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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분일초가 기회인 삶입니다만

정성은(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등록일 2020년03월09일 15시3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인스타그램에 멋진 사진을 자주 올리던 A가 돌연 프로필 사진을 내렸다. 흰색 바탕에 회색 실루엣, 다소 쓸쓸해진 기본 이미지 옆엔 ‘총총...’이란 글귀가 적혀 있다. 서로 관심 있는 사이라면 이럴 때 응당 물어봐 줘야 한다. 무슨 일 있냐고. 우린 딱 한 번 본 사이기에 격식을 차려 DM을 보냈다. ‘어디... 가요?’ 몇 분 뒤 답이 왔다. ‘잠시 현생에 집중하다 오겠습니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든다. 나 역시 910개의 게시물을 올린 유저이기에 안다. 동시에 늘 꿈꾼다. 인스타 따윈 로그인 안 하는 삶. 하지만 용기가 없다. 나에겐 직장이 없으니까. ‘저도 늘 그러고 싶은데 프리랜서다 보니 잘 안 되네요.’ 나의 일거리는 대부분 인맥을 통해 들어온다. 개인사업자를 낸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 명함을 파지 않은 이유는 SNS가 내 명함이기 때문이다. 틈틈이 작업물을 올리며 나를 어필하는 일은 짜릿하면서도 질리는 맛이 있다. A역시 독립출판도 하고, 외주로 디자인도 하는 ‘정확히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바쁘고 열정적으로 멋있게 사는’ 류의 사람이기에, 우린 긴 대화 없이도 서로를 이해했다.

‘너무너무 공감합니다. 일분일초가 기회인 삶이잖아요.’

 


이미지 출처: 클립아트 코리아

 

페이스북에 쓴 글이 공유되어 허프포스트코리아에 실린다 든가, 브런치에 쓴 글로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는다거나, 유튜브에 올린 영상으로 작업을 의뢰받는 일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기회를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결과물을 세상에 보여주는 거다. 하지만 쌔끈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건 쉽지 않다. 어떤 작업은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며, 완성본도 장담 못한다. ‘돌고래유괴단’의 신우석 감독은 이를 ‘울면서 카드 뒤집기’로 표현했다. “내가 가진 몇 장의 카드로 승부를 내야 하는데, 문제는 내가 가진 카드가 뭔지 나도 몰라. 알려면 뒤집어야 하는데, 뒤집으면 게임의 승패가 그대로 결정나. 그게 아주 괴로워. 이겨야만 게임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데, 운이 좋아서 한 판을 이겼다고 쳐. 미치겠는 건, 다음 카드 역시 뭐가 나올 지 모르긴 마찬가지라는 거야.’ (김보통, <아직, 불행하지 않 습니다> 중에서)

 

이는 결과물로 승부 내야 하는 모든 직업에 해당되는 말이지만, 삼수생 시절에 가장 뼈져리게 느낀 것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대학에 못 가면 집에서 쫓겨날 것 같은데, 단 한 번의 결과로 승부하는 게 너무 겁이 났다. 살벌한 입시 경쟁에 개복치가 되어버린 난 급기야 현실을 부정하기에 이르렀고, 그 때 내론 결론이 있었다. ‘결과는 안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열심히 하고, 배우는 바가 있으면 그걸로 된 거야. 결과는 중요하지 않아.’

 

인생의 가장 불안한 시절에 정립된 사상은 나의 일부가 되었다. 별거 아닌 결과물이어도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썼고, 사소한 거라도 날마다 공유했다. 아무리 별로인 하루라도 찾아보면 신기한 순간이 있었고, 그것들에 의미 부여하는 것을 즐겼다. 이는 디지털 시대에 남는 장사였다. 최종 결과만 보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너와! 나의! 연결! 고리!를 강화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내 삶을 구독 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기회로 이어졌다. 그래서 SNS를 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래서 가끔 스스로 사기꾼처럼 느껴진다는 거다. 마치 영화는 개봉 안 하면서 메이킹필름만 보여주는 감독 같다. 그 간극에 현타가 올 때면 앱을 지운다. 그리고 다음 날, 또 깐다. 어느 덧 나는 매일 매일 앱을 깔고 지우는 사람이 되었다.

 

‘하... 이거 좀 이상한 거 맞죠?’

망했다. 

 

 정성은(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청년 #희노애락 #정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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