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맥주는 생산한 맥주를 소매점에 직접 배송하지 않는다. 핵심 물류 업무를 CJ대한통운에 도급을 줬다. CJ대한통운은 소규모 물류업체에 재하청을 준다. 거의 1년 단위로 도급업체를 바꿔가며 최저입찰가를 조건으로 물류업체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키고 이윤을 남긴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많게는 25년 이상 일을 해 왔다. 매년 도급업체가 바뀌면서 고용은 승계되었지만 근속에 따른 임금인상은 없다. 임금수준은 최저임금 언저리였고 장시간 노동으로 위태롭게 가정경제를 유지해 왔다. 그렇게 OB맥주는 물류 업무의 비용을 절약하고 CJ대한통운은 앉아서 돈을 벌었다.
대놓고 노조 인정하지 않는다는 업체 관리자
상황이 바뀐 건 올해부터다. OB맥주와 CJ대한통운은 도급을 주면서 자꾸 직접 노동자들을 통제하려고 했다. 도급은 일의 완성을 대가로 보수를 지급하는 계약이다. 즉 어떻게 일을 하든 원청은 하청 노동자에게 시시콜콜 간섭하면 안 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원청회사가 하청 노동자들을 자기 회사 직원처럼 부리는 일이 다반사다. OB맥주 경인직매장도 그랬다. 도급 업체 입찰 과정에서 원청의 비리문제,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불합리한 업무지시로 인해 하청 노동자들은 올해 2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한국노총 부천지역노동조합(위원장 김덕근) OB맥주 경인직매장 분회다.
회사와 단체교섭을 앞두고 기존에 분회 조합원이 소속된 동성종합물류가 CJ대한통운으로부터 계약해지를 당했다. 새롭게 물류 업체로 선정된 태성로지텍은 관행적으로 해온 이전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전원 고용승계를 거부했다. 조합원들을 면담하는 과정에서 태성측 관리자는 “우리 회사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 “도대체 노조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태성은 노조가 없는 노사화합을 자체 내에서 조정하는 회사”라며 노조의 필요성을 부정하는가 하면 “노조를 와해시키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등 노동조합에 대한 적대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결국 태성측은 분회의 핵심 간부인 사무국장이 담당하고 있는 현장소장에 다른 사람을 임명함으로써 분회 사무국장을 고용승계에서 배제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그리고 개별적으로 입사지원하면 선별하여 채용하겠다고 공지했다. 도급업체 변경에도 수십 년간 고용승계의 관행을 무시한 태성의 부당노동행위에 분노한 조합원들이 전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개별 채용지원 거부 투쟁을 전개했다. 태성은 업무 시작일인 2020년 6월 1일부터 신규채용한 일부 직원들을 동원하여 업무를 시작했고, 분회는 경인직매장 정문 앞에서 고용승계 쟁취와 부당노동행위를 규탄하며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지난 수년간 CJ로부터 OB맥주 경인직매장 물류 업무를 도급받은 회사들은 관행적으로 고용승계를 해 왔다. 이전과 달라진 건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는 것뿐이다. 한국노총 OB맥주 경인직매장 노동자들은 이번 사건을 노조설립으로 노동자를 다루기 불편해지자 기존 고용승계 관행을 무시하고 선별 채용하여 조합원을 길들이려는 명백한 노조탄압이라고 규정한다. 부당노동행위 저지와 고용승계 쟁취를 위한 힘찬 투쟁은 50일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원청이 나서서 문제 해결하라
무엇보다 이번 사태에 대해 원청으로서 책임을 져야 할 CJ대한통운과 OB맥주는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수수방관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의 도급계약 방침에 따라 동성 소속이었던 조합원들은 2020년 12월 31일까지 근로계약이 체결된 동성측에서 “전원 태성으로 고용승계 될 예정이니 퇴직절차를 밟자”는 말을 믿고 퇴직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태성은 언제 그랬냐는 듯 선별채용을 내세우며 고용승계를 거부하고 있다. 저임금으로 생계를 꾸리는 도급계약 노동자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OB맥주 경인직매장 노동자들은 CJ대한통운이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한 태성과의 도급계약을 해지하고 도급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대책마련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고용계약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태성의 부당노동행위와 파행적 사업운영을 방치한다면 우리는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하고 OB에 불법파견의 책임을 묻는 등 강력한 규탄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이번 OB맥주 경인직매장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투쟁을 계기로 정부는 ‘인건비 따먹기’로 노동자에게 저임금과 고용불안을 강요하는 도급계약의 실태와 문제점에 대한 법과 제도적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노총은 이번 21대 국회에서 사업주가 다른 사람에게 사업을 양도할 경우 기존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법제화하여 고용승계를 보장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는 파리 목숨처럼 위태로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최우선적이고 최소한적인 과제이며, 노사관계 갈등의 가장 일반적 요인인 고용불안을 해소하는 대책이기도 하다.
한국노총 부천김포지역지부와 한국노총 경기본부, 그리고 분회의 상급단체인 금속노련은 물심양면으로 분회의 투쟁을 지원하고 있다. 부천김포지역지부 박종현 의장과 지도부는 매주 천막농성 투쟁 현장에 결합하여 함께 투쟁하고 있으며, 경기본부 김용목 의장 이하 간부 동지들은 방송차량 지원은 물론 연대투쟁 조직화로 분회의 투쟁이 외롭지 않도록 엄호하고 있다. 금속노련은 국회 노동존중 의원단과 면담 등을 주선하며 분회의 고용승계 투쟁을 도급 노동자의 권리보장을 위한 투쟁이 되도록 사회이슈화 하기 위해 지원 중이다. 분회 동지들은 50일이 넘도록 월급 한 푼 집에 가져가지 못하면서도 땡볕과 폭우 아래서 투쟁하고 있다. 한국노총 조합원 동지들의 연대로 반드시 승리하여 현장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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