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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제노동기준에 비추어 본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 평가

박귀천(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록일 2020년11월18일 13시34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지금은 우리가 ILO 정신에 더욱 주목해야 하는 때

 

1919년 1차 세계대전 직후 ILO가 만들어졌고, 2차 세계대전이 극에 달하던 1944년 ILO 총회에서 필라델피아 선언이 채택된 이후 ILO는 상설기구가 되었다. 이는 세계대전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더욱 비참해진 노동자들의 인권을 도외시해서는 인류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자본주의 체제를 지켜낼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새로운 길의 모색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개인의 일상생활부터 경제·산업·사회·문화를 넘어 국제관계까지 모든 분야에서 뉴노멀(New Normal)이 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ILO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라고 평가하면서 특히 저임금노동자들이 가장 심각하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람들은 현재 상황을 3차 세계대전에 준하는 상황으로 비교하기도 한다. 이러한 작금의 현실은 과거 1, 2차 세계대전 직후 ILO를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노동인권의 가치와 이념이 특별히 재조명되고 주목되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ILO 기본협약 비준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이고 2019년 ILO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기본협약을 비준하고자 계획했지만 아직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노조법 개정은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차원에서 논의되어 왔고, 결정적 계기는 한-EU FTA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한-EU FTA라는 대외적 상황이 노조법 주요 내용에 대한 개정 논의의 직접적 계기가 되긴 했지만 노동자들의 단결활동을 둘러싼 국내 노동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노동현장에서의 지속적인 요구, 노조할 권리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법 개정 필요성, 관련 판례의 변화 등으로 인해 노조법 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ILO 가입을 알리는 1991년 한국노총 기관지 

 

국제노동기준에 비추어 본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

 

21대 국회가 시작되자 정부는 2020. 6. 30. 노조법 개정안, 공무원노조법 개정안 및 교원노조법 개정안을, 7. 14. 기본협약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 개정안 중 몇 가지 주요 내용 중심으로 지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ILO는 해고 및 실업 상태에 있는 근로자의 조합원 자격을 금지하고 있는 규정을 폐지할 것을 권고한 바 있고, 해외 국가들의 입법례를 보더라도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제한하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현행 노조법 제2조 제4호는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노조로 보지 아니한다고 하면서 그 단서에서는 해고된 근로자는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한 경우,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로 보도록 규정하고 있어 마치 해고자는 일정 시기까지만 근로자로 인정하는 것 같이 인식되게 하고 있다. 개정안에서 노조법 제2조 제4호 라목 단서를 삭제하는 것은 일응 타당한 개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노조법 제2조 제4호에서 이미 노동조합 가입과 활동 주체는 근로자임을 명시하고 있는데 굳이 제2조 제4호 라목을 남겨두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고, 단서만 삭제하는 개정안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

 

둘째, 개정안은 노조의 임원 자격을 규약으로 자유롭게 정하도록 하되, 기업별 노조의 임원 및 대의원 자격은 그 사업 또는 사업장에 종사하는 조합원 중에서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ILO 협약 제98호 제2조 제1호는 “근로자단체 및 사용자단체는 그 설립, 운영 및 관리에 있어서 상호 간 또는 상대의 대리인이나 구성원의 모든 간섭행위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노조간부의 자격조건에 대한 결정은 노조 규약의 재량에 맡겨야 할 사항이며, 당국은 간섭을 삼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ILO는 여러 차례 우리 정부에게 비조합원의 노조 임원 자격을 부정하는 현행 노조법 제23조 제1항의 폐지를 권고했다. 따라서 개정안은 ILO 기준에 부합되지 못한다.

 

셋째, 개정안은 현행법상 단체협약 유효기간 2년을 3년으로 연장하도록 하고 있다. ILO는 매우 장기간의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설정하는 것은 근로자의 이익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몇 년의 유효기간이 매우 장기간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고 있다. 장기간에 걸쳐 변화가 별로 없는 근로조건에 관해서 유효기간을 3년으로 하는 것이 국제기준 등에 비추어 볼 때 이례적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교섭창구단일화 제도 하에서 3년의 유효기간을 인정할 경우, 소수노조가 너무 오랫동안 단체교섭에서 사실상 배제될 수 있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넷째, 개정안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에 대해서는 ‘그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형태로 쟁의행위를 행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에 대해서는 점거형태의 쟁의행위는 전혀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문제가 있다. 대법원 판례는 사업장 시설의 부분적·병존적인 점거로서 사용자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직장점거 형태의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문구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

 

한편, 특고종사자의 노동기본권 보장과 노동조합 설립신고제도에 대한 개선 내용에 대한 내용이 개정안에 담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다. ILO는 2012년 우리나라 화물차 기사 등 자영업자들이 결사의 자유를 누리도록 하고 노조의 권리를 행사하도록 보장하기 위해 당사자들과 협의할 것을 권고한바 있다. 2020년 6월 30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EU는 플랫폼 노동자와 같은 자영업자도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논의에 착수했다. ILO는 노·사 단체의 설립에 대해 사전허가를 받도록 하는 것은 결사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노조 설립신고제도와 설립신고 반려제도 등을 통해 사실상 노조 허가주의처럼 운영한 측면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노조 설립신고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들지만 이 제도를 계속 유지시킨다면 반려제도를 폐지하고 출생신고나 혼인신고 같이 운영하여 신고주의 본연의 의미를 회복해야 한다.

 

ILO 가입 30주년, 기본협약 비준과 변화된 노조법을 바라며

 

1991년에 우리나라가 ILO에 가입했지만, ILO 기본협약 비준은 30년 동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주 제네바 대한민국 대표부 홈페이지에서는 “한국은 책임 있는 회원국으로서 ILO 협약·권고의 채택, 예산 및 주요사업의 결정 등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 내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2021년은 우리나라가 ILO에 가입한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2021년에는 ILO의 ‘책임 있는 회원국’에 어울리는 기본협약 비준과 변화된 노조법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박귀천(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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