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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해지는 연습

일의 기쁨과 슬픔, 청년노동자이야기

등록일 2020년05월14일 16시37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작년 12월, 글쓰기 수업을 열었다. 그동안 유명 작가의 수업을 듣기만 했던 내가 용기 내 수업을 열 수 있었던 건 글쓰기에 대한 단 하나의 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마감이 시킨다는 사실이다. 죽음과도 같은 데드라인과 마감 직후 보낸 글에 대한 부끄러움은 더 좋은 글을 쓰게 만든다. 수강생들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마감을 제공했다. 그러자 그들은 매일 글을 썼다.


“첫 수업에서 또치 선생님은 사람들에게 읽히려면 약간 쪽팔릴 정도로 솔직해야 한다고 했다. 발열 안대를 나눠주면서 자신이 유일무이한 이유를 말해보라 했다. 어떤 걸 말해야 적당히 매력적으로 보일까? 너무 큰 비밀을 말했다가 분위기가 싸해지면 어떡하지? 초조하게 머리를 굴리는 동안 안대는 점차 따뜻해졌다. 다들 눈가가 따뜻한 가운데 자신이 유일무이한 이유를 얘기했다.
나는 유일무이한 나은이다. 왜냐하면 왼쪽 발이 평발이라는 사실을 29년 만에 알았기 때문이다. 애인 집에 갔을 때 애인이 알려줘서 알았다.
스스로 한 말을 들으면서 나는 금방 특별해졌다.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온다고 한 이슬아 작가의 말은 진짜였다. 하지만 29년이라고 괜히 얘기했나? 너무 많은 정보를 말한 것 같다.” - 나은


좋은 글은 모름지기 솔직한 글이다. 30일 동안 매일 함께 글을 쓰다 보니 우리는 서로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진심을 들어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특히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더욱더 없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게 미덕이라고 했다. 감정 변화가 심한 사람은 프로답지 않다고 평가받으니까. 기계가 아닌 사람인 이상 감정 변화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글쓰기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솔직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솔직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 꼭꼭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이 길어 올려졌다. 이런 게 바로 느슨한 연결의 힘인가 싶었다. ” - 이지안


PD, 직업군인, 회사원, 입학사정관, 영화사 직원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 아무에게 말하지 못했던 경험 등에 대해 썼다.


“<당신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쓰던 첫 수업이 생생하다. 나는 영화 촬영을 마치고 마음이 늘 답답했다. 남은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그래도 친구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이건 어쨌든 내 '일'이고 일은 누구에게나 힘드니까. 괜한 푸념과 하소연으로 애정하는 이 작업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혼자 이 감정을 삭히고 또 삭히고... 가끔씩은 메모장을 켜놓고 아무렇게나 막 적었다가 다시 지웠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르겠지. 외로웠다.
힘듦이 가득한 첫날, 글을 수업 시간에 쓴 글을 낭독하는데 목소리가 떨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속마음을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했다. 모두들 내 글을 아주 주의 깊게 들어주었고 너무 좋다고 해주어서 의아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때부터 나는 글을 쓰는 것과 내 마음을 인정하는데 용기가 났다.” - 5C


솔직한 글이 가진 힘은 크다. 하지만 어느 정도냐 묻는다면 글쎄... 잘 모르겠다. 그 순간의 진심일 뿐이기에.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의 <순간을 믿어요>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나 항상 너를 뺏길 것 같아 애써 모든 일들을 가리려고만 했지. 그 아픈 속을 다시 헤아려보니 그래도 내게 기쁨이었었네’ 솔직하게 들여다보니 슬픔 속에서 기쁨이 탄생한다. 노래는 위로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생각하지 말라고. 우리 기억 속에 남은 순간을 믿으라고. 믿고 싶어서 오늘도 쓴다.

 

 정성은(비디오 편의점 대표PD)

정성은(비디오 편의점 대표PD)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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