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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겔 지수 높은 소확행 젊은이의 하루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

등록일 2020년04월16일 17시47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돈을 너무 막 쓴다. 특히 먹는 데 너무 많이 쓴다. 1인 가구 주제에 마트 한번 가면 5만 원은 훌쩍 넘는다. 거의 식재료 사기 중독인데 문제는 결국 외식한다는 거다. 고된 하루가 끝나면 요리할 힘이 남아 있지 않고, 길을 걸으면 유혹이 넘쳐난다. 30대의 엥겔 지수란 원래 이런 걸까? 무엇보다 나에겐 돈을 아껴야 할 이유가 없다. 

자녀 학원비나, 아파트 대출 이자 같은 게 있었다면 나도 열심히 아낄 것이다. 하지만 소확행 시대의 청년은 하루하루를 살 뿐이다. 유일하게 가지고 싶은 건 서울 시내 아파트인데 평균가가 9억이고, ltv가 40%라 막막하다. 그러다 오늘! 돈을 급진적으로 아끼는 방법을 알게 됐다. 바로 돈을 안 들고 나가는 거였다! (비장) 

 

버스를 타려는 순간, 카드를 두고 온 게 생각났다. 하늘이 도왔는지 평소 안 들고 다니던 지갑이 있었다. 500원짜리 동전 2개와 100원짜리 동전 2개, 그리고 만 원짜리 지폐 한 장. 그런데 어쩌지. 버스비는 1300원인데... 기사님께 ‘제가 만 원짜리 지폐 하나 있는데 이거 내면 민폐지요? 사실 동전도 있어요. 근데 100원 모자라요. 둘 중 무엇을 할까요?’ 물어보려다가, 그게 더 민폐인 것 같아 눈 질끈 감고 동전을 넣었다. 땡그랑 소리가 네 번 났는데 설마 그 소리로 잡히려나. 죄인이 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클립아트코리아

 

사람들과 밥을 먹었다. 카톡으로 돈을 송금할 수 있어 좋은 세상이다. 다들 지갑에 현금 좀 있으면 달라고 했다. 실망스럽게도 2,000원밖에 뜯지 못했다. 커피 디저트 먹고 버스 타고 집 가기엔 돈이 간당할 것 같았다. 이런 순간에 성숙한 프리랜서라면 ‘집에 가서 일해야지’ 할 텐데 나는 ‘그럼 카카오 택시를 부를까 그건 자동결제니까’라고 잠시 생각하다 정신 차려 다음 달 월세 낼 돈도 없는 게, 하고 뺨을 때렸다. 

 

카페에서 일을 하다 저녁이 되었다. 요가를 갈지 말지 20분 고민하다 가기로 했다. 낮에 맛있는 거 먹었으니 저녁은 먹지 말자. 결심하고 나서는데, 10분 걷다 타코집을 발견했다. 정신을 차리니 이미 들어가 있었다. 

‘이태원에는 일주일에 한 번밖에 안 오는데 맛있는 걸 먹어야 하지 않겠어? 여기 케밥 진짜 맛있는데…’ 습관처럼 주문하는 순간 생각났다. 아 나 카드 없지? 

평소의 나라면 이런 순간 포기 않고 계좌이체 되냐 묻는다. 하지만 저들은 터키 사람… 물론 한국어를 엄청 잘하지만 그래도 외국인에게 계좌 이체 운운하는 건 미안한 마음이 들어 좀 있다 다시 오겠다고 했다. 이런 순간엔 늘 솔직하지 못하다. 터키인 점원은 ‘꼭 기다릴게~’ 했다. 

 

이제 요가학원까지 어떻게 가느냐가 관건인데, 환승을 못하는 게 큰 문제였다. 지하철을 타고, 마을버스 두 정거장 거리는 걸어서 요가원에 도착했다, 였으면 좋으련만, 이번엔 갑자기 신발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봄 운동화 사는 게 숙제였단 사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연예인 선미가 신고 있는 신발에선 빛이 났다. 내가 신으니 평범했다. 그냥 사지 말까 싶었지만 그러면 평범한 내가 더 평범해질 것 같았다. 그래, 사자! 점원에게 이걸로 하겠다고 했다. 계산대에 서는 순간 아… 나 카드 없었지… 죄송하다 하고 나왔다. 

요가원엔 파는 게 없어 다행이었다. 심신을 안정시키고 나왔다. 배가 고팠지만 천 원으론 김밥 한 줄도 살 수 없었다.

 

‘와… 돈을 안 들고 나오면 진짜 돈 쓸 일이 정말 없네… 부자되겠어…’ 

집에 와 요리를 시작했다. 매번 썩히던 식재료를 이번엔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내일부턴 매일 만 원만 들고 나가볼까 싶다. 멀게만 느껴졌던 내집마련의 꿈으로 한 발 다가간 느낌이다.

 

P.S. 버스기사님 죄송합니다. 다른 버스에 갚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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