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욱영 한국노총 정책1본부 국장
합법적인 착복의 세계
콜센터 상담원, 은행 경비원, 청소 노동자, 파견직 사무보조원, 발전소 노동자, 자동차 부품 업체 노동자... 한국일보는 2021년 지면을 통해 자신이 일하는 원청과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아웃소싱 업체라고 불리는 용역·파견업체에 소속된 ‘간접고용’ 노동자 100명을 인터뷰한 후, 이들이 착취당하는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추적한 기획기사를 보도했다.
비정규직 문제 중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중간착취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한 내용은 큰 관심을 받았고, 기사에 담지 못했던 인터뷰 내용과 기자들의 ‘입법 로비’ 과정을 담아 <중간착취의 지옥도>라는 책을 펴냈다.
도급계약서에 적힌 인건비와 실제 노동자가 받는 임금의 차이,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순수한 의문이 이 글의 시작이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도급계약서에 적힌 인건비를 노동자에게 다 주지 않는 것은 불법이거나, 법망을 피하는 일이 아니다.
용역업체가 최저임금만 위반하지 않으면 근로계약을 어떻게 체결했는지에 따라 임금이 결정된다. 얼마를 떼어먹든 최저임금만 지키면 그 모든 중간착취가 합법적이라는 이야기이며, 도급계약서에 “용역업체가 노무비를 전용해서는 안된다”는 조건 따위는 없다.
떼인 돈이 흐르는 곳
최저임금이 매해 오른다 해도 이들의 월급은 100만 원대에 묶여 있다. 경력 1년과 10년 차가 별반 다른 대우를 받지 않는 것도 이들 노동자군의 특징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본급이 오르면 그 외의 급여 항목을 줄이는 일이 반복된다. ‘수당 줬다 빼앗기’는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기본급이 정해지는 용역·파견 노동자 대부분이 경험했다.
용역업체는 상여금이나 휴가비를 착복하고 안전장비 피복구매비를 저렴한 제품으로 변경해 차익을 본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명목으로 착취한 돈은 어디로 가는 걸까. 하청업체 사장들이 중간착취를 통해 얼마나 많은 소득을 올리는지 알아본 기자들은 총 6개의 업체 대표들의 ‘억’소리 나는 연소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대기업에서 주요 임원직을 맡았던 이들이 은퇴 후 대기업 원청으로부터 일을 받는 하청업체 사장을 맡게 되면서, 원청과의 끈끈한 관계 속에서 서로의 주머니를 채우는데, 피해를 입는 건 노동자들뿐이다.
결국 기자들은 합법적인 착취의 사슬을 끊을 법과 제도를 바꿔보고자 국회와 정부를 찾았다. 그러나 사용자의 논리에 취한 정부가 당장 중간착취를 허용하는 낡은 법안들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중간착취 문제가 바로 잡힐 때까지 자주 말하고 자주 쓸 필요가 있다고, 그를 통해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