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우리나라는 이제 그 속도를 조금씩 높여가고 있다. 접종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순차적으로 진행한 인구집단은 감염병에 가장 취약한 계층인 75세 이상의 노인과 의료진, 경찰, 승무원 등 다양한 인구집단을 직접적으로 대면해야 하는 필수인력들이다. 향후 그 대상층이 대다수의 경제활동인구로 점차 넓혀질 텐데, 이를 앞두고 백신휴가에 대한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이제 이에 대한 내용을 알아보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백신휴가를 넘어서 상병수당을 도입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또 다시 ‘권고’... 선의에 기대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현재 코로나19 백신은 실제 접종시 피접종자의 이상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접종 후 해당 장소에서 수십분간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백신으로 인한 면역체계 반응 등으로 약간의 어지럼증이나 동통 등 일시적 증상이나 알러지 반응이 수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접종 직후 하루 이틀 정도는 휴식을 취하며, 몸상태를 지켜볼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다. 여기서 백신휴가에 대한 언급이 시작되었다. 상병수당과 법정유급병가제도가 전면 도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백신휴가라도 제공하여, 백신접종시 필요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면서 백신휴가 도입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취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결과였다. 정부는 백신휴가를 사업장에서 자체적으로 제공하도록 ‘권고’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매우 큰 실수이다. 최소한 백신접종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목표를 잡았다면, 일시적으로나마 행정명령 등 공공이 취할 수 있는 강제적 권한을 발휘하여 백신을 접종한 노동자는 1~3일 정도 사업주가 제공하는 유급병가제도를 실시하라고 했어야 한다.
최우선 접종순위로 선정된 요양병원 및 요양시설 내 65세 미만 입원자들이나 최근 접종이 시작된 75세 이상 노인이나 사회복지서비스 이용자 및 입소자의 경우에는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다. 다만 그곳에서 일하는 종사자들의 경우 백신접종 직후 당장 일터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큰 문제다.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진 코로나19 백신이라는 특징, 언론을 통해 조금씩 보도되는 이상 반응 사례로 인해 국민들이 백신접종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휴식마저 취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정부 스스로 세운 접종계획에도 차질을 만들 수밖에 없다. 3분기부터 시작되는 만성질환자와 군인, 경찰관, 소방관 등 사회기반시설 종사자들과 일반 성인들의 백신접종에서도 이와 같이 선의에 기반한 권고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 ‘아프면 쉴 권리’를 위한 사회적 백신인 ‘상병수당’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이 있었다면 불필요했던 논란
만약 법정유급병가와 상병수당제도가 일찍 도입되었더라면, 혹은 최소한 작년 3월 제도 도입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우호적이었을 때 정부가 하반기 시범사업부터 우선 시행했다면, 지금의 백신접종에 대한 논란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특히 법정유급병가의 경우가 그러하다. 대다수의 국가들은 상병수당 개시 이전 대기기간(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15일)동안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유급병가를 보장하도록 되어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는 없어 불필요한 논란이 나오게 된 것이다. 즉, 어떤 형태의 사업장이든 법정유급병가를 최소한 며칠 이상 제공할 수 있도록 법제화 되어 있었다면, 백신휴가라는 말 자체가 필요 없는 개념이었다.
여기에는 정부 책임도 있지만, 더 큰 책임은 국회에 있다. 법정유급병가를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최소한 국회, 그 안에서도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을 위해 여야간 집중적인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었다. 하지만 지난 국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환경노동위원회는 법정유급병가제도에 대해 크게 고민한 적이 없다.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다른 상임위와 마찬가지로 환노위도 노동관련 입법을 지나치게 정치적인 쟁점만 다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ILO핵심협약과 관련된 입법사항들이 첨예한 쟁점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십분 이해하나, 그렇다고 다른 민생과 관련된 법안들, 그 중에서도 특히 당장 사회적 요구도가 높은 법정유급병가제도와 같은 부분을 논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직무유기다. 정부 내에서 의견이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여당은 오히려 이에 대해 가속페달을 밟는 취지에서 입법 논의에 적극 나섰어야 한다. 야당 또한 실제 국민들의 편익을 위해서라도 이 부분을 신경써서 입법하자고 주장했어야 한다. 결국 이는 여야 모두에 책임이 있다.
복지위 차원에서는 법안 발의 뿐만 아니라 토론회도 진행하고, 심지어 한국노총 등 노동시민사회진영과 함께 의견을 교환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는 반면에, 환경노동위원회는 법안 발의만 몇 개 진행한 것이 전부이다. 정부와 국회 모두가 책임이 있는 상황이라면 답은 정해져 있다. 지금이라도 빠르게 미비한 점들을 보완하려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백신 접종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감염병 출현에도 대비해야 하는게 한국사회가 당면한 과제이다. 당장 미비한 법부터 정비하는 동시에 빠른 시기 내에 제도가 전면 시행 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불필요한 논란이 반복되는 과오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국회의 전향적인 태도와 행동이 필요하다.
정부, 본격적인 논의 이제야 시작해
현재 전면시행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부에서 이제야 상병수당 및 법정유급병가 도입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4월 8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수행하는 ‘한국형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시범사업 운영방안 연구’에 대한 총괄자문회의가 시작되었고, 15일 복지부 차원의 ‘상병수당 제도기획자문위원회’가 출범했다. 올해 연구용역이 끝나야 겨우 내년에 시범사업 추진이 될까말까한 상황이 되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을 때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사실 상병수당 도입을 위해서 검토해야 하는 변수들은 매우 다양하다. 당장 △누구를 대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의 급여를 △얼마 동안의 기간 내에 지급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하고 △어떤 상병부터 적용할 것인지 △대기기간을 며칠 동안 할 것인지 △신뢰받는 의료적 인증체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이를 위해 필요한 재정의 규모와 가능한 재원 마련 방안과 △민영보험과 중복되는 부분은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에 맞추어 어느 범위의 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할지 등 다양한 부분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결국 법정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은 도입될 것이다. 지금은 감염병 위험을 최소화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정치권의 빠른 판단과 결단력이 필요한 때이다. 백신 수급과 접종에 대한 계획을 차질 없이 진행 해야 되는 것 만큼이나, 사회적 백신인 ‘유급병가+상병수당 패키지’도 차질 없이 빠르게 도입되어야 한다. 백신휴가와 같은 불필요한 논란은 걷어내고, 정면으로 우리 사회의 ‘아프면 쉴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노총이 노동시민사회진영 전체와 대오를 이루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