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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서도 일할 수밖에 없는 사회

이동철의 상담노트

등록일 2021년10월07일 10시22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아버지는 조경일을 하신다. 조경회사에 일용직으로 고용돼 산업단지나 신도시 건설현장에서 호수를 파고 나무와 잔디를 심어 주민들의 쉼터를 만든다. 환갑을 훌쩍 넘어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여름 뙤약볕에서 땀 흘리며 돌을 옮기고 나무를 심는 일은 고될 것이다. 그래도 지난해 고향에 내려가 뵌 아버지는 당신이 직접 조경을 맡은 어느 특급호텔 정원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정원을 소개하며 으쓱해 하셨다. 아버지가 자신의 일에 이렇게 보람을 느끼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고령노동자들이 아버지처럼 즐겁게 일하지는 못한다. 상담을 의뢰하는 고령노동자 다수가 최저임금을 받고, 남들이 기피하는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한다. 수개월 단위로 기간제 계약을 반복하는 등 불안정한 노동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들을 상담하다 보면 자신의 노동에 대한 존중감이 매우 낮다. 돈벌이를 해야 사람 구실을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경제 현실에서 자신의 노동이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는 자괴감을 토로한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그러나 이런 현실이 오롯이 이들의 책임일까. 노동시장의 특성을 반영하면 만 55세 이상을, 통계 기준으로는 만 65세 이상을 고령자라 부른다. 지금 대다수 고령자들은 한국전쟁 이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다. 대부분은 배고픈 유년기를 보내고, 청년기에는 경제 발전을 최우선으로 전근대적 노동환경 속에서 먹고 살기 위해 일했다.

장년기에 들어 먹고 살 만해지자 바로 IMF 외환위기로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다. 직장을 잃고, 장사를 접고, 재산 가치가 폭락해 다시금 경제위기를 맞았다. 불행하게도 죽도록 일하고 맞이한 노년의 경제위기와 자녀들의 고용위기가 겹쳤다. 일상화한 양극화와 저성장의 경제 현실 속에서 일할 기회조차 찾기 힘든 자녀들은 부모세대를 부양하기는커녕 스스로 살아가기도 벅찼다. 이처럼 고령 노동자들은 법적으로 은퇴 시점인 60세가 넘어서도 다시 일터로 나가야 하는 현실에 맞닥뜨려 있다.

통계청의 ‘2021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의 약 47%가 공적연금을 받지 못한다. 때문에 고령자의 약 34% 이상은 일터로 다시 나가 일을 해야 한다. 고령자의 약 59%가 은퇴 연령 이후에도 일터로 나가는 이유를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이렇듯 은퇴시점을 넘어서도 계속해서 노동시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경제 현실, 그리고 기술발전으로 노동집약적 산업의 일자리가 감소해 이들의 노동가치가 저평가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맞물려 ‘고령노동자 일자리=저임금, 장시간, 위험한 허드렛일’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경제상황에서 정년연장은 불가피하다. 대법원은 이미 육체노동의 가능 연한을 기존 60세에서 65세로 변경하는 판례를 내놨다, 국민연금의 수급개시 연령은 일반적으로 만 65세다. 법으로 보장된 정년이 만 60세이기 때문에 은퇴 후 소득의 공백이 발생한다. 거기에 더해 국민연금이 기존의 소득을 대체하는 비율은 표면적으로 약 40%에 가깝지만 일반적으로 이보다 훨씬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대한민국의 66세 이상 은퇴연령자의 상대적 빈곤율이 가장 높다. 실제 65세 이상 고령 노동자들이 기대하는 앞으로의 삶의 시간도 OECD 국가 평균보다 높다. 가족이 자신들을 부양해 주기 어렵기에 불가피하게 일을 해 남은 생을 살아 가야 한다.

여기에 더해 고령노동자들을 배제하는 현행 노동법상 보호 조치를 손봐야 한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라 만 55세 이상 고령 노동자는 비정규직으로 기간 제한 없이 쓸 수 있다 보니 기간제 계약을 반복한다. 근속이 쌓여도 최저임금을 넘지 못한다. 최대 1년 단위 비정규직 인생인데도 잘려도 실업급여도 못 받는다. 고용보험법에 따라 만 65세가 넘어 입사한 노동자는 비자발적으로 이직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령노동자가 주로 일하는 환경미화·경비노동, 가사노동 및 돌봄·요양 서비스 등의 직종에서 만 65세는 많은 나이가 아니다. 이들에게도 비자발적으로 이직할 경우 실업급여와 같은 사회적 안전망이 보장돼야 한다.

고령노동자들의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고령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를 보면 저임금에 단기간의 불안정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화단에 꽃을 심고, 건널목에서 길 건너는 행인을 보조하고, 지하철 혼잡시 승객에게 길을 안내하는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계절적·단기적 공공일자리가 대표적이다.

물론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으로 인한 경제위기 속 취약계층에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소득원이다. 그러나 상담을 하다 보면 이들은 하나 같이 보람을 느끼기 어렵다 말한다. 정부 주도의 공공일자리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앞선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고령노동자들은 일터로 나가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일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서”라고 답하며 경제적 이유 만큼이나 자아실현 욕구를 중시했다.

이러한 고령노동자의 욕구를 존중해 단기적으로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로 이들을 몰아넣기보다는 스스로 직업탐색을 유도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직업훈련 등을 통해 구직수요를 발굴하고 직무역량을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코로나 핑계로 문 닫은 동네 사회복지관이나 평생학습 시설의 프로그램부터 빨리 열어 고령노동자들과 마주해야 한다.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leeseyha@naver.com)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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