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감염병의 장기화로 인해 가장 활발한 도시 기반의 경제적· 문화적 역동을 자랑하던 한국은 비대면이 일상이 되면서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있다. 가장 먼저 아파도 충분히 치료받고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드러났다. 악화된 경제상황으로 인해 일감이 줄어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사람, 노인이나 아이에 대한 돌봄서비스가 충분치 않아 고민하는 사람, 한창 직업경력과 관련된 경험을 쌓아야 할 시기에 기회가 충분치 않아 고통받는 청년들, 그리고 장기화된 감염병과의 싸움에서 조금씩 지쳐가는 의료인력 등 우리는 국민들이 다양한 부분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작금의 위기를 빨리 끝내기 위한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당연히 치료제와 백신의 개발 및 보급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 치료제와 백신의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시점은 적어도 하반기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잇따르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1년여의 시간을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는 지금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보내기 위해서 사회적 백신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사회적 백신에는 무엇이 있을 것인가?
△ 지난해 5월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상병수당 도입 촉구 기자회견
아프면 쉬자! 상병수당
첫째, 우선 일하는 사람이 ‘아파도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OECD 국가 내 한국만 유일하게 시행하지 않고 있는 ‘상병수당’이 지금 즉시 도입되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상병수당을 시행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이다. 우선 아파도 소득단절을 걱정하여 쉴 수 없는 사람이 다수이다 보니 재활치료 등 시간이 다소 필요한 방법보다는 빠른 치료과정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가격이 다소 높은 치료행위, 그중에서 특히 비급여행위를 선택하게 된다. 이는 결국 가계의 또 다른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진다.
또한 아픈 상황 앞에서 불평등과 양극화의 민낯이 드러나기도 한다. 소위 공무원이나 대기업-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단체실손보험을 통해서 치료비를 많이 경감받거나 충분한 기간이 보장되는 유급병가를 사용하여 충분한 치료 후 일터로의 복귀를 보장받고 있다. 반면 중소규모의 기업이나 비정규직의 경우 이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파도 쉴 수 있는 권리도 양극화되어 있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병수당 도입, 그리고 모든 사업장의 유급병가 보장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작년 한 해 일하는 사람들의 아프면 쉴 권리 보장을 위해 상병수당 도입에 대한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시민사회진영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다. 정부도 이를 인식하여 작년 7월 한국형 뉴딜정책의 일부로 상병수당 도입을 언급하였으나 구체적 도입시기나 방향은 전혀 명시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는 재정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관료들이 도입을 미루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최근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의 노동존중실천국회의원단을 통해 정춘숙 의원 입법발의로 상병수당 도입에 관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노총은 올해 반드시 일하는 사람들의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을 위해 상병수당 법제화를 견인할 것이다.
모든 건 사람으로부터, 인력확충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보건의료와 돌봄과 관련된 인력확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당장 지금의 감염병 확산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어떤 사유에서든지 발생하는 국가적 위기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보건의료나 사회서비스 같은 분야의 특징인 ‘대면’적 성격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이 분야는 전문화된 교육을 이수한 인력을 확보하는 과정, 그 인력들이 충분히 현장에 적응하고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기간, 전문성이 계속 높아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관리 등이 중장기적으로 검토되어야 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전체적인 부분들이 민관협력적 거버넌스 아래 발전해야 의료 및 돌봄서비스를 받는 이용자에게 적정수준의 대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의사나 간호사,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직군의 보건복지 인력 확충이 필요하고, 이에 대한 관리가 국가적 차원에서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아무도 속 시원하게 답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의료인력 확충에 있어 당장 의사를 일부라도 확충하자는 제안도 당사자들인 의사협회가 강하게 반대하면서 좌초되었다. 2018년부터 추진되었던 간호인력 확충 또한 계획상 잡힌 일정들이 실행되고는 있으나 여전히 비의료분야에서 일하거나 간호면허가 있음에도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활성화시키는 데까지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더불어 인구구조의 변화로 인한 베이미부머세대의 은퇴와 행정직군 내 보건의료인력의 흡수 등 여러 요소로 인해 오랜 경험을 쌓은 인력들이 현장에서 점점 부족하여 서비스 질 문제까지 초래되고 있다.
돌봄분야 또한 마찬가지이다. 요양보호사의 경우 점차 고령화되어가고 있으면서도 자격제도 관리를 강화하는 과제들은 미뤄지고 있으며, 양질의 교육과 승진경로 부재 등 인력의 질 담보가 당장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단순히 지금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차후 고령화되어가는 한국 사회의 보건의료, 돌봄서비스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력확충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당장 올해부터 노동시민사회진영의 오랜 요구였던 적정수준의 인력확충이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공공인프라 확충, 지금부터 당장 시작해야
셋째, 돌봄공백을 막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충분한 인프라이다. 지금은 민간이 아닌 공공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 OECD 국가들 중에서 한국은 보건의료 및 복지 인프라의 수는 괜찮은 편이나, 그 안에서 장기요양기관은 2.9%, 병원의 경우 5.7%, 어린이집은 11.6%로 공공인프라 비중이 매우 떨어진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복지지출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정책방향으로 취해왔기 때문에 공공인프라가 전체기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렇게 낮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러한 대가를 국민들이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집의 경우 민간보다 서비스 질이 담보된 국공립 어린이집을 이용하고 싶은 부모가 다수이지만, 기관수가 적어 대기기간이 엄청나게 긴 문제가 있다. 노인장기요양기관의 경우에도 국공립이 사실상 거의 없어 대부분의 민간기관들이 출혈경쟁을 하다 보니 서비스 질이 전반적으로 낮고 해당 영역의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개선이 계속 더딘 문제가 있다. 의료의 경우 가장 핵심적인 부문인 의사 및 간호사 인력이 전반적으로 부족한 가운데, 이를 양성할 수 있는 공공의료기관 또한 매우 적어서 사실상 인력확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동시에 비수도권의 경우 민간의료자원조차 적다 보니 의료공백 등의 문제가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공공인프라 확충을 지금부터 시도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한국사회에서 보건의료 및 사회서비스 영역의 공공성 강화는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처럼 대다수의 보건복지서비스를 민간에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인프라를 확대하여 국가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고 안전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공공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