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산업재해 통계를 공식 집계하기 시작한 1964년부터 2023년까지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수는 10만여 명이 넘으며, 재해자 수는 무려 550만여 명에 달한다.
2023년 산업재해로 인해 136,796명(사고재해자 수 : 113,465명, 질병재해자 수 : 23,331명)의 재해자가 발생했고 그중 2,016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이처럼 산업현장에서는 하루에 약 375명의 노동자가 재해를 당하고 그중 약 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통해 산업현장의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에서 일하길 소원했으나, 법 제정과 시행이 무색하게 기업의 안전보건 태만 경영은 여전하고, 지금도 삶의 터전인 일터에서 노동자들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다. 우리나라는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기에 역부족이다.
산재 노동자의 희생, 정부의 예우와 지원 절실해
우리나라의 경제가 현재의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산재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음을 절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총 55개의 국가기념일이 존재하지만 그중 산업재해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일은 전무하다.
반복되는 산업재해에도 불구하고 일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을 추모하거나 산업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행사와 활동은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미국, 영국, 캐나다 등 19개 국가에서는 4월 28일 산재 노동자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여 산재 희생자를 위한 추모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아울러 총 120여 개국에서 산재 희생자와 노동자를 추모하기 위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가경제발전을 위해 헌신한 산재 노동자를 위해 그에 맞는 합당한 예우와 정책적 지원을 제공해도 부족한 상황에서 최근 정부는 오히려 산재 노동자를 ‘산재 카르텔’ 집단으로 호도하고 ‘나이롱 산재 환자’로 특정하는 등의 행태로 피해와 고통은 고스란히 산재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초 고용노동부는 산재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산재보험 특정감사에서 산재 카르텔의 실체를 전혀 입증하지 못했다. 심지어 지난 10월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산재 노동자를 두고 ‘산재 카르텔’, ‘나이롱 산재 환자’ 등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표현이 거칠고 과장된 부분이 있다”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가 무책임하게 던진 언행들로 인해 산재 노동자들은 실제로 특정감사 이후 부당한 산재판정을 경험했고 산재승인율 또한 이후 감소하고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산재 노동자에 대한 신속하고 공정한 보상을 위해, 산재 희생자의 예우와 산재 노동자의 권익향상을 위해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산업재해노동자의 날’ 지정 등...산업재해보상보험법 국회 통과
한국노총은 심각한 산업재해 발생 수준을 개선하고 산업재해라는 사회적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해 1999년 4월 ‘산재 희생자 위령탑’ 건립을 요구하여 2000년 12월 서울 보라매공원에 ‘산재 희생자 위령탑’을 건립했다.
이후 한국노총은 24년간 매년 4월 28일 산재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산재 노동자를 위로하는 ‘산재 노동자의 날 추모제’를 개최하고, 산재 노동자의 날 법정기념일 지정을 촉구해왔다.
국가적 차원에서 산재 희생자를 추모하고 산재 노동자의 권익향상과 국민에게 산업재해라는 사회적 재난에 대한 위험성과 산업재해 예방의 중요성을 인식시켜주는 계기는 우리의 현실에서 반드시 필요했고, 산재 노동자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선배 노동자의 기나긴 투쟁으로 인해 마침내 2024년 9월 26일, 매년 4월 28일을 ‘산업재해노동자의 날’로 지정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매우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는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노동자의 넋을 기리고 산재 노동자의 권익향상을 도모하고 지원할 수 있게 됐다.
개정법 주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첫째, 산업재해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증진하고 산업재해노동자의 권익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매년 4월 28일을 산업재해노동자의 날로 하며, 산업재해노동자의 날부터 1주간을 산업재해노동자 추모 주간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또한, 고용노동부장관은 산업재해노동자의 날의 취지에 적합한 행사, 산업재해 예방 교육, 산업재해노동자 지원 등에 노력해야 함을 골자로 한다.
이번 산재 노동자의 날 지정을 계기로 정부는 법안 취지를 존중해 산재 노동자의 권익향상과 산업재해 예방 교육, 산재 노동자들의 공로와 명예를 인정하기 위한 지원방안을 수립하고 이를 신속하게 이행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번 ‘산재 노동자의 날’ 법정기념일 지정을 산업재해라는 사회적 재난에 대한 위험성과 산업재해 예방의 중요성을 공론화하고 산재 노동자의 권익향상을 도모하는 계기로 삼고, 향후 산재보험 제도 발전에 중요한 초석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여전히 산업현장에서는 산재 처리지연 문제가 심각하고, 특히 업무상 질병의 경우 평균 7개월 이상 소요되고 있는 비정상적 현실에서 산재승인 여부를 기다리는 동안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치료와 보상조차 받지 못한 채 신체적·정신적·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다.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해야 할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에게 ‘근로고통공단’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정부는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병마에 시달리는 노동자, 그리고 산재판정 결과를 기다리다 목숨을 잃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제도개선 방안 또한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한국노총은 산재보험 선 보장 제도 도입,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 개정, 추정의 원칙 제도 실효성 강화, 산재보험 적용확대 등을 위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 활동에 더욱 매진할 것이다. 또한, 산재 노동자의 권익향상과 신속한 치료와 보상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