를 환수해야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결과를 받아보신 선생님께서 달려오셔서 욕설과 함께​ 자신은 낼 수 없다며 외치시며 소송을 걸겠다고 하셨다.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나머지 직장에서 쓰러졌다. 대학병원 검사 결과 대상포진, 우울증, 공황장애라는 질병이 추가되었다. 그렇게 업무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병휴직계를 내게 되었다.

 

근무지를 떠났는데도 편히 쉴 수가 없었다. 후임자에게서도 업무 문의와 민원 문의 전화벨이 쉴새없이 울렸다. 매일 근심, 걱정, 염려, 분노, 억울감에 휩싸여 정신 뿐만 아니라 몸도 견디지를 못했다.

 

"저녁 있는 삶.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이었나?" 울면서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곱씹어보았다. 사기업에서도 공직에서도 밤늦게까지 일하고도 욕먹고 월급도 적고 나의 노동의 가치가 너무나 낮게 느껴졌다.

 

의욕이 완전히 꺾여 복직 후에는 차라리 욕먹고 일을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할 줄 아는 일도 잘 모른다고 했고, 아주 소극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이렇게 하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괴로웠다. 점점 사람들이 인사조차 받아주지 않았고, 상사들은 맞게 일을 처리했는데도 의심을 하고 증빙자료를 더 엄격하게 요구했다. 이제는 일 못한다는 낙인까지 찍힌 것이다. 다른 직종과의 비교감으로 인한 열등감, 업무 강도로 인한 피로감에 더해 신뢰감까지 잃으니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것은 물론 인생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나를 건져올려준 것은 노동조합에서 만난 지부장님이었다. 학교를 돌면서 노동조합을 홍보하고 계셨는데, "궁금하거나 어려운 점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상담도 가능합니다"라고 하시기에 상담을 요청했다.

 

"지부장님, 만나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직장 생활이 열등감, 피로감, 불신감으로 인해 너무 불행해요."

 

그러고는 지금까지 내가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의원 면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세히 말씀을 드렸다. 한참 들으시던 지부장님께서 해주신 질문이 이것이었다.

 

"선생님, 혹시 일하시면서 사명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 질문을 하시면서 "지금 나에게 맡겨진 일에 집중하는 것이 열등감, 피로감, 불신감은 사라지게 만들고 보람감을 느끼게 하고 자존감을 높여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 날은 거의 그 말을 흘려듣다시피 하고 "오늘 상담은 별 수확이 없네."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상담을 하고 난 다음 날, 업무를 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 내가 나의 일에 집중하면 뭔가 달라질까?"

 

궁금해진 나는 우선 나의 사명이 뭔지 생각해보았다. 나의 사명은 우리 학교에 계신 교직원분들의 가족을 책임지고 가정과 사업을 경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급여"를 규정대로 주는 것이었다. 이 급여 덕분에 교직원 분들이 따뜻한 집에서 눈을 감고 뜰 수 있고, 아침에 밥상 앞에서 가족들이 화목하게 식사를 할 수 있으며, 각자의 근무지까지 올 수 있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런 생각까지 미치자 나의 업무가 아주 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귀한 일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 모든 메신저와 커뮤니티를 차단하고 일을 해보았다. 업무에 대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메신저, 직장인들이 모여서 서로 업무 환경을 비교 분석하며 우월감과 열등감이 교차하는 커뮤니티를 들어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마음이 편해졌다.

 

비교하지 않으니 내 업무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일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평소의 2/3으로 줄었다. 업무를 하는 데에 드는 시간이 줄어드니 야근이 줄었고, 야근이 줄자 피로감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타인의 불신을 신뢰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업무를 익히기 위해 노조에서 진행하는 직무 교육에 참석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업무 포털 사이트 메뉴를 하나하나 클릭해가면서 업무를 실질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직접 알려주셨다. 눈으로 보니 스스로 재현을 할 수 있었다. 더욱 값진 것은 업무 처리 방법을 알게된 것뿐만 아니라 조합원 분들과 친분을 맺을 수 있는 것이었다. 평소에 업무를 하면서 질문 사항이 생겼을 때 끙끙 앓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해결할 수 있는 무척이나 소중한 인맥이 생겼다.

 

노조를 통해 다양한 분들과 소통하면서 알게 된 것은, 편해보인다고 생각했던 직종이나 보직에 계신 분들도, 사실 나름 그들만의 고충이 다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질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분들과 대화할 때 은연중에 그들을 무시하는 말투가 나오게 되고, 그로 인해 그분들과 트러블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나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냈던 이유는, 내가 먼저 그들의 노동의 가치를 존중해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부터 상대방의 노동의 가치를 존중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사명에 집중하자, 직장 생활이 점점 활기를 찾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비교하지 않으니 편을 가르는 마음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저 사람은 우리에게 고용된 사람이니 나보다 아래야."라고 생각하고 다소 무리한 요구를 했었다. 그러니 나의 이미지가 "은근 갑질하는 사람"이라고 굳어진 거 같았다. 나의 일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다보니 나의 일이 귀하게 느껴지고, 내가 이렇게 일을 귀하게 대하는 만큼 타인도 귀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되었다.

 

두 번째로, 업무에서 느끼던 피로감이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비슷한 일을 하는 조합원들끼리 모임을 만들어서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니 업무속도가 무척 빨라지고 소속감이 높아졌다. 학습 커뮤니티를 만들어 1달에 1번씩 모여 1달 간의 미해결과제를 서로 살펴보고 도와주니 무척이나 금방 끝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신뢰를 회복했다. 조합원 분들이 직무 스터디에서 알려주신대로, 업무지시가 왔을 때 일단 "네, 알겠습니다. 제가 이 일은 처음해보는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라고 말했다. 참 신기하게도 그전까지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도와줄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요청에 대한 대답이 "네"로 긍정적으로 시작하는과 "아니오"로 시작하는 것이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중간에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직장 선배들은 나를 볼 때다마다 웃음을 지어주기 시작했다. 원래는 완벽한 작품만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노조에 가입해계신 선배들이 말씀해주시길, 리더는 중간 상황을 알지 못하면 불안해지고 부하직원을 믿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질문과 보고를 잘하는 기본적인 것만으로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보이지 않는 신뢰가 내 직장생활을 결정하다니! 그리고 직무 스터디인데 직장 생활의 지혜를 알려주시는 조합원 분들께 무척 감사했다.

 

사명에 집중하니 나의 언어 습관도 변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제가 지금 좀 바빠서요"를 입에 달고 살았다면, 이제는 "업무하시느라 수고 너무 많으십니다."라는 말이 입에 붙었다. 점점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90년대생 공무원"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귀하게 여겨주는 공무원"으로 나의 이미지가 개선되어갔다. 그리고 이제는 회사 직원분들이 나에게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서 어디서 스카웃해가는 거 몰라요. 오래 같이 근무하고 싶은데."라는 말을 해주신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불행한 삶은 이제 끝이 나고, 사명과 나를 비교하며 나를 매일 발전시키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어 몹시 감회가 새롭다. 이제는 후배들이 들어와서 나의 사례를 들려주며 노동의 현장에서 보람감과 자존감,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선배가 되었다. 나의 노동에 집중했을 때 나의 삶의 이유가 채워질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유익을 줄 수 있어 감사하다. 이 자리를 빌어 "사명"의 중요성을 깨우쳐준 지부장님과 노동조합에 감사를 표한다.

 

심사평

☞ 우리는 모두 일터에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나의 부족함과 상대의 부족함이 만나 상처가 됩니다. 하지만 마음을 다치지 않는 방법을 우리는 계속 연구합니다. 이 글이 그런 연구의 일환인 것 같아 기쁘게 배우며 읽었습니다.

임욱영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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