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 멋진 사진을 자주 올리던 A가 돌연 프로필 사진을 내렸다. 흰색 바탕에 회색 실루엣, 다소 쓸쓸해진 기본 이미지 옆엔 ‘총총...’이란 글귀가 적혀 있다. 서로 관심 있는 사이라면 이럴 때 응당 물어봐 줘야 한다. 무슨 일 있냐고. 우린 딱 한 번 본 사이기에 격식을 차려 DM을 보냈다. ‘어디... 가요?’ 몇 분 뒤 답이 왔다. ‘잠시 현생에 집중하다 오겠습니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든다. 나 역시 910개의 게시물을 올린 유저이기에 안다. 동시에 늘 꿈꾼다. 인스타 따윈 로그인 안 하는 삶. 하지만 용기가 없다. 나에겐 직장이 없으니까. ‘저도 늘 그러고 싶은데 프리랜서다 보니 잘 안 되네요.’ 나의 일거리는 대부분 인맥을 통해 들어온다. 개인사업자를 낸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 명함을 파지 않은 이유는 SNS가 내 명함이기 때문이다. 틈틈이 작업물을 올리며 나를 어필하는 일은 짜릿하면서도 질리는 맛이 있다. A역시 독립출판도 하고, 외주로 디자인도 하는 ‘정확히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바쁘고 열정적으로 멋있게 사는’ 류의 사람이기에, 우린 긴 대화 없이도 서로를 이해했다.
‘너무너무 공감합니다. 일분일초가 기회인 삶이잖아요.’
이미지 출처: 클립아트 코리아
페이스북에 쓴 글이 공유되어 허프포스트코리아에 실린다 든가, 브런치에 쓴 글로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는다거나, 유튜브에 올린 영상으로 작업을 의뢰받는 일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기회를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결과물을 세상에 보여주는 거다. 하지만 쌔끈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건 쉽지 않다. 어떤 작업은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며, 완성본도 장담 못한다. ‘돌고래유괴단’의 신우석 감독은 이를 ‘울면서 카드 뒤집기’로 표현했다. “내가 가진 몇 장의 카드로 승부를 내야 하는데, 문제는 내가 가진 카드가 뭔지 나도 몰라. 알려면 뒤집어야 하는데, 뒤집으면 게임의 승패가 그대로 결정나. 그게 아주 괴로워. 이겨야만 게임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데, 운이 좋아서 한 판을 이겼다고 쳐. 미치겠는 건, 다음 카드 역시 뭐가 나올 지 모르긴 마찬가지라는 거야.’ (김보통, <아직, 불행하지 않 습니다> 중에서)
이는 결과물로 승부 내야 하는 모든 직업에 해당되는 말이지만, 삼수생 시절에 가장 뼈져리게 느낀 것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대학에 못 가면 집에서 쫓겨날 것 같은데, 단 한 번의 결과로 승부하는 게 너무 겁이 났다. 살벌한 입시 경쟁에 개복치가 되어버린 난 급기야 현실을 부정하기에 이르렀고, 그 때 내론 결론이 있었다. ‘결과는 안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열심히 하고, 배우는 바가 있으면 그걸로 된 거야. 결과는 중요하지 않아.’
인생의 가장 불안한 시절에 정립된 사상은 나의 일부가 되었다. 별거 아닌 결과물이어도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썼고, 사소한 거라도 날마다 공유했다. 아무리 별로인 하루라도 찾아보면 신기한 순간이 있었고, 그것들에 의미 부여하는 것을 즐겼다. 이는 디지털 시대에 남는 장사였다. 최종 결과만 보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너와! 나의! 연결! 고리!를 강화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내 삶을 구독 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기회로 이어졌다. 그래서 SNS를 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래서 가끔 스스로 사기꾼처럼 느껴진다는 거다. 마치 영화는 개봉 안 하면서 메이킹필름만 보여주는 감독 같다. 그 간극에 현타가 올 때면 앱을 지운다. 그리고 다음 날, 또 깐다. 어느 덧 나는 매일 매일 앱을 깔고 지우는 사람이 되었다.
‘하... 이거 좀 이상한 거 맞죠?’
망했다.
정성은(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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