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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존중하면 간단하답니다

[제3회 난생처음 노동문화제 수상작] 수기 3등, 이미란

등록일 2022년02월28일 15시19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그때는 대학교 4학년 여름 방학이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로 학원에서 중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우리 영어영문학과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일자리였다. 너도나도 개인 혹은 그룹의 영어 과외를 하거나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그때는 왜인지 모르게 우리 모두가 미래에 꼭 영어를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만 한다고 여겼다. 지금 생각해봐도 모두가 왜 그렇게 영어의 틀에 갇혀서 지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는 비슷한 인생 계획을 세웠다. 학교 다닐 때는 아르바이트로 영어를 가르치며 용돈을 벌고 졸업 후에는 반드시 꼭 영어를 쓰는 회사에 취직할 것. 고작 4년 공부한 것이 뭐가 그렇게 억울하다고 그 4년의 투자를 미래의 밑천으로 삼지 않으면 엄청 손해인 것처럼 생각했었다. 다들 대단한 영어 실력도 아니고 대학 4년의 청춘을 오롯이 영어에 다 갖다 바친 것도 아니면서 남들보다 조금 더 영어를 잘한다는 그 작은 능력을 그렇게나 활용하려고 발버둥을 치며 지냈다.

 

얼마나 공부하는 자체가 억울했으면 그랬을까. 앎의 즐거움은 정말 소중한 것인데 얼마나 그걸 모르고 그저 취직에만 혈안이 됐으면 그랬을까. 대학은 공부를 하는 곳이지 취직을 위한 발판이 되는 곳이 아닌데 그 시절 우리는 그걸 잘 몰랐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대학생들을 봐도 비슷하다. 얼마나 많은 어른들이 시야를 틔워주지 못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세상에는 수천수만 가지의 길이 있는데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꼭 한 두가지에만 사로잡혀 있는 청춘들이 때론 안타깝다. 그 시절 우리가 그랬다. 모두가 말 가리개를 찬 말처럼 딱 그 앞에 놓여 진 아주 좁은 길밖에 보지 못했다.

 

그때 우리들 사이에서는 이력서 한줄 이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소위 말하는 이력서에 한줄 떡하니 쓸 수 있는 때깔 나는 경력이 되는 아르바이트. 우리는 그것이 좋은 일자리라고 믿었다. 그래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 보다는 어떤 회사에 단기로 소속되어 번역 통역을 해 보거나 한 프로젝트 진행의 업무를 해 보는 것 등을 선호했다. 하지만 그런 일자리는 잘 없었다.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둔 4학년 그 해 여름 나는 소위 말하는 이력서 한 줄에 적합하지 않은 잡다한 경력만 많이 쌓아 온 터라 내 취업은 어떻게 될까 불안 해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기회가 왔다.

 

당시 내가 일하던 영어 학원의 원장 선생님 친구 분이 무역 회사를 개업했다. 그 친구 분은 나에게 회사 제품 설명서 번역을 의뢰했다. 그러면서 이런 아르바이트는 졸업 후 취직할 때 이력서에 쓸 수 있어서 좋지 않냐는 말을 덧붙였다. 이력서에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력을 한 줄 쓰고 한 무역 회사의 제품 설명서 번역을 해봤다고 한 줄 쓰면 아무래도 남들보다 낫지 않겠냐고 좋은 기회를 주는 거라고 하셨다. 그리곤 명함을 내밀면서 회사 이름을 이력서에 써야 하겠지요? 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번역은 장당 3만원~5만원입니다. 10장이네요 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다 알아서 챙겨 줄 테니 2주안에 되겠어요? 라고 물었고 나는 해 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날 밤 집에서 제품 설명서 10장을 읽어 본 나는 경악했다. 기술 용어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고 단순 번역에 앞서 제품 자체를 먼저 공부해야 할 것 같았다. 그때 나는 학원에 주 2회 출근해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나머지 요일은 주로 도서관에서 지냈다. 졸업반의 취직 공부라는 명목 하에 나의 하루는 매일 바쁘게 돌아갔다. 경악스러운 제품 설명서를 손에 쥔 나는 주 2회를 제외한 나머지 요일을 몽땅 번역에 투자했다.

 

며칠 후부터는 그마저 모자랐고 거의 밤을 새우기에 이르렀다. 번역은 공부를 어마무시하게 해야 한다더니 정말이구나 싶었다. 사실 제품 번역은 영어 실력이 아닌 현장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나는 무식하게 무작정 공부해서 한 장 한 장을 번역으로 옮겼다. 마침내 2주가 지났고 나는 극심한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10장이면 용돈 벌이가 좀 되고 이만하면 좋은 경험도 되었으니 다 내 밑천이다 싶어 뿌듯해했다. 마침내 마지막 날 새벽 나는 번역물을 출력해 정성스레 봉투에 담고 야호!! 하고 소리쳤다.

 

학원 마지막 시간 강의를 마치고 나오니 원장 선생님 친구분이 와 계셨다. 나는 봉투를 건넸고 그분은 그 자리에서 제품 설명서를 훑어보셨다. 나중에 더 자세히 보겠지만 참 꼼꼼하게 잘 하셨네요 라고 이야기 해 주셨다. 나는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이제 수업은 다 마친 것 이지요? 원장이 마칠 시간에 맞춰서 오라고 하던데? 라고 했다. 네, 이제 마쳤어요. 저는 퇴근합니다. 나는 대답했다. 아니, 너무 수고했는데 그냥 가기도 그렇고 술 한잔 하러 가죠? 술이요? 내가 망설이자 실장 선생님이 나오셨다. 저도 같이 가요. 영어 선생님 불편하실 수도 있으니 저도 가요. 간단히 맥주 한잔만 하고 갑시다. 어때요? 나랑 제법 비슷한 연배의 여자 실장 선생님이 동행 하신다고 하니 나는 흔쾌히 응했다. 그렇게 나, 실장 선생님, 원장 선생님, 원장 선생님의 친구분 이렇게 넷이서 맥주집으로 향했다.

 

원장 선생님 친구분은 나에게 영어 선생님, 정말 수고했어. 한잔 받아요 하면서 술을 따라줬다. 그런데 수고했어 하면서 내 허벅지를 탁 치는 것이었다. 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만진 것도 아니고 그냥 탁 친 건데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참 순진하고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나는 지금이라면 당연히 주장했을 법 할 내 권리들도 제대로 말 못 하는 시절을 보냈다. 우리 사회는 그놈의 분위기를 참 중시했다. 분위기를 깨는 것은 눈치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혼자 불편하면 되지 굳이 별나게 할 말 다 해서 여러 명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참 비효율적인 처사라고 배웠다. 철저한 전체주의에 의해서 개인은 희생되어야 하는 시대 분위기가 있었다. 영어 선생님 드시고 싶은 걸로 시켜요. 뭐 좋아하세요? 메뉴판 좀 드려요. 아, 저는 그냥 과일을 먹겠습니다. 나는 허벅지를 내려다보며 혼란스러운 채로 엉겁결에 대답했다. 아니, 제일 비싼 걸 시켜야지. 수고했는데 안 그래요? 원장 선생님이 말했다.

 

수고했다고 맛있는 것 사는 자린데 과일이 뭐야? 제일 비싼 걸로 시켜요. 그런데 술 한잔으로 되나? 내일 점심에 이 멤버 그대로 모여서 삼계탕이라도 먹는 것 어때요? 원장 선생님이 친구 분을 부추겼다. 아, 삼계탕. 그래요, 삼계탕도 내가 사줄게요. 너무 수고했는데. 영어 선생님, 정말 고마워요. 정말 수고 많이 했어요. 오늘 많이 드시고 내일 삼계탕도 많이 드세요.

 

이쯤 되니 눈치가 차려졌다. 돈은 안주고 술 사주고 밥 사주는 건가? 바로 물어보면 될 것을 몇 분을 고민했다. 나는 순진한 평범한 대학생 이였으므로. 제가 번역 해 드린 것 때문에 술도 사주시고 내일 삼계탕도 사주신다는 건가요? 나는 운을 뗐다. 그런데 저는 2주일 동안 거의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했어요. 엄연한 노동의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으로 주셔야지요. 왜 밥을 사고 술을 사세요? 분위기는 그야말로 끝장이 났다.

 

원장 선생님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고 옆에서 실장 선생님이 거들었다. 영어 선생님이 전문 번역가는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분도 어렵게 회사 시작 하시는 건데 서로 좋게 좋게 합시다. 좋게 뭘요? 돈으로 주세요. 나는 큰소리로 이야기 했고 분위기는 더욱 더 끝장이 났다. 이 여세를 몰아서 그냥 다 파토내고 끝장내자는 생각이 퍼뜩 들었고 나는 벌떡 일어나서 이야기 했다. 돈으로 주세요. 무슨 도둑놈 심보야? 다 미친 거 아니에요? 사람을 썼으면 돈을 내야지. 그리고 그 돈 줄 능력이 안 되면 번역 의뢰를 안 해야죠.

 

세 사람은 입을 떡 벌리고 흥분하는 나를 쳐다만 봤다. 처음부터 돈은 못주고 술 한잔 살 테니까 좀 해달라고 했으면 전 안 했을 겁니다. 그리고 누가 내 아버지뻘 되는 당신이랑 개인적으로 만나 술 먹고 밥 먹고 싶어? 아주 미친 거 아냐? 사람 허벅지 탁탁 치지 마요. 아주 불결하니까. 이 변태 새끼야. 나는 말을 하면 할수록 너무 흥분이 되어 결국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다.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어 뛰쳐나와 울면서 택시를 탔다. 정말 나쁜 어른들인데 마음 한켠에 처음부터 금액을 확실하게 정하고 선 지급금이라도 받았어야 했나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는 위로 받고 보상 받아야 하는 입장인데 이상한 사회 덕분에 나는 피해자 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서 내가 잘못한 것은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했다. 지금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생각을 그때는 했다.

 

다음날 나는 원장 선생님께 그 친구분이 전화를 안 받는다며 대신이라도 꼭 돈을 받아달라고 말했다. 원장 선생님은 나보고 못됐다고 했다. 어린데 너무 돈을 밝히고 어떻게 그렇게 할 말을 다 하냐며 나중에 사회생활은 못 할 것 같다고 비아냥거렸다. 무엇보다 나 때문에 본인 체면이 말이 아니라며 오히려 내가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보아하니 애초에 우리 학원에 영어 선생님이 제품 번역을 해줄 수 있을 거다.

 

밥이나 한 끼 사라 이렇게 이야기 된 것 같았다. 나는 그날까지 일 한 학원비를 정산 받고 제품 번역에 대한 아르바이트비는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학원을 나왔다. 주위에서는 그냥 좋은 경험 한 셈 치라고 했다. 아무도 싸워야 한다고 말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 큰 스트레스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우리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그런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있는 것이라고 소리치고 다녔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세월만이 흘러갔다.

 

이차장, 이차장이 영어도 잘하는데 내 친구 좀 도와줘. 간단히 번역 몇 장만 하면 되는 모양이더라고. 개인 이메일 주소를 알려 드려야 하는 건가? 상무님 옆에 상무님 연배의 남자 분 한 분이 서 계셨다. 안녕하십니까. 그는 호탕하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나도 인사를 건넸다. 간단한 번역 몇 장이라니까 정말 해 드리고 싶은데 사실 저도 대학 때는 번역 아르바이트도 했어요.

 

그게 벌써 거의 20년 전이네요? 아이고, 그러십니까? 네, 그런데 저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기도 하고 이제는 더 이상 번역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희 회사 제품 설명서도 저희 부서 친구들이랑 저랑 열심히 몇 달에 걸쳐 일한 덕에 완성되었어요. 마무리 작업은 전문가에 의뢰 드려 손을 봤어요.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서 참 복잡 미묘하고 어렵답니다. 도움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사실 번역이 힘들지요.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단순 작업이 아니라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

 

정말요? 알아주시니 고맙네요.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가 한마디를 더 건넸다. 그런데 일을 맡기고 또 그 맡은 일을 해주는 관계가 서로 참 어렵지 않나요? 소위 말하는 갑과 을의 관계는 늘 어렵고 복잡한 것 같아요. 글쎄요. 나는 되받았다. 서로 존중하면 간단하답니다. 사용자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노동자는 그 대가를 받은 만큼 성실히 일을 해 주면 되는 것이지요.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때 문제가 되고 대가를 지불 받고도 성실히 일을 해주지 않으면 문제가 되긴 하겠죠? 그러고 보면 참 간단한 문제인데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사평

☞ 읽으며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 사회 초년생이 누구나 한번쯤 겪을 수 있을 법한 노동의 부조리함을 자신의 경험으로 잘 풀어서 이야기해줬습니다.

임욱영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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