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교 금속노련 조직부장
여느 때와 다름없는 퇴근길 지하철. 늘 그렇듯 평소처럼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최신 뉴스를 읽기 시작했다. 포항의 포스코 공장 내에서 3명의 노동자가 다쳐서 사망했고 1명은 중태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건설현장, 지하철, 백화점, 공장 등 하루에도 몇 명씩 죽어나가는 대한민국에서, 모질게 생각하면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기사다. 하지만 ‘포항·포스코·하청업체·노동조합’ 네 개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포항에는 57개의 포스코 사내협력업체가 있다. 그 중 노동조합이 있는 협력업체는 17개 정도. 우리 한국노총 금속노련소속 노동조합은 9개. 꽤 높은 확률이다.
후속기사에서 협력업체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TCC한진’ 지난 1월 26일 포항 포스코 하청업체인 TCC한진 소속 노동자 4명이 냉각기 교체작업 중 질소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TCC한진에는 한국노총 금속노련 소속 노동조합이 있다. 조합원 4명이 한꺼번에 현장에서 일하다가 숨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TCC한진 노동조합과 조합원뿐만 아니라 상급단체인 한국노총과 금속노련 또한 처음 겪는 일로,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으로 TCC한진 노동조합과 집행부, 그리고 포항지역의 한국노총 소속 노동조합들은 많은 일을 겪었다. 몸과 마음이 힘든 일을 겪으며 절실하게 느낀 것은 바로 ‘조직화(기존조직강화+신규노조 건설)’였다.
위험을 대신할 노동자를 모집하는 포스코
포스코가 위험한 업무를 TCC한진과 같은 협력업체에 맡기는 이유가 무엇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싼값에 노동자들을 쓰면서 사망사고 등에서 비롯되는 책임은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식과는 좀 괴리가 있다. “너무 위험해서 우리 직원들을 시키기 부담스럽습니다. 또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기 때문에 우리 직원들이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 대신 죽음을 무릅쓰고 맨홀 구멍 속으로 대신 들어가서 어려운 일을 수행하실 분들을 구합니다”라고 구인공고를 낸다면, 그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포스코의 정규직 직원들보다 몇 배의 비용을 받아야 상식에 맞지 않은가? 자신들이 직접 하기에는 너무 위험하거나 어려운 일을 대신해주니 말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이렇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우리 직원들을 투입할 수 없다. 또한 작업 중 가스가 유입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고 작업 중 가스밸브를 여닫는 것은 우리가 직접 하겠다”고. 만에 하나 위험한 일을 수주한 업체의 노동자가 사망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정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한다면 업체들은 절대 낮은 금액으로 위험한 일을 수주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시장원리에 따를 때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은 비논리적이다. 외주하청업체들이 일하는 공장은 포스코 소유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포스코 정규직노동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어떤 장비도 마음대로 만질 수 없다. 당연히 스스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없다. 버튼 하나만 잘못 누르면 죽을 수도 있는데, 안전을 확보하라는 요구도 할 수 없다. 게다가 하청구조의 가장 아래에 놓인 노동자들은 포스코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의 40% 정도밖에 받지 못한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현장에 우리 조합원들을 투입할 수 없다. 우리가 하는 일의 정상적인 대가를 받지 않고는 우리 조합원들을 투입할 수 없다.” 포항의 57개 포스코 사내협력업체에 노동조합이 있고, 노동조합들이 똘똘 뭉쳐서 함께 요구한다면, 포스코는 과연 위험한 일을 외주화 하려고 할까? 대한민국의 기업들은 위험을 외주화 할 수 있을까? 무척 궁금하다.
조직화의 시작 - 철저한 자기반성과 체질개선, 공격적 조직화
포항에는 총 44개의 한국노총 소속 노동조합이 있다. 그중 금속노련 소속 노동조합은 23개다. 포스코 사내협력업체 노동조합은 9개다. 그런데 최근 2개 노동조합에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분회가 설립되었다. 포스코를 상대로 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빌미로 몇몇 조합원들이 우리 노동조합을 탈퇴했다는 것이 겉으로 드러난 이유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조직력이 강하지 못해 조합원을 빼앗겼다는 사실에 분노와 자괴감,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기존 조직의 체력을 강화하고 조금 더 공격적으로 신규 노동조합 조직화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는 것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금속노련은 5월 15일 개최된 2018 정기대의원대회에서 20만 금속노련 조직화 사업계획을 통과시켰다. 금속노련 김만재 위원장을 추진단장으로 하고 각 지역본부 의장들을 지역단장으로 하는 20만 금속노련 조직화 추진단을 구성하고, 금속노련의 역량을 재배치하여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에 대한 집중력을 고도화하자는 것이 골자다. 지난 5월 15일 개최된 2018 금속노련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들로부터 사업계획을 승인 받았다. 이틀 뒤 한국노총 200만 조직화 상황실과 금속노련 사무처는 곧바로 포항으로 내려갔다. 포항지역 노동조합 대표자들을 긴급 소집하여 간담회를 갖고 포항지역 노동조합 조직화 T/F팀 발족식과 1차 회의를 개최했다. 포스코 및 포항지역 노동조합 조직화사업은 사업의 파급효과 및 규모, 시급성(민주노총과의 조직경쟁) 등을 고려할 때 한국노총 및 금속노련의 인력과 재정을 집중한 체계적 조직화사업이 시급하다는 것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간이었다. 참석자들은 모두 산별 및 지역 조직화사업 추진단을 통한 집중조직화사업의 전형과 모범을 창출하는 시범사업을 전개하기로 결의를 모았다. 지난 5월 26일 노총 포항지역지부는 실천적 조직화 운동을 담보하기 위해 포항지역 TF팀을 별도로 창설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포항지역 조직화는 포항철강노동조합 설립으로부터
그리고 기존 기업노조 형태의 조직화 틀을 벗어나서 기업노조 및 일반노조 형태 2트랙으로 공격적인 조직화 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기업노조에 비해 가입이 쉽고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접근이 용이한 일반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TF팀 회의 참석자들은 가칭 ‘포항철강노동조합’을 설립하기로 하고 절차를 서두르기로 했다. 이는 20만 금속노련 조직화 계획의 일환이기도 하다. 금속노련은 2018년 말까지 금속노련 중앙의 전국 일반노조를 설립하고 1 지역본부 1 일반노조 설립과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의 인큐베이팅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 위험의 외주화 철폐
이제 겨우 시작이다. 포항 포스코 뿐만 아니라 포항지역 철강공단 전 지역에 걸쳐 한국노총 홍보선전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공장 울타리를 넘어 아직 조직화되지 않은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연대할 것이다. 기본적으로는노동법관련 법률 서비스, 산업안전 지원활동, 이와 관련한 교육사업 등을 진행하면서 포항지역 시민들의 한국노총에 대한 이미지 쇄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할 예정이다. 노동자 조직화뿐만 아니라 그 활동이 포항지역과 시민들에게도 긍정적인 에너지로 다가설 수 있도록 지역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57개에 이르는 포스코 사내 협력업체에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조직된 노동자들의 힘으로 포스코를 상대로 공동요구공동교섭에 나설 것이다.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고, 안전한 일터를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는 연대사업을계획, 실행해 나가야 한다. 당연히 녹록치 않은 길이다. 하지만 꼭 가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험난한 길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포항지역 조합원 동지여러분들과 나아가서는 한국노총 조합원 동지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다. 포항에서 전국으로, 포스코에서 삼성으로. 이 작은 불씨가 20만 금속노련 200만 한국노총 건설의 횃불로 자라나기를 간절히 염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