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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금지 법제화와 노동조합의 대응과제

제26호 ㅣ 2018.12.28.(금)

등록일 2018년12월28일 10시06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정혜윤 연구위원(smhansa@inochong.org)
 

 이른바 ‘직장 내 갑질’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지속 되고 있는 가운데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법제화와 노동조합의 대응과제’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 이용득·김경협·김영주·어기구· 한정애 의원, 자유한국당 문진국·장석춘·임이자 의원실이 공동주최하고 한국노총중앙연구원·행복한일연구소가 공동주관한 이날 토론회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관한 법·제 도적 해법과 노동조합의 역할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마련됐 다.

주간 <노동N이슈>가 이날 토론회 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여자애가 머리가 왜 이렇게 짧아? 내가 급하니까 그냥 뽑았지, 급하지만 않았어도….”

 

“귀는 또 왜 그렇게 많이 뚫었어? 얼굴에 자신이 없어서 귀걸이라도 치렁치렁 달고 다니게?”

 

“너는 그 머리로 대학은 어떻게 갔니?”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알바로 일했던 이유진씨는 사장으로 부터 이런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폭언은 일상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묵묵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졌 다.

 

“너 귀머거리야?”

 

사장은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씨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이씨는 그 길로 빵집 알바를 그만 뒀다.

 

그 뒤 편의점에서 또 다른 알바를 시작했지만, 거기서도 외모 품평과 모욕적 언사는 이어졌다.

 

이 같은 일들을 겪고서도 이씨는 자신이 당한 일이 직장 내괴롭힘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아니, 그 보다는 불이익이 걱정됐다.

 

사장들에게 부당함을 제기한 뒤 일을 그만두면, 사장들은 해당 알바생들의 이름이 적힌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한다.

 

한 번 찍히면 다시는 동종업계에서 일할 수 없게 된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의 현주소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갑질’이라는 용어를 흔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양진호 위디스크 사장 폭행사건과 방정오 TV조선 사장의 운전기사 폭언·해고 사건, 조금 거슬러 올라가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비행기 난동사건 등 직장내 갑질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직장 갑질 문제가 공론화되면 언론은 주로 가해자의 인성 이나 가학적 폭력행위에 포커스를 맞추기 시작한다.

 

후속 보도 역시 가해자가 받게 될 처벌 수위나 이후 행보에 주목 하는 수준이다.

 

이때 언론이 간과한 대목이 있다.

 

직장 갑질, 즉 직장 내 괴롭힘의 대부분이 노사 간에 발생한다는 점이다.

 

노사 간 힘의 불균형이야 말로 직장 내 괴롭힘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만 20~64세 임금노동자 1천506명을 설문조사해 지난 2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한번 이상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직장인이 무려 73.3%에 달했다.

 

직장 내 괴롭힘은 쉽게 말해 직장 안에서 다른 사람의 존엄 성을 침해하거나 적대적·위협적·모욕적인 업무환경을 조성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폭력적 언행 뿐만 아니라, 업무와 관련된 활동에서 배제하거나 정보나 자원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것, 불합리한 일정이나 마감시간을 강요하는 것, 능력 수준 이상의 일을 부여하는 것, 부당한 당번표나 휴가를 배정하는 등 불평등한 권력 관계에서 벌어지는 제반 사항을 포괄한다.
 


직장 내 괴롭힘은 어떻게 개인과 회사·사회를 망가뜨리나
 
직장 내 괴롭힘의 가장 큰 문제는 괴롭힘에 노출된 노동자 개인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괴롭힘을 당한 노동자는 자존감이 떨어지고 우울과 불안·스트레스를 경험하며 가장 극단적인 경우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김인아 교수(한양대 의과대)는 한국의 문화적 특성상 일터 에서 우울증을 경험하는 노동자들이 ‘우울증’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고, 심한 두통·소화불량·대장성 증후군 등 다양한 신체적 증상을 호소한다고 설명한다.

 

즉 직장 내 괴롭 힘은 노동자들의 정신 뿐 아니라 육체적 건강까지 망가뜨리 는, 노동자의 건강권 전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 한다.

 

이는 해당 작업장의 작업환경 악화로도 이어진다. 기업들은 인력관리에서 문제를 겪게 되며, 업무성과와 생산성의 하락을 경험한다.

 

해당 기업이 속한 지역사회는 물론, 국가 전체적으로 보건의료 및 재활 치료비가 증가하고, 실업급여가 급증한다는 사실이 이미 각국의 실태조사와 비교연구를 통해 검증된 바 있다.

 

다시 말해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직장내 괴롭힘이 심각한 사회일수록 그 나라의 노동생산성, 이윤창출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지게 된다.
 
직장 내 괴롭힘, 핵심은 노사 간 권력문제
 
노동계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노사 간에 발생한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슈를 다루는 정치적 언어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노동조합은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미디어들은 ‘갑질’ 혹은 ‘갑을 관계’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단순히 인격 나쁜 ‘갑’의 문제도 아니며 ‘질’이란 말로 누군가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해외토픽에 실릴 정도의 만행을 서슴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이는 세계 적으로 유례 없는 재벌(chaebol)이라는 시스템을 가진 우리 나라 기업구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다.

 

만약 우리나라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자본주의 사회였거나, 최소한 주주들의 권리라도 보호하는 기업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면 애초에 조현아는 상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기업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혐의로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의 재벌시스템은 오너 일가의 일원 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보호해주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우리사회에 더 깊게 뿌린 내린 것은 경제 질서 재편과도 관련이 깊다.

 

한국은 1997년 IMF 구제금융을 경험하면서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를 체질화 했다.

 

기업 들은 성과주의에 입각해 노동자 간 무한경쟁을 부추기고, 저성자과를 낙인 찍었다.

 

이에 맞서고자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해고하는 극단적 형태의 ‘노동조합 탄압형’ 괴롭힘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즉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 상사’의 얼굴을 한 개인 차원의 문제처럼 등장하지만, 그 본질은 노사 간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의 경제시스템과 기업의 지배구조, 노동시장, 노동관계 법률과 판례 유형, 행정기관의 규율 및 감독, 그리고 입법과 행정력의 원천이 되는 정당체제를 비롯한 정치 권력구조 등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이런 차원에서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갑을 관계’나 ‘갑질’ 문제로 호명하는 것은 구조적 문제를 은폐한다.

 

나아가 ‘을’이라는 용어를 사용할수록 해당 노동자는 약자이자 피해자로서 부각된다.

 

그가 당한 ‘억울한 피해사실’에 초점이 맞춰지고, 이는 다시 ‘온정주의’를 자극해 민주적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약자도 강자도 그가 선하든 악하든 모두 평등한 시민이고 주체다.

 

약자가 노동조합을 만들 듯이 잘 연대하고 결사해 권리가잘 인정되면, 수적으로는 강자가 되어 민주주의 시스템에서는 공정한 타협이 가능하다.

 

온정주의가 위험한 것은 ‘을’이 ‘갑’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 주체가 아니라, ‘불쌍하고 선하고 약한’ ‘피해 자성’만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선하지 못한 행태나 다른 ‘을질’이 발견되면 순식간에 여론은 그를 또 다른 가해자로 매도한다.

 

온정주의(paternalism)라는 단어가 아버지라는 단어와 유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선하고 가여운 피해자이자 을이라서, 아버지 같은 국가나 회사에게 ‘불쌍함’을 알아주고 해결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그 혹은 그녀는 인격과 노동권을 가진 시민이자 일원이기 때문에 내가 살아가는 일터에서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행복하게 노동할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서 출발해야
 
이 같은 맥락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막기 위한 법·제도적 정비는 매우 중요하다. 현재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을 신설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법제사 법위원회. 그리고 지난 27일 본회의를 통과한 상태다.

 

몇몇 의원들은 “직장 내 괴롭 힘의 개념과 정의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해당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이 문제의 심각성과 사회적 해결이 중요하다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박원아 고용노동부 서기관은 “법안이 국회를 최종 통과 하면 정부지침을 비롯한 괴롭힘 방지를 위한 각종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제화가 이뤄졌다고 해도 이는 일터 내 괴롭힘 문제 해결을 위한 출발선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매우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폭력이나 괴롭힘 문제가 직접적으로 발생했을 때이를 처리하기 위한 처벌조항도 필요하지만, 미연에 문제를 방지할 수 있는 포괄적 예방책도 필요하다.

 

또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회사와 당사자들이 절차에 따라 조사를 받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며, 문제의 당사자들이 격리될 수 있는 회사의 자체 시스템도 중요하다.

 

나아가 일터 문화를 괴롭힘 문제가 발생할 수 없는 환경과 문화로 변화시키는 것또한 중요하다.
 
 

노동조합의 과제는
 
한국노총은 2018년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공동임단투 지침에 넣고,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을 위한 노사 모범 단협 사례를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국노총 유정엽 정책실장은 “각 사업장에서 노사가 직장 내 노동자의 인격권 보호 및 노동존중 문화 정착을 위해, 사전적 예방대책 마련 및 직장 내 괴롭힘 문제 발생 시 사후조치 의무를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명시하는 움직임이 확산되 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병원업계 노동조합의 개선 노력이 눈에 띈다.

 

권미경 연세의료원노조 위원장은 “터무니없는 인력부족으로 장시간 과로에 시달리는 간호노동자들, 즉 개별적으로 신입간호사 교육까지 맡아야 하는 병원 내 구조가 ‘태움’문제를 발생시킨다”며 병원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의 배경을 설명 한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와 함께 생명을 다루는 병원의 특수한 업무환경 속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교육이라는 미명으로 괴롭힘을 정당화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병원의 의료시스템과 인력공급의 구조적 문제가 선배와 후배 간호사 간, 직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갈등으로 다양하게 표출되는 상황이다.

 

병원업계도 이 같은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연세의료원의 경우 통상 10년에 한 번 정도 열렸던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징계위원회가 2018년에만 세 번이나 개최됐다.

 

피해자 요청에 따라 비공식적 협의를 통해 별도의 조치가 취해진 경우를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괴롭힘 문제가 증가했다기 보다는 시대가 바뀌고 권리의식이 성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정에서 연세의료원노조는 피해사례를 취합하기 위해 익명의 설문조사를 진행하는가 하면, 반복적인 사건들을 독립적으로 조사해 그에 적합한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때 노조는 피해자들의 소통창구 역할을 하면서, 징계위원회 에도 참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고민은 깊어 보인다.

 

권 위원장은 “병원 인력부족 등 괴롭힘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해결 되지 않고, 사용자 책임이 배제되고 있으며, 징계 중심의 조치 이후 후속조치가 없고, 피해자 발언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주관적인 영역들이 존재한다”며 “보다 일관되고 공정한 프로세스와 규범·매뉴얼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박수경 박사(한국방송통신대)에 따르면 일본도 2000년대 이후 ‘파워 하라스먼트(power harassment)’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직장 내 괴롭힘을 중요한 노동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2012년 후생노동성 주최로 실태조사가 이뤄지고, 2018년에는 후생노동성 심의회(노사 및 공익요원 동수 논의 하는 시스템)에서 ‘직장 내 괴롭힘’ 의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 노동조합의 최대 전국조직인 ‘렌고(일 본노동조합총연합회)’는 2017년 실태조사를 실시한 데 이어, 2018년 11월14일 ‘파워 하라스먼트’ 대책의 법제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개최하며 선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오랫동안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연구해 온 문강분 행복한 일연구소 대표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야 말로 노동조합이 명분과 실리를 모두 가질 수 있으면서도, 매우 광범위한 영역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노동계 이슈”라고 강조했다.

 

조합원은 물론 앞으로 조직화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비조합원들까지 대다수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크고 작은 괴롭힘 문제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조합이 사측의 부당하거나 과도한 업무지시를 비롯해 회사 운영시스템에 대해 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경영참여를 요구할 수 있는 이슈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노사가 궁극적으로 타협이 가능한 주제다.

 

많은 회사들, 관리 자들은 괴롭힘 문제가 회사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며, 잦은 이직이나 퇴사로 인사관리에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노동자 보호를 위해 현 상황에 맞는 프로세스를 만들고 현장에 대한 통제력을 가진다면 노동자의 노동권과 건강권을 확장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측과 보다 대등하고 합리적인 요구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19일 열린 한국노총 토론회는 ‘직장 내괴롭힘 문제’에 대한 다양하고 체계적인 대안과 노동조합의 구체적인 역할을 모색하는 뜻 깊은 시작점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김인아·박수경 외. 2018.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법제화와 노동조합의 대응 과제』, 한국노총.

김정혜·주형민·전수경·홍성수 외. 2018. 『직장 내 괴롭힘 실태 파악 및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 국가인권위원회.
 
 
문의 및 각종 제안
 
02) 6277-0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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