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난 이후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돌봄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에게 필요한 돌봄은 현대사회 이전에 주로 개인 혹은 가족에 의해 제공되었지만, 인구구조 및 가족구조의 변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활성화 등 구조적 변화에 따라 그 제공 주체를 국가와 사회로 전환하는 것을 요구받고 있다.
돌봄에 대한 개인과 가족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양질의 사회서비스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과연 그 해법은 무엇일까. 10월 8일 한국노총에서는 노동시민사회진영이 함께 이를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국가가 기본적인 책임을, 국민돌봄기본권
당시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영남대 김보영 교수는 ‘국민돌봄기본권’을 법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사회서비스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정부가 복지확대를 위해 포용적 복지국가를 주창하고 있고, 사회서비스 부문에 있어서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니티 케어)이라는 선도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서비스는 기존의 복지사업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제공되고 있다는 부분을 지적했다. 기존의 서비스들을 그저 ‘묶음’ 형태로 보여줄 뿐, 수요자인 이용자 측면에서 사실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에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이 이 문제를 지적해 왔다.
따라서 국민돌봄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는 국민돌봄보장법(가칭) 제정이 필요한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을 규정하고, (기초)지자체의 역할 강화를 위해 돌봄 관련 재정을 통합해 활용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는 동시에 그 책임이 잘 이행되도록 강제하는 장치를 두는 것이 이 법의 핵심이다. 파편화된 돌봄서비스들이 통합적으로 당사자에게 제공될 수 있도록 함은 물론이고, 권리구제 절차까지 마련하여 이용자인 국민이 충분히 돌봄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발제자는 이를 위해서 각 서비스 유형별로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개혁이 필요하며, 지역사회 내 적정한 주거권 보장과 사회서비스 공공인프라 확대, 양질의 서비스 제공을 위한 처우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장기요양 재가급여 제공시간의 확대와 어린이집 교사 1명당 아동비율의 하향조정 등으로 필요한 기본 서비스량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돌봄기본권 보장의 구체적 책임 확대를 위해서 이번 정부가 다소 소홀히 추진했던 공공인프라 확대를 전략적으로 강하게 추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공적 사회서비스 기관 확대 위한 전략 필요
소위 공공 사회서비스 인프라를 확대하는 것은 겉으로는 대단히 쉬워 보일 수 있는 일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어렵다. 가령 예를 들어서 사회서비스 공적 공급의 효율화를 위해 시군구 단위로 1개의 대규모 공공사회서비스 복합시설을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가장 우선적으로 중앙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지자체가 예산을 마련해야 하며, 동시에 복합시설이 설치될 부지가 필요하다. 주로 공적기관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소유한 부지여야 하고, 사회서비스의 특성상 이용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곳에 입지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후 개별 지자체가 향후 10~20여년간 필요한 사회서비스의 종류와 양을 대략적으로 계산해 필요한 서비스 유형(아동긴급돌봄, 장기요양, 장애인활동보조 등)에 맞추어 건물을 지어야 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기획부터 설계, 시공 등 매우 지난한 과정이 포함된다. 이후 광역자치단체의 사회서비스원에 운영을 맡기고, 사회서비스원은 필요한 인력(돌봄을 전담하는 노동자부터 행정인력, 심지어 공급 경험을 갖고 있는 운영자를 포함)을 지자체 내에서 선발하고 회계기준에 맞게 운영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프라 설치가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도시의 기획에서부터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노동계나 시민사회진영에서 인프라 몇 개 더 설치하라는 주장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인데, 지자체 내 지구단위 정비사업이 추진될 때 필요한 사회서비스 기관들을 기획 내에 포함시키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재개발을 통해 대규모 공공주택단지가 만들어질 때 기존의 어린이집뿐만 아니라 공공요양복합시설(재가 및 입소를 포함),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를 포괄하는 장애인종합복지관, 지역아동센터 등 필요한 여러 서비스 기관들이 포괄될 수 있도록 사업 초창기 구상부터 ‘돌봄’을 계획의 중요한 부분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에 그냥 맡겨두는 방식으로 해서는 곤란하다. 중앙정부와 광역 및 기초지자체까지 공공 사회서비스 인프라 설치를 위해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움직여야 가능성이 높아진다. 중앙정부는 예산을 확보해주고 동시에 지자체가 보다 적은 재정부담을 가지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와 함께 지자체는 설치된 사회서비스원이 이 공공인프라를 직접 운영할 수 있도록 하면서 자체적인 사례관리기능을 혁신적으로 제고해야 할 것이다.
지자체의 역할 강화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자체의 역할 강화에 대해서는 다수가 동의하지만, 과연 기초지자체가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자체마다 역량 차이가 있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 돌봄서비스에 대한 기본개념조차 조직체계 내에서 충분하게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일선 지자체들이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꽤 중요한데, 노동시민사회진영이 마련하고자 하는 평등한 돌봄이라는 전제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마다 서비스 질의 간극이 커지게 되면 어느 도시,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서 제공 받는 서비스 질이 현격히 차이가 나게 되는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지자체가 보다 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 사회서비스기관 전반의 질을 견인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조치 중 하나는 관리감독권한의 강화이다. (개인)민간 사회서비스기관의 부정행위(혹은 추후에 일어날 공공기관의 그것까지)를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동시에 사법적 조치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더불어 지금처럼 서비스 기관이 난립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회서비스 기관 설립 신고제를 허가제로 변경하고, 운영주체를 개인이 아닌 법인 단위로 할 수 있도록 변경하는 방안이 적극 고려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사회 내 지자체가 평등한 돌봄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풀뿌리 운동단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행정기관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지 감시하고 목소리를 내는 지역의 풀뿌리조직이 살아있어야 이 모든 그림이 가능하다.
한국노총과 노동시민사회진영이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기에 보다 큰 관심을 가져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