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 훈(서울시 감정노동센터 소장)
기술의 발전은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고용 불안의 증가, 플랫폼 노동의 탄생 등도 기술발전과 관련이 크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생계가 위협받기도 하고 생활이 편리해지기도 한다. 또한 기술발전은 새로운 유형의 사업도 만든다. 대형 제조업과 같은 생산공장 없이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는 글로벌 IT 기업도 그중 하나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① 새로운 유형의 사업에 기존의 과세 체계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가 ② 단순한 자동화 단계를 넘어 로봇이 노동력을 대체할 경우 그 로봇에게 특정한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가 ③ 환경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세금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는가 ④ 새로운 조세제도(본 글에서는 ‘미래 세제’라고 표현하고 있음)는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등이 그것이다. 앞으로 3회에 걸쳐 미래 세제에 관한 1) EU/OECD, 2) 영국, 3) 프랑스의 최근 동향을 소개하고 이와 관련한 시사점, 노동조합의 역할 등을 살펴볼 예정이다.
△ 이미지 = 클립아트코리아
디지털세, 전면적 도입은 어려우나 도입 가능성 점차 커져
OECD는 2013년 디지털세와 관련하여 OECD BEPS 프로젝트를 공식 출범하였고, 2015년 11월에는 BEPS 대응을 위한 15개의 세부 과제(Action Plan)를 확정하였다. OECD는 15개 과제 중 첫 과제를 디지털 경제로 선정하며 중요성과 기본 취지에 대해 합의하였다. ‘OECD/G20 IF’는 2020년 말까지 다국적기업의 세원잠식을 방지하는 방법과 새로운 과세권 배분원칙을 마련하기로 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최종방안 합의를 2021년 중반으로 공식 연장한 상태이다.
반면 EU는 회원국 간의 입장차로 인해 디지털세에 대한 합의를 내리지 못했다. 합법적 조세회피가 가능한 제도를 제공하여 글로벌 IT기업을 유치해 온 아일랜드는 투자 매력이 감소할 것을 우려하여 디지털세를 반대하였으며 스웨덴과 덴마크도 이에 동참하였다. EU 차원의 합의가 지연되자 영국,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개별적으로 디지털 서비스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몇몇 국가의 도입과 추진에도 불구하고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대상, 범위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존재한다. 최근 동향을 볼 때, 디지털세가 전면적으로 도입되기는 어려우나 당면 과제를 해결해가며 도입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전망할 수 있다.
로봇에 대한 전망·개념 격차와 로봇세에 대한 국가별 이해관계 차이로 도입은 시기상조
EU와 OECD에서는 전반적으로 로봇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못한 편이다. 로봇을 생산성 향상의 수단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노동 주체로 볼 것인지에 대하여 사회 전반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전문가마다 로봇의 미래 발전 정도(수준)에 대해 다양한 예측을 하는 현 시점에서 로봇세를 도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EU는 로봇에게 ‘특수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 전자인간(electronic persons with specific rights and obligations)’이라는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승인을 하였으나 로봇세가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높기 때문에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안드루스 안시프(Andrus Ansip) EU 집행위원은 로봇세 도입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로봇세 도입이 유럽의 혁신과 자동화 기술의 도입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EU 차원의 로봇세 도입이 시기상조임을 주장하였다.
OECD는 2017년 ‘OECD 포럼’에서 로봇세에 대한 논의를 한 바 있다. 스위스 세법 교수인 사비에르 오베르손(Xavier Oberson)은 로봇에 인격을 부여해서 로봇의 노동으로 발생한 소득에 직접적으로 과세하는 방안을 제안하였다. 그는 기술발전과 함께 로봇의 납세 능력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로봇을 단순히 생산성 향상을 위한 설비로 보지 않고 과세를 위한 대상으로서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의 대통령 위원회에서는 ‘로봇이 비숙련 노동을 대체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득 양극화 심화와 지능형 로봇이 현장에서 유발하는 위험에 관하여 연방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로봇세를 바로 도입하는 데에는 특별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EU의 적극적 도입에 반해 미국·중국·인도의 소극적 태도로 탄소세 쟁점 지속
EU와 OECD의 탄소세에 대한 논의는 로봇세나 디지털세보다 오래되었고 구체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환경보호 의식이 높았던 북유럽국가들을 중심으로 1991년 12월 유럽 공동체에서 최초로 ‘탄소세’를 합의한 바도 있다.
탄소세는 기업에게 이산화탄소 배출 비용을 부담하게 하여 화석연료 소비를 억제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20년 6월을 기준으로 탄소세 또는 이와 유사한 개념의 세제를 도입하고 있는 곳은 40개국, 20개의 도시가 있다.
EU는 ‘EU ETS’라는 EU 자체의 독자적인 온실가스 감축 거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고, 이는 교토의정서에 의해 제시된 온실가스 의무감축량(8%) 달성을 목표로 한다.
EU는 교토의정서 비준 이후 2002년 10월 유럽 의회와 유럽 이사회의 승인을 거치며 2003년 10월 배출권거래제 시행의 바탕이 되는 지침서를 채택하였다. 그리고 2005년 1월부터 공식적으로 EU ETS를 시작하였다. EU ETS에 참여하고 있는 31개 국가 중에서 탄소세를 병행하는 나라는 북유럽 4개국(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과 영국, 아일랜드 등 총 6개국이다.
주요 국가들이 탄소세 도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중국, 인도 등 손꼽히는 탄소배출 국가들이 탄소세 도입에 소극적인 현상도 주목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로봇세와 디지털세는 생산수단 또는 사업 양태에 관한 세제이지만, 탄소세는 환경과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인류의 생존과 연결되는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합의가 더욱 절실하다. 에너지 생산(소비)기업과 에너지 소비자 양측의 부담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가 탄소세 도입과 관련한 문제 해결의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미래 세제에 대한 노동조합의 선제적 대응과 전략 수립이 필요한 시기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미래 세제 또한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조세제도에 따라 일자리의 양태, 이윤의 분배, 노동자의 삶의 질 등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미래 세제 도입과 관련하여 노동자와 노사관계에 필요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기술발전과 로봇을 통한 고도의 자동화가 가져올 노동력 대체, 그리고 새로운 산업 영역의 등장에 따른 이윤의 재분배 문제에 관해서도 충분한 검토와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기술발전과 관련한 일자리의 손실에만 초점을 두기보다는 기술발전으로 인해 생기게 될 새로운 일자리의 특성과 문제점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 급증하는 특수고용 형태나 플랫폼 노동이 제도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머무는 문제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미래 세제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노동조합이 미래 세제 도입과 적용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마련된 재원을 어떻게 활용하고 사회에 분배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도록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