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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미술] 가족을 위해 노동하는 여인

박희숙 <교과서 속 구석구석 세계명화> 저자, 화가

등록일 2021년03월04일 10시45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요즘 집 안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을 보장받기 때문에 원하지 않아도 집콕을 해야만 한다. 집콕을 하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아니, 보고 싶지 않았던 살림이다. 청소, 요리 등등 그런 사소한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실력도 없는 요리를 해야 하고 요리 한 후에는 설거지까지 해야 한다. 더군다나 삼시 세끼다. 돌아서면 밥 차리다 하루가 끝나는 것이다.

 

평소 사회적으로 활동했을 때에는 아침은 간단히 우유나 커피, 샌드위치 정도, 점심은 구내식당이나 단골식당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대충 배달을 시켜 먹던가 했다. 집안에서 밥을 해 먹을 시간이 주말에 특별식 정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배달 음식이나 인스턴트 음식도 코로나19 전염병이 1년이나 지속되면서 많이 먹었더니 질려 먹지를 못하겠다.

 

집콕 생활을 오랫동안 하다보니 어머니의 노고가 생각이 난다. 어느 시대나 어머니는 가정생활을 하면서 청소, 요리 등등 가족들을 위한 행동 하나하나 불평하나 없이 모든 것을 하셨다. 가족들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당신은 생각하지 않고 많은 노력과 희생을 하셨던 것이다.

 

집안 일도 간단치 않지만 과거에는 집안에서 필요한 것들을 어머니가 스스로 다 구해야만 했다. 특히 가장 큰 일은 물을 구하는 것이다. 지금은 상수도 시설이 잘 되어 있어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지만 과거에는 그러지 못했다. 우리나라도 60년대 까지만 해도 가정에서 필요한 물을 구해야만 했다.

 

도시의 부르주아 가정은 물을 사 먹었지만 가난한 가정은 물을 우물가에서 구해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나라나 서양이나 과거에 가정에서 물 구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우물로 물을 길어가야 하는 일은 날마다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였다. 마을 규모가 큰 곳이나 도시에는 급수장 시설이 있지만 지방 소도시는 급수장 시설이 없어 여인들이 우물가에서 물을 길어 날랐다.

 

물을 구하는 여인을 그린 작품이 폴 시냐크의 <우물가의 여인>이다.

 


그림1 <우물가의 여인들> 1892년, 캔버스에 유채, 195×131,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화면 왼쪽 푸른 바다 가운데 등대가 서 있고 바다에는 배가 떠 있다. 화면 중앙 해안가에 있는 우물에서 오렌지색 윗옷을 입은 여인이 도르레를 당겨 흰색의 물항아리를 들어 올리고 있고 밀짚 모자를 쓴 노란색 웃옷을 여인이 한 손에 항아리를 들고 물을 긷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 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보고 있는 것은 이야기 중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당시 우물가나 빨래터는 여인들의 수다 떨기 좋은 장소로 자녀들의 이야기, 혹은 마을의 스캔들을 그곳에서 만나 이야기를 했었다. 여인들끼리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등대가 있는 것은 우물이 있는 장소가 해안가라는 것을 나타낸다. 즉 마을에 있는 우물이 말라 해안가에 있는 우물까지 물을 구하러 왔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인들 위에 물 항아리를 양손에 들고 있는 여인이 길을 따라 걷고 있다. 우물가에 있는 여인이 쓴 밀짚모자는 한 여름이라는 것을 나타내지만 긴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중산층 여인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길을 따라 걷고 있는 반 팔의 여인은 하류층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19세기 파리 중산층 여인들은 여름이라도 몸이 조금이라도 들어나는 옷을 입지 못했다. 하지만 우물가의 여인들의 옷차림은 가뭄으로 물을 구해야 했기 때문에 중산층의 여인이라도 물을 길러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나타낸다.

 

폴 시냐크<1863~1935>는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야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수없는 데생과 습작들을 통해 이 작품을 완성했다. 여인들이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는 장소는 생트로페라는 지중해 작은 항구 마을이다. 시냐크는 생트로페 항구 마을의 모든 것을 마음에 들어했으며 특히 그곳에 풍경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 작품을 제작했다.

 

이 작품의 제작 방식은 점묘법(점묘법은 신인상주의 화가들이 사용했던 방식으로 화면을 색채나 점으로 채워 멀리서 보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방식이다. 우리가 신체검사 때 색맹 검사하는 방식이 점묘법을 따라 한 것이다.)으로 이는 쇠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가정에서 물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물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움직이고 소모하는 모든 것들에는 돈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곤곤한 살림살이에 돈이 되는 일은 다 해야 한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라면 누구든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만 겨우 입에 풀칠을 했다.

 

가난한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노동하는 사람을 그린 작품이 헨리 허버트 라 생의 <자두를 줍는 사람들>이다.

 


그림2 <자두를 줍는 사람들> 1898년, 캔버스에 유채, 110×92, 영국 맨체스터 시립미술관 소장

 

우거진 자두 나무 아래 흰색의 옷을 입은 여인이 왼손에 바구니를 들고 오른손으로 풀밭에 떨어진 자두를 줍고 있다. 여인의 옆에는 자두가 가득 채워진 바구니가 세 개가 놓여 있다. 가득 채워진 자두 바구니는 여인의 힘든 노동을 나타낸다. 왼손에 들고 있는 바구니가 기울어져 있는 것은 자두를 빨리 담기 위함을 나타내며 여인이 자두 담는 일의 숙련도를 암시한다.

 

스커트 때문에 불편하지만 한 쪽 무릎을 세우고 있는 것은 자두를 줍기 위해 다음 장소로 옮기기 위함을 암시한다. 자두를 향한 시선은 자두를 줍기 위한 집중력을 보여주며 붉어진 뺨은 노동의 힘듬을 암시한다. 장수리에 묶은 어미와 옷차림은 아가씨라는 것을 나타낸다.

 

옆에 있는 어린 남자는 여인의 남동생을 나타내며 바구니를 잡고 있는 손과 자두를 줍고 있는 손은 자두를 줍기에 미숙한 행동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헴리 허버트 라 생<1859~1929>은 자두를 빠르게 줍고 있는 여인을 통해 노동자 계층의 고난과 궁핍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가 평소 즐겨 그렸던 소재는 시골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라 생은 1898년 영국 서식스 지장의 그레프엄에 정착해 농작물을 수확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연작을 그렸는데 이 작품은 그 연작 중에 하나다.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집콕을 할 수 있는 것도 가족의 희생과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핸드폰만 들어다 보지 말고 집안일을 조금만 도와 주는 것도 가족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다.

박희숙(화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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