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전태일
전태일은 1970년 11월 12일 시위 하루 전날 집을 나온다. 11월 13일 1시가 가까워지자 시위 정보를 미리 입수한 평화시장 회사 측 경비원들과 경찰, 형사들이 통제에 들어갔고 평화시장 국민은행 앞길은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건물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료들 앞에 전태일이 나타났다. <근로기준법> 책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갑자기 전태일의 옷에 불길이 치솟았다. 온몸에 불이 붙은 채로 전태일은 뛰기 시작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구호를 외치다 쓰러졌다.
당시 서울 평화시장 피복제조업체의 노동조건은 열악하다 못해 살인적이었다. 근무 시간이 14시간이었으며 휴일은 한 달에 이틀뿐이었고, 피복제조 노동자 절반이 10대 초중반의 어린 소녀들이었다.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고자 한 그의 삶은 한 점 불꽃으로 산화하였다.
그로부터 50년, 양극화·불평등의 심화
코로나19의 대유행은 사회적 재난으로 변이하며 이 사회의 취약한 계층부터 무너뜨리고 있다. 경제위기의 고통분담이라는 이름이 노동자에게만 희생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미리 경고하였지만, 역시나 코로나19를 핑계로 구조조정, 해고, 휴직, 희망퇴직 등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항공, 여행업은 물론, 중소제조업에도 정리해고 바람이 분다.
이스타 항공은 이메일을 통해 약 600여 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 했다. 경영진의 배임, 횡령, 불법증여 등 의혹은 모르쇠, 결국 경영악화의 책임을 모두 노동자에게 전가하였다. 대우버스는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노동자 300명을 정리해고 하였다. 중소제조업 노동자들은 유급휴직, 무급휴직, 임금동결, 희망퇴직 등으로 소득이 매우 감소한 상황을 버티고 있으며 최악의 결론은 폐업, 정리해고이다.
코로나 시대라며 호황기를 맞이한 택배업 노동자들의 현실도 참담하다. 올해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택배노동자는 13명이며, 불공정한 계약으로 “억울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한 택배 노동자는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코로나19 경영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거나,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도덕적 해이는 범죄행위이다.
정부의 방치
기업과 경영진의 정리해고와 불공정 행위 등에 대해 정부의 대책은 변화가 없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기간산업 40조와 한국판 뉴딜 170조를 대기업에게 퍼주면서 노동자들과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은 너무 적다.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경영상 이유에 의해 해고된 노동자에 대하여 생계안정, 재취업, 직업훈련 등 필요한 조치를 우선적으로 취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전태일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함께 살기 위하여
전태일이 손잡은 시다와 미싱사는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플랫폼노동자, 특수고용직노동자, 영세상공인으로 이름만 바뀐 채 여전한 차별과 불평등에 처해있다. 1대 99, 10대 90이라는 양극화, 불평등이 심화되는 한국 사회에 전태일의 평등과 연대의 운동이 절실하다.
대기업의 불공정 시스템에 의한 독점은 개혁되어야 하며, 기업의 도덕적 해이로 인한 피해가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것을 막아야 하고, 정부가 노동자의 일자리와 노동기본권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 전태일 열사의 연대와 나눔, 헌신과 투쟁의 정신을 기억하는 이유이다. 노동, 시민사회단체는 전태일 50주기를 맞이하며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50주기 범국민행사위원회>를 꾸려, 노동존중사회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하여, ‘을’들의 고통을 함께 제기하고 단결과 연대를 높이기 위하여 다시 사회적 ‘운동’을 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