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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쉴 권리, 사회적 백신으로 보장하자

유급병가와 상병수당

등록일 2020년08월12일 14시39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코로나19 감염병의 등장으로 우리 사회의 여러 취약지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아파도 쉴 수 없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었고, ‘아프면 쉴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에 대한 국민들의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 7월 2일 일하는 사람이 아플 때 충분히 쉬면서 치료를 받고 다시 일터에 복귀할 수 있도록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을 도입하자는 취지의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이 글을 통해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이 주로 논의했던 내용과 직접 토론자로 참여하면서 느낀 점을 조합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이란

 

한국의 사회보장제도 내에 질병과 관련된 제도는 건강보험제도가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제도는 질병을 직접 치료하는데 필요한 의료서비스에 대해서는 보장하지만, 치료하는 기간 동안 필요한 소득상실의 위험을 막아줄 수 있는 소득보장기능은 없다.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을 도입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그 필요성에 대해서 토론회에 참석한 다수가 인식, 동의하고 있었다.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유급병가제도는 단기간의 치료가 필요한 업무와 무관한 질병에 처하는 경우 사업장에서 유급휴일을 제공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필요한 경우 진단서나 처방전 등을 증빙서류로 포함하여 노동자들이 유급병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그 비용은 사업주가 대부분 부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실제 유급병가제도가 현장에서 임의적으로 제공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근로기준법 상에 ‘연차’는 노동자의 권리로 규정되어있지만 ‘병가’는 별도로 규정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취업규칙을 통해 병가를 설정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근로기준법상 10인 이상 사업장에만 설정하도록 규정된 부분이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병가를 유급으로 반드시 보장해야한다는 규정을 설정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이나 재벌대기업, 공공기관, 노조가 있는 사업장 등은 취업규칙, 단체협약 내지 공무원 복무규정을 통해 다소간의 유급병가를 보장받고 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상 모호한 규정으로 인해 영세사업장 내지 중소기업의 경우 대부분 취업규칙을 통해 병가를, 그것도 유급으로 보장받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상병수당은 유급병가기간을 넘는, 꽤 긴 기간의 치료가 필요한 업무외 상병에 처한 사람에 대해 소득을 보장해주는 제도이다. 예를 들면 6개월 이상의 업무외 상병에 처한 경우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사실상 해고 내지 무급휴직 등의 소득상실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진다. 따라서 제도적으로 중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노동자에 대해 공적인 방식으로 소득을 보장해주자는 취지의 제도가 바로 상병수당이다.

 

우리나라만 없는 상병수당, 도입을 꺼리는 관료집단

 

하지만 상병수당은 국제개발협력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시행하지 않고 있는 제도이자, 국제사회보장협회(ISSA) 182개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19개국만 시행하지 않고 있는 제도이다.

 

왜 이럴까? 일차적으로는 상병수당이 법적 규정은 있으나 정부의 강한 의지 없이는 시작할 수 없도록 모호하게 규정되어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에는 부가급여 중 하나로 대통령령을 통해 상병수당을 실시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있지만,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는 구체적인 사안들이 규정되어있지 않다. 이는 상당히 오래된, 소위 정부가 묵혀둔 문제인데 아마도 사용자단체와 재정당국(기획재정부)의 반대로 논의되지 못했던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정부가 재정지출이 늘어날 것을 두려워하여 제도도입에 대한 논의에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국민들로부터 정부의 불신을 키울 수 있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추계한 바로는 상병수당을 실시하는 경우 1년에 최소 8천억 원에서 최대 1조7천억 원의 지출이 필요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지출이 500조를 넘었으며 이 중에서 건강보험만 70조를 차지하고 있다. OECD는 지금 한국의 재정상황이 매우 양호한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있으며 추가적인 재정지출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인 동시에 이를 통해 경기반등이 매우 빠르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각 국가에서는 정부가 이른바 ‘헬리콥터 머니’ 수십조를 뿌리면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조건을 고려하였을 때 일하는 사람이 아프면 쉴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는데 필요한 1~2조 가량의 재정지출이 지나치게 국가재정의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관료집단의 주장은 사실상 옹졸하고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국민들은 아마도 그렇게 판단할 것이다.

 

구체적 설계에 대한 논의, 정치권의 역할 필요해

 

지금 당장 도입해야 할,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도입하고 한창 운영하고 있었어야할 상병수당과 유급병가는 어찌보면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하는 과제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종의 ‘사회적 백신’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도입을 하느냐 여부가 아니라 ‘디테일한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일 것이다.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 우리 사회에서 뜨겁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인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노동계나 시민사회진영에서도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를 이제 막 시작하고 있기에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다만 대략적인 쟁점사항은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는데 이 중에서도 ①상병수당의 공정한 제도운영을 위해 필요한 대기기간(3~7일)을 어느 정도로 설정할 것이며, 그에 따라 법정 유급휴가기간을 몇일까지 보장해줄 것인지와 ②자격확인과 의료적 인증에 있어서 신뢰할 수 있는 장치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가 중요하게 논의되어야할 것이다.

 

토론회를 전후로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의 구체적 도입방안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올라가면서 환경노동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관련된 법개정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토론회에서도 밝혔지만 결국 국회가 법에 정확하게 명문화함으로써 제도를 도입 및 시행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정치권의 역할이 필요한 때이다. 따라서 의원들이 입법발의에 적극 나서는 지금의 상황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다만 노동시민사회, 특히 한국노총은 국회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는 지난 20대 국회가 어떻게 끝났는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국고지원, 국민연금 국가지급보장은 적극적인 논의도 하지 못한 채로 끝나버렸다.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특고를 포함하겠다는 방안도 물 건너갔고, 범정부 차원에서 열심히 준비했던 한국형 실업부조는 21년도에 도입하는 것으로 미루어졌다. 따라서 정치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국회는 하루 빨리 입법으로서 성과를 보여 국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스스로 해소해야 한다. 더불어 정부 또한 국가복지에 대한 무한책임을 갖는 주체로서 구체적 도입방안에 대해 스스로의 해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상병수당 #유급병가 #사회적백신

김정목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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